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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엄동설한 명일역 산책

by 자한형 202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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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 명일역 산책

한참 맹추위가 있던 날 오후였다. 일상적으로 해왔던 산책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하도 매서운 추위인지라 단단히 준비를 했다. 옷을 겹겹이 껴입었다. 완전히 추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복장을 갖춰 입은 셈이었다. 무슨 근육맨이 된 듯이 상체가 우람해졌다. 보온용 장갑 두 개를 번갈아 가면서 꼈고 목도리도 두 개를 목에 둘렀다. 어떤 추위가 와도 무방하도록 방책을 강구하고 길을 나선 것이다. 집앞의 공원 산책길을 거쳐서 선동 IC 쪽으로 걸었다. 통상적인 겨울날씨였고 예년 같은 기온이고 날씨가 차갑지 않았다면 곧바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을 했을 텐데 워낙 차가운 날씨여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칼날같은 바람이 뺨을 스쳤다. 귓불도 붉어졌고 찬바람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강동쪽의 한강변 산책길에는 거의 인적이 없었다.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거의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문드문했다. 한강변으로 산책을 하는 이도 극소수였다. 이런 혹한 속에서도 가벼운 복장으로 런닝을 하는 이도 있긴 했다. 선동 IC에서 강동쪽으로 500미터쯤 지나서 한강다리 아래를 지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동영상 촬영에 들어갔다. 핸드폰의 카메라 동영상 촬영을 작동시켜 오른손으로 촬영을 하다가 손이 시려오면 왼손으로 바꾸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촬영했다. 거의 15분정도를 촬영하였다. 산책로와 한강모습 그리고 가로수의 전경 등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간간이 혹한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이도 있었고 서울 쪽에서 하남 쪽으로 산책하는 이들도 볼 수 있었다. 유유자적하게 홀로 걷는 분도 있었고 무리를 지어 단체로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런닝을 하는 이에게는 경이로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처음의 작정은 서울방향으로 30-40분쯤 걷고 되돌아올 요량이었다. 그러나 가다 보니 마음이 바꿔 욕심이 생긴 탓에 계속 가보기로 했다. 공사를 하고 있는 구간도 있었다. 암사정수장 근처에 오니 예상대로 건너편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안내표지판도 있었다. 길은 88올림픽도로 밑으로 가는 길이었고 겨우 사람이 지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계단은 철제로 된 것이었다. 길을 건너고 보니 군사제한 구역으로 들어가는 것도 제한되었다. 다행히 정수장 옆으로 둘레길이란 이정표가 있어 그곳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있는 전형적인 겨울길이었다. 인적도 드물었다. 지도도 없고 이정표도 없어 막무가내로 길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민가도 없었고 산속이었고 무덤만 여러 곳을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도로가로 나왔다. 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을 검색하니 고덕역이 876미터였다. 그렇게 고덕역을 향해 가던 중에 길을 잘못 들어 명일역으로 가게 되었다. 마을버스 정류소를 지나고 일반버스 정류소를 지나서 건널목을 건넜더니 곧 지하철역이 나왔다. 이제 길을 제대로 찾아나온 것이었고 도심으로 빠져나온 것이었다.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5호선 전철역인 미사역까지 네 구역 정도였다. 보행수가 만보를 넘겼다. 일일 만보의 목표는 무난히 달성을 한 셈이었다. 얼마전 다큐를 본 적이 있었다. 40대 초반의 주인공은 20 킬로그램의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산을 맨발로 오르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다. 자신의 인생살이에 관한 자책을 위해 고행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집에서 산입구까지는 자전거로 이동했다. 물론 맨발로 했다. 산에서 내려오던 길에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어깨의 근육이 파열된 것으로 병원에서 진단결과가 나왔다. 그는 백수로 지내고 가사를 했고 육아를 하는 주부였다. 사업을 하다 여의칠 않자 집에 들어앉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세상을 잘못 살아온 것에 관한 고행을 자초해 자신에 대한 징벌적 의미로 고행을 감행하는 셈이었다. 간단히 비닐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병원에 다녀온 후 아르바이트를 해서 일당을 벌기도 하는 모습도 방영이 되었다. 맨발로 산행을 하는 것으로도 힘든 일인데 20kg 무게인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산행을 한다는 것이 이색적인 모습이기는 했다. 자기자신의 몸에 관해 고통을 가하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참회를 구하는 식이었다. 속죄를 위해 죗값을 치르는 심정으로 여겨졌다. 불교에서 수행의 일종으로 자신의 몸에 관해 희생을 하기도 하고 죄업을 씻어내기 위해 좌선을 하기도 하고 철야정진도하고 좌선을 하면서 극도로 자기희생에 수행을 해내기도 한다. 일정기간동안 눕지 않는다거나 말을 하지 않는 묵언 수행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인간이 얼마나 고통에 무력하고 간사한가를 비웃는 이에 대해 인간의 의지의 강인함을 증명해 보인 문인도 있었다. 토굴속에서 수행을 이어가기도 한다. 성철스님의 3천 배 후 대면접촉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런 고행을 통해서 영혼의 정화를 맛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부처님의 영험함을 느껴볼 수도 있으리라. 향불로 자신의 팔뚝의 태워내면서 극한의 고통을 견디는 인간의 의지력의 한계치를 증명하기도 했다. 수계라는 불도의 길을 들어서는 마지막 통관의례에 보면 팔뚝의 중간지점에 향불로 자신의 몸 일부를 태우는 의식을 거치기도 하며 그것은 통관의례를 통과한 한 증표로 인식되기도 한다. 올 한 해도 얼마남지 않았다. 송구영신이 한참 회자되는 시기이다. 올해는 여러 가지로 다사다난했고 파란만장했던 한 해 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경제도 힘든 한 해를 겪어야 했다. 세계정세도 곳곳에서 일어난 전쟁 등과 더불어 국가 간의 갈등과 대립 등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울한 미래를 향해 질주해 왔다. 기후변화도 세계적인 이슈로 급부상했다. 이제 우리는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섰다는 것을 실감했던 한 해 이기도 했다. 모든 나라들이 부러워 하고 추종하고자 하는 선도국가로서 자리매김해 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동남아국가에서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고 한류 열풍은 전 세계로 파급되고 있다. 후진국들의 모델이 되고 있고 벤치마킹의 표본이 되고 있는 셈이다.

새해도 코앞이다. 내년은 용의 해이다. 청룡의 해이기도 하다. 희망차고 활력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