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L군에게서 동창회 모임이 있으니 참석여부를 묻는 카톡이 왔다. 저녁인지 점심인지를 물었더니 저녁이라고 했다. 일부 소규모 지역중심의 동창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비공식적인 것이었고 소규모였다. 참석하겠다는 답글을 남겼다. 3호선 경찰병원역 근처의 삼계탕집이었다. 이전에도 모임이 있었던 곳이라 익숙한 장소였다. 10여 명의 동창들이 모였다. 삼계탕집에서의 첫 잔은 무료로 제공되는 인삼주로 입가심을 했다. 다음은 소맥으로 마셨다. 몇몇 친구들은 비주류여서 한잔 정도만 마시는 이들도 꽤 있었다. 요즘 화제의 중심이었던 시청 앞 교통사고에 관해 의견 개진이 있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급발진 65% 라는 의견표명도 있었다. 40년 운전경력의 가해자가 운전자 실수를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이제 동창들은 인생사 60대 중반에 들어서서 지공거사로 경로석을 차지하는 이들도 있었다. C군은 상처한지 5년 7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혼자 생활하는 것에도 어느 만큼 익숙해졌다는 식이다. 사위가 청주에 살고 있는데 이번에 회사의 인사발령으로 인해 조만간 미국 미시간 주로 떠날 것이라고 근황을 얘기하기도 했다. 2차전지를 생산하는 회사로 전도유망한 회사였다. 딸은 청주시청 공무원인데 4년간 휴직을 하고 갈 것이라고도 했다. 손녀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미국으로 가서 생활하게 되면 영어를 습득하고 국제적인 감각을 익히게 되길 기대하기도 했다. 휴가나 여유가 될 때에는 미국으로 한 번씩 다녀와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새롭게 온 한 친구는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왔다고 했다. 15년전에 구파발 근처의 훼릭스 테니스장에서 재경동창회 테니스대회를 우리 기수가 개최한 때가 있었는데 그때 테니스 선수로 참가하기도 했다는 실토를 했다. 아직도 테니스를 하고 있다니 대단한 취미생활이었다. 대학시절 교양체육에 테니스가 있었는데 그때부터였으니 거의 40여 년을 테니스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었다. 은퇴전 근무처는 포철이었다. 처음에는 본사에 있다가 10여 년 후에는 자회사로 이직해서 정년퇴직을 했다고 하면서 이제 은퇴한 지 88년 차에 접어들었고 송파구에 살고 있고 시집간 딸네집은 마포에 있다고 했다. 한번씩 손주를 돌봐주기 위해 딸네집에 가기도 한다는 소식이었다. 1차 모임을 마치고는 경찰병원 쪽의 호프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워낙 인원이 많아 한자리를 차지하기도 만만치 않아 일부인원은 테이블이 떨어져서 앉았다. 실내는 손님들도 꽉차있었다. 호프에 과일안주를 시켜서 마셨다. 한참 TV에서는 롯데와 두산의 야구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5 대 0으로 롯데가 패하고 있는데 우천관계로 인해 잠시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P박사는 홀로 삼성산으로 올라가 관악산 쪽으로 거쳐서 내려오는 등반했던 얘기를 하기도 했다. 큰아들은 인천의 초등학교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둘째 아들은 최근에 병역을 마치고 광교쪽의 치과병원에 페이닥터를 하고 있다는 소식들 들려주었다. Y군은 덕소쪽에 살고 있었다. 허리 협착증으로 곤란을 겪었는데 어느 만큼 좋아졌다고 했다. 골프 실력이 싱글실력을 갖고 있는 매니어였다. 영국에서 지점장을 지내기도 해서 국제적인 감각도 지닌 팔방미인이었다. 미술 쪽에도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었다. 중견기업의 감사로 활약하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하루 이틀 출근하는 형식이라고 했다. 덕소 아파트는 53평이고 20년전에 분양을 받았고 실제 생활은 10년 전부터 들어가 살게 되었다고 했다. 하남의 스타필드 쪽도 한번씩 쇼핑하러 가기도 한다는 얘기였다. 9월경에는 재경동창회 골프대회가 개최된다는 소식도 있었다. 모교의 80년사도 책자가 발간이 되었다고 했다. 춘천 가는 길의 강촌 근처의 골프장에서 개최된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순연되었던 골프대회인 셈이었다. 삼계탕집에 관한 내력도 얘기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삼계탕만 전문으로 시작을 했었는데 차츰 손님이 모여들면서 해장국이나 기타 메뉴 등도 차츰 늘려가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초복날이었다. 친구들과 만나 삼계탕집에서 몸보신을 할 요량으로 그곳을 찾았는데 엄청난 대기줄에 하는 수 없이 맞은편의 중식집에서 회합을 하기도 했다. 연초에 동창회를 한 후 연도 중간에 동창회를 가진 셈이었다. 모두들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았다. C군의 경우에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몇 년 전 사무소를 시청 앞에서 성수동 쪽으로 옮겼는데 상가 가격이 상당히 올랐다고 해서 대박을 쳤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P군의 경우에는 얼마전에 오래전에 발병했었던 암에 관해 5년이 경과해서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 다시 신부전증이 발병되어 투석을 하면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고도 했다. 미시간 주에 관해서는 얼마 전 아내의 친구 아들 소식을 들었는데 미시간 주에서 2차 전지 회사에 근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었다.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뉴욕에서는 거의 2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라고 했다. 어린 시절 영재 소릴 들었던 전도 유망한 아이였다고도 했다. 동창들도 이제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하여 노후를 보내는 상황이었다. 동창회 총무의 소식에 의하면 동기회 동창회비를 낸 인원이 42명에 이르고 있다고 하면서 동창회가 활성화되고 있다고도 했다. 전임 동기회 회장이 쓴소리를 해서 보다 자주 모임을 개최해서 동창회가 자주 열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 것으로 보였다. 기본적으로는 연말에 송년회가 정기모임으로 개최되는 형편이었다. 당구회 등 소모임에도 동기회 명의로 찬조를 하기도 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산책 등으로 소일을 하면서 건강관리에 애쓰고 있었다. 은퇴후의 최고 덕목은 건강이 아닐 수 없었다. 재물도 있어야 하고 친구도 필요하고 취미도 있어야 하지만 기본이 되는 것이 건강이 아닐 수 없었다. 맨발 걷기를 하고 있는 이도 있었다. 만보를 생활화해서 매일 만보를 목표로 걷는 이들도 많아진 듯했다. 어떤 이는 당뇨 고혈압 등의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모쪽록 동창들이 모두 어렵고 힘든 시기에 건강하고 활기찬 장년을 보내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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