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문학 기행 『함경도 이야기』 - 조선의 알프스, 부전호수/학고재 (3/4)
「감비 천불붙이」에서는 세상의 윤리적 잣대로는 용납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가 서사의 핵심을 이룬다. 종섭이가 가장 친한 친구 덕구의 아내를 범하고, 덕구와 만길네는 갓 낳은 아이를 버리고 세상으로 내려가며, 정분이는 처녀로서 그 아이를 거두며 형부, 즉 죽은 언니의 남편 종섭이네와 한 집에서 살기를 선택한다. 작가는 문명과 동떨어진 채 살아가던 두 가족에게 닥친 갈등과 위기조차 어쩌면 자연의 거대한 섭리로 간주하는데, 작가의 이런 도전이 크게 어색하지 않은 것은 바로 개마고원이라는 특수한, 그야말로 원시적인 자연환경이 뒤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개마고원 부전강 댐 건설 공사. 이 공사로 거대한 부전호가 생겨났다. / 『함경도 이야기』
「감비 천불붙이」의 속편인 「뚜깔리」에서는 종섭이네가 ‘감비 천불붙이’를 떠나 ‘뚜깔리’로 이사를 떠나왔지만, 고원이긴 마찬가지였다. 두 소설 모두 개마고원에서도 특히 부전호 일대가 배경인데, 「감비 천불붙이」는 호수의 북쪽 끝인 동상면 한대, 「뚜깔리」는 남쪽 끝 도안이 주요 무대였다. 도안은 인공 호수와 발전소를 만든 후에 새로 생긴 호반 마을이었다. 장도 커서 포목상이며 식료품점 따위 큰 가게도 있었다. 호숫가 숲속에는 지붕이 빨갛고 벽이 하얀 별장이 몇 채 있었는데, 서양인들이나 돈 많은 일본인들이 와서 쉬어가는 집이라고 했다. 한대에 살던 종섭이네가 이주한 뚜깔리는 도안에 속하고 그 아래 장마당 원풍하고도 더 가까우니 적어도 그만큼은 문명에 가까워진 셈이다. 그래서일까, 이제 소설에서는 산을 벗어나 아랫세상으로 내려가려는 정분이의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그로 인해 결국 몇 사내의 운명마저 갈린다.
부전호는 1926년 10월에 착공한 부전강 댐이 5년 만인 1931년에 완공되면서 생긴 인공 호수다. 해발고도 1,200미터 지점에 자리 잡고 있고 둘레는 76킬로미터에 이른다. 이 호수의 물은 길이 28킬로미터, 직경 3.64미터의 터널로 부전령을 통과해 동해 쪽 성천강으로 빠진다. 이때 무려 1,000미터에 달하는 낙차가 발생하는데, 수력 발전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어서 해마다 2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생산했다. 이 전력으로 동양 최대 규모라는 흥남 질소비료공장을 가동했다. 원래 북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동쪽으로 돌려 발전하는 것이기에 이를 유역 변경 발전이라 부른다. 부전강발전소는 장진강발전소가 등장할 때까지는 한반도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유역 변경식 발전소였다.
일제가 발행한 부전고원 소개 책자 속 인클라인과 부전호수. / 『함경도 이야기』
1928년 신흥—송흥 구간에 철도가 개통되었고, 5년 후인 1933년에는 송흥역—부전호반역 구간도 개통되었다. 이를 신흥철도 영북선이라 불렀다. 1,445미터의 그 험한 부전령을 넘어 더 북쪽으로 간다는 뜻이겠다. 이로써 산중의 거대한 인공 호수인 부전호는 단번에 조선 최고의 관광 명승지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호수도 호수였지만, 거기까지 가는 구간에 설치된 인클라인 철도 역시 관광객들의 커다란 호기심을 자아냈다. 인클라인은 레일 위에 설치된 차량을 밧줄로 끌어올려 운행하는 철도로 강삭鋼索, 쇠밧줄 철도 혹은 케이블 철도라고도 한다. 부전호에 이르는 인클라인은 총 연장 6.5킬로미터로 특히 수직으로 치솟는 기울기 때문에 공포감마저 자아냈다. 카프, 즉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맹장 한설야가 의외로 겁이 많아 그 공포를 실감 나게 표현했다.
송흥에서 경철輕鐵에 내려 인크라인을 바꿔탔다. 강삭선鋼索線이란 글자에 보이는 그대로 가느다란 강철사를 수십 겹으로 드린 강철선인데 그 끝에 조고만 경편차를 달아 1백 마력의 권양기로 달아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강삭선이 놓인 가파른 절벽을 쳐다보라. 실로 한 발이 비쭉하면 일순간에 가루로 만들어줄 험한 낭떠러지와 바위가 있고 사람이고 차체고 냉큼 집어삼켜버릴 천인千仞 구렁이 무시로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그러니 그젠 벽 같은 산등성이로 차가 올 라가다가 강삭이 툭하는 날에는 어찌 될까. 그렇게만 생각 해도 벌써 다리가 오금이 저려난다. 안계眼界를 막는 이 높고 높은 준봉을 바라보며 그만 돌아가버릴 생각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야말로 여러 사람이 일련탁생一蓮托生으로 다같이 죽을 것인데 무어 그리 무서운가만 그래도 나는 먼저 다 이루지 못한 내 뜻과 일을 생각하였다. 그것을 위해서 좀 더 살고 싶다. 나는 이 강삭선이 위험하다는 말을 벌써부터 들었고 또 이 위험성을 제除하기 위해서 근년에 설비와 장치에 대개량을 가하였다는 말도 들었다. 즉 강삭이 끊어지는 날에는 기관차 바퀴에 달린 장치가잽싸게 궤조軌條를 물어서 전락轉落을 면한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이리로 여행 오는 때면 반드시 그 장치를 내 눈으로 보리라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것도 볼 새 없이 나는 이미 차중의 인이 되었다. 강삭은 벌써 서서히 매분에 550척, 약 17미터씩 차를 끌어올리고 있다. 아마 사람은 주검보다 제 하다던 일에 더 골몰해지는 버릇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쳐다보면 볼수록 아슬아슬하다. 장진호 가는 황초령 인크라인을 타본 기억이 아직 새롭건만 그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차체는 부단히 삐익삐익하는 애처로운 소리를 내고 기관차에는 낮 전등이 켜지고 조고만 전화기가 달려 만일의 경우를 경계하고 있는 듯하다. 가파른 산등으로는 아름드리 철관로(수로)가 네 줄로 내려놓여 있다. 차가 천구암 홍엽곡 사이의 네 개소의 수도隧道를 지나갈 때까지 는 아직 그렇게 급경사가 아니었는데 그다음 붉은 쇠기둥으로 만든 두 개의 홍살문을 지나서부터 차는 맨 가파른 절벽으로 잡아들었다. 차가 조곰만 삐닥해지고 무슨 요상한 소리가 쩍 나기만 하면 솜털이 오싹 떨리곤 한다. 가다가 절벽이 끊어진 데는 철교를 놓았는데 그 아래는 천야만야하 다. 내려다보자면 시선이 맨 밑까지 닿기 전에 눈 속이 먼저 뱅글뱅글 돌아간다. 쳐다뵈는 봉이 바로 해발 5,700여 척(1,741미터)의 백암산인데 이것이 부전령의 최고봉이다.
장진강 수력 발전소. / 『함경도 이야기』
모윤숙은 함흥이 집이어서 부전호수에 몇 차례 갈 수 있었다. 한 번은 친구와 함께 올랐다. 그녀도 한설야처럼 “서 있던 나는 어느새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없으리만치 뒤로 앞으로 삐뚤어지고 어지럽고 하여 발밑이 어디 의지할 곳을 모르겠다”고 했지만, 곧 두려움보다는 과학의 힘, 인공의 위력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새삼스레 감탄한다. 그들은 부전호반의 예쁜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모윤숙이 북간도에서 돌아와 잡지 『동광』에 「검은 머리 풀어」란 시를 발표했다. 1933년이었다. 그 시를 춘원 이광수가 읽고 그녀를 불러 칭찬했다. 신예에겐 엄청난 격려였다. 그 후 모윤숙은 이런저런 기회에 춘원을 종종 만났다. 여름이라 함흥 집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8월 중순인데 누가 찾아와 “춘원 선생이 함흥에 와 계신데 함께 부전호수를 가자십니다”고 기별했다. 모윤숙은 아버지의 기꺼운 허락을 받고 친구와 함께 한달음에 달려갔다. 춘원은 몸이 쇠약해져서 휴가차 왔노라 했다. 그들은 곧바로 부전호수에 올랐다. 하늘엔 목화송이 같은 구름 이 유독 하나 눈길을 끌었다.
“아무리 높은 고개에 올랐어도 저 구름송이를 잡을 재주는 없지. 사람이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면서도 재주가 있는 체, 명예와 지체를 가진 체하는 거지.”
“선생님은 구름을 잡으려고 그러세요. 이렇게 쳐다보면 좋지 않아요?”
“윤숙이, 호 하나 지어줄까? 고개 위에 떠가는 구름! 영운嶺雲이라면 어떨까?”
모윤숙은 그렇게 해서 호를 얻었다. 나중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뭇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기도 한다.
1933년 5월, 일본질소의 노구치는 자신이 전액 출자하여 장진강수전을 설립했다. 부전강발전소만으로는 전력을 충당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장진강의 경우에도 부전강의 경우처럼 강압적으로 토지 매수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지주들이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또 신간회도 반대를 해, 매수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본질소는 토지 매수를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공사를 밀어붙였다. 그에 따라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총독부는 토지수용령을 발동했다. 결국 1933년 10월 댐 공사를 시작한 후 불과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제1발전소를 준공, 14만 4,000킬로와트의 발전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1938년까지 제2, 제3, 제4발전소를 차례로 완공하여 장진강 발전소는 총 발전량 32만 킬로와트를 확보하게 된다. 장진강발전소의 경우 부전강발전소보다 건설비가 낮아 1킬로와트당 250엔에 불과했는데, 발전 단가로 환산하면 일본 5대 수력 발 전소의 평균보다 거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장진은 함경남도와 평안북도가 만나는 곳에 있는데, 장진강 발전소 건설과 맞물려 1934년 철도가 개통되었다. 함흥에서 장진호의 사수리까지 이르는 70.9킬로미터 길이의 장진선으로 협궤 철도이며, 부전호 쪽으로 가는 송흥선과 마찬가지로 인클라인이 설치되었다. 만일 함흥에서 출발한다면 오로역에서 두 노선이 갈라진다. 장진 쪽으로 가려면 왼쪽의 황초령을 넘는 노선을 택해야 한다. 오로를 지나면 상통에서 작은 기관차가 끄는 기차로 옮겨 타는데, 그때부터는 힘에 부친 듯 연기를 내뿜으며 비탈을 오르기 시작한다. 용수역에는 장진강 제3발전소가 있고, 하기천역에는 제2발전소가 있다. 이어 삼거역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는데 이때부터가 인클라인 구간이다. 말이 기차였지, 한 이용자는 제가 탄 케이블카가 어디서 누가 내버린 것을 주워왔는지 그렇지 않으면 돌이나 흙 같은 것을 운반하던 차 같다고 투덜거렸다. 차가 너무 낡아 중간에 줄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곱으로 는다고도 했다. 보장역에 제1발전소가 있다. 그 위로는 더욱 경사가 급해지는데, 승객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때쯤이다. 해발 1,200미터의 황초령을 그렇게 넘으면 함주 땅을 벗어나 장진 땅이다. 기차는 장진읍을 거쳐 사수역까지 이어진다. 거기서 배를 타고 한 시간가량 호수를 가로지르면 거대한 제방이 나타나고 다시 산장 두 채를 만난다. 산장에서 댐을 내려다보면 장진호가 얼마나 거대한 인공 호수인지 실감할 수 있다. 그곳에서 다시 부전호로 갈 수도 있는데, 그때는 자동차를 이용해야 한다. 차가 나아갈수록 길이 험한 만큼 눈에 담겨오는 경치는 훨씬 훌륭하다. 하늘은 손에 닿을 듯 가깝고, 주변은 대낮에도 어둑할 정도로 깊은 밀림 지대이다. 부전호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부전산장에서 하루를 묵는 것은 필수이리라. 여정이 바쁘다면 이튿날 다시 모터보트를 타고 부전 호반역까지 가면 된다. 부전호반역 다음이 도안역이다.
시인 백석이 영생고보 시절 부전호를 다녀간 모양이다. 그가 쓴 시에 흔적이 묻어난다. 물론 그가 이용한 건 함흥에서 신흥을 거쳐 오른쪽으로 부전령을 넘어가는 신흥선(고원선)이었다.
고원선 종점인 이 적은 정차장엔
그렇게도 우쭐대며 달가불시며 뛰어오던 뽕뽕차가
가이 없이 쓸쓸하니도 우두머니 서 있다
해빛이 초롱불같이 희맑은데
해정한 모래부리 플랫폼에선
모두들 쩔쩔 끓는 구수한 귀이리차를 마신다
칠성 고기라는 고기의 쩜벙쩜벙 뛰노는 소리가
쨋쨋하니 들려오는 호수까지는
들쭉이 한불 새까마니 익어가는 망연한 벌판을 지나가야 한다.
‐「함남 도안」(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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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문학 기행
『서울 이야기』·『평안도 이야기』·『함경도 이야기』·『도쿄 이야기』
책 미리보기는 계속됩니다!
한국의 근대문학이 움튼 서울.
조선의 무수한 청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건너간 도쿄.
그리고 휴전선 너머 압록강과 두만강,
개마고원을 지나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우리 작가들의 생생한 숨결과 뜨거운 발자취
근대 문학의 ‘장소들’,
그리고 지난날 우리가 꾸었던 ‘꿈’
욕망도 사상도 아득해진 지난 시대가
이야기꾼 김남일의 온기로 되살아난다!
근대 문학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길어올린 『서울 이야기』
소설가 구보 씨가 돌아다니던 종로와 청계천,
조선인 징병을 외친 이광수가 살던 북악의 산자락.
교과서 속 수많은 작가들의 황홀한 꿈과 절박한 한숨이 빚어낸
우리 문학사와 식민지 ‘경성’의 풍경.
지도에서 사라진 길, 역사와 문학과 지리를 한데 잇는 『평안도 이야기』
진달래 꽃 피고 지던 소월의 영변 약산,
이효석이 서국주의西國主義의 꿈을 키웠던 평양의 푸른 집,
김남천이 벗들과 술 마시던 성천의 눈 내리던 밤 풍경.
이제는 갈 수 없는 휴전선 너머 우리 땅과 우리 문학 이야기.
문학 작품으로 남은 북국의 자취, 글로 다시 그린 『함경도 이야기』
죄인처럼 수그리고 코끼리처럼 말이 없던 이용악의 두만강,
아직 철저한 민족주의자이던 시절
육당 최남선이 벅찬 가슴으로 올랐던 백두산,
그러나 지금은 아득히 멀어진 ‘북방’의 문학사적 복원.
‘나’와 ‘조국’을 생각하던 청년들이 헤매던 곳, 『도쿄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루쉰, 홍명희와 이광수.
메이지 유신 이후 동아시아의 제도帝都를 꿈꾸던 도쿄에서
동아시아의 다른 작가들과 함께 호흡을 나누던 우리 작가들.
싫든 좋든 도쿄를 빼놓고는 한국의 근대 문학사를 말할 수 없다.
한국 근대 문학의 영광과 좌절,
그 뒷모습을 숨김없이 찾아가는 우리 문학사의 내비게이션
지금은 가볼 수 없는 공간들이 꿈결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시간이 흘러 가볼 수 없는 한 세기 전 서울과 도쿄, 혹은 국경 아닌 국경으로 가로막혀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된 휴전선 이북의 산천. 소설가 김남일이 ‘한국 근대 문학 기행’이라는 담대한 기획으로 『서울 이야기』, 『평안도 이야기』, 『함경도 이야기』, 『도쿄 이야기』 4부작을 펴냈다. 『어제 그곳 오늘 여기』(2020)를 통해 아시아의 근대 문학 작품을 지도 삼아 서울과 도쿄, 교토와 오키나와, 사이공과 하노이, 상하이와 타이베이를 가로지른 데 이어, 이번에는 뚝심 있는 발걸음을 우리 땅으로 옮겨 오롯이 한국의 근대 문학에 집중했다. 한국 문학의 근대를 이룬 작가들이 당혹감을 떨치지 못하던 시대, 그 시절 문학의 바탕이 되고 뿌리가 된 분단 이전의 우리 땅이 대장정의 출발지이자 목적지가 되었다.
우리 문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
‘한국 근대 문학 기행’의 출발점이자 종착지
그 어느 때보다 읽을거리가 많고 콘텐츠도 풍성한 시대, 그럼에도 우리의 독서는 심각하리만큼 서구 편향적이었다. 특히나 근대 문학에 관해서라면, 이는 누구도 부정하기가 어려운 사실이다. 40년 넘게 소설을 써온 저자 김남일은 “등단 이래 수많은 외국 작품들을 읽어왔으면서도, 정작 우리 문학은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것들 말고는 딱히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읽은 기억이 없다”고 반성한다. ‘한국 근대 문학 기행 4부작’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다. 이 시리즈는 한국의 근대 문학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처음부터 딱딱한 문학사론의 틀을 배제하고 ‘문학 기행’이라는 형식을 채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전 문학 작품을 좌표 삼아 소설 속 도시와 촌락, 산과 들을 되짚으며 그 장면장면에 담긴 ‘사람’과 ‘삶’을 들여다보기로 작정한 만큼, 이 방대한 ‘한국 근대 문학 기행’ 역시 소설처럼 읽는 가운데서 저절로 한국 문학사의 큰 줄기를 그릴 수 있는 ‘이야기’가 되도록 의도한 것이다.
지난날 우리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문학 작품 속 ‘그곳’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살아난다
교과서에서 보고 들은 우리 문학사의 걸출한 시인과 소설가 들은 일제 식민 치하에서 오히려 지금보다 넓은 한반도를 누볐다. 언어와 정신에 대한 억압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저 남쪽에서 기차를 타고 두만강, 압록강을 지나 백두산에 올랐고, 앞질러 천지개벽의 문명 세계를 경험한 일본인들의 틈바구니에서 꿈과 불안에 치이며 도쿄를 배회했다. 저자 김남일이 근대기 선배 작가들의 행적을 뒤따르며 그들의 작품에 몰입한 독자였던 것처럼 『서울 이야기』, 『평안도 이야기』, 『함경도 이야기』, 『도쿄 이야기』의 책장을 넘기는 독자들은 다시 그 뒤를 이어 한국 근대 문학의 현장을 누빈다.
김남일은 오래전 작가들이 풀어놓은 글줄을 속속들이 곱씹는다. 그러고는 주먹만 한 눈송이가 하늘을 채우던 북방의 눈 내리던 밤 풍경부터, 함흥과 제주에서 온 유학생이 뒤섞인 서울의 교실 풍경까지 생생하게 우리 눈앞으로 옮겨놓는다. 반 세기 넘는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저자는 고정된 풍경화로 그칠 뻔한 장면들을 유려하게 살아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되살려냈다.
지도에서 사라진 길, 마음마저 멀어져 쉬이 갈 수 없는 곳,
그 길을 안내하는 소설가 김남일이 글로 그린 근대 풍경
‘한국 근대 문학 기행’은 한국 근대 문학의 출발지이자 보고인 서울에서 시작한다. 식민지 ‘경성’에서 개화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작가들은 소설과 시를 통해 그 시대의 언어로 세상을 그렸다. 당대의 작가들이 보여준 생활상과 시대정신은 평안도와 함경도, 지도에서 사라진 북한 지역까지 넘나들며 ‘한국 문학의 영토’가 어디까지 뻗어 있었는지를 되새기게 해준다. 분단의 세월이 길어져 ‘통일’에 대한 회의는 물론 그 의미조차 무용해지려는 때, 김소월의 영변 약산과 백석의 신의주 유동, 또 이용악의 눈앞에서 코끼리처럼 말이 없던 두만강은 어느새 활자의 박제가 되었다 해도 틀리지 않은 지경이 되었다. 저자 김남일은 이렇게 납작해진 글귀들을 풍성하게 들춰 돋운다. 행간 가득 흐르던 작가들의 호흡을 지금 우리의 호흡으로 되살려내 박동케 한다. 바다 건너 도쿄와 국경 너머 중국, 러시아까지 한달음에 오르내리면서도 지치지 않는다. 그 ‘장소들’을 찾는 발길이 바쁘지만 숨가쁘지 않고, 그곳 ‘사람들’에 머무는 눈길은 더딜수록 두근거린다. 상투어가 되다시피한 ‘길 위의 인문학’이야말로 은유가 아닌 말뜻 그대로, 김남일의 4부작 ‘한국 근대 문학 기행’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인 셈이다.
'철학, 글쓰기, 수필론 문학기행, 작가론, 문학작품 해설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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