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제국 건설(4)/이철형
잭슨 패밀리 와인즈의 와인 제국 유지 비결
잭슨 패밀리 와인즈는 현재 2대가 중심이 되고 3대가 와인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와인 제국의 철학은 무엇이고 1대와 2대 황제의 리더십 차이는 무엇인 지, 그리고 1대 창업주의 두 번 결혼으로 좀 복잡한 오너 가족 구성이 된 거대 제국이 재산 배분이나 사업에 대한 이견으로 분쟁이 생기면서 제국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라 크레마 몬테레이 피노누아 (품질 대비 가성비 갑인 피노누아 와인!)
이 와인 제국의 미래는 어떨 지를 잭슨 패밀리 와인즈편 시리즈의 마무리편으로 정리해본다.
와인제국의 기초를 닦은 1대 황제 제스 잭슨(Jess Jackson)은 대공황기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해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비정규직 일을 해가며 학업을 쌓아 변호사로 성공한 후 와인 사업에 뛰어들어 ‘프리미엄 와인 제국’의 기초를 마련한 자수성가형 황제다.
그의 가족과 지인들이 이야기하는 그의 리더십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지독한 일벌레로 일을 즐긴 사람!
재혼한 부인의 결혼 전 그에 대한 첫인상이 자기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hard worker)이라는 것이고 첫 부인과의 결별도 일을 애인(mistress)처럼 여길 정도로 올인하는 자세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3년간의 긴 암 투병생활 중에도 임종 전주까지 전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하면서 이를 즐겼던 사람이다.
잭슨 패밀리 와인즈의 부회장이자 맏사위인 하트포드는 그가 일에 대해 강박관념이 있다고 여겨질 정도였다고 증언한다.
통찰력을 가진 만기친람형 현장주의자!
전체를 보는 통시적 시각을 가졌으면서도 동시에 사소한 것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해야만 하고 이것을 통해 조직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창업주가 그런 것처럼 원맨쇼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업가였다.
변호사출신이면서도 노동의 신성성을 강조하고 솔선수범한 아버지!
이혼 당한 사유가 잘나가는 변호사업 대신 엄청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와인 사업에 올인하려는 자세 때문이었다고 첫 부인이 고백할 정도로 그는 현장 노동을 당연시 했다.
자식들에게도 어릴 때부터 노동을 체험하게 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노동의 신성성을 몸으로 터득하게 하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도록 한 아버지였다.
전처의 두 딸과 사위는 물론 재혼한 부인의 자녀들까지 대부분이 변호사거나 인문학 전공자들임에도 어릴 때부터 포도원과 양조과정에 직업 참여토록 한 아버지였다.
게임 체인저!
그는 와인 산업 내에서 유명한 상징적인 아이콘이 되기보다는 와인 산업 자체의 틀을 바꾸는 아웃사이더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지인들이 전한다.
그리고 실제로 전문 양조가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상품을 가지고 미국 프리미엄 와인 시장을 새로이 개척하고 그 분야 최강자가 되었다.
그럼 1대 황제와 달리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평탄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어릴 때부터 당시 여성들과는 달리 변호사가 되는 꿈을 가지고 성장하여 변호사로서도 일을 했던 2대 여제 바바라 방케 (Barbara Banke)회장의 리더십 스타일은 어떨까?
프리마크아비 시캐모어 (1976년 파리의 심판 때 화이트 레드 2종 모두를 출품한 유일한 와이너리가 프리마크아비!)
예지력을 갖추고 과감한 공격적 투자로 조직을 리드하면서도 스스로를 협업자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사람!
창업주가 모든 것을 직접 챙기고 관여해야만 하는 성격이었다면 2대인 그녀는 전체를 관장하되 과감하게 일을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다.
경청을 통해 가족이나 전문가인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도록 유도하고 그 중에서 최선의 것을 선택한다고 한다.
이 협업을 이끌어내는 포용력은 나이 차이도 크게 나지 않는 전처의 두 딸과 사위들까지도 조직내에서 하나로 뭉치게 만든 덕목이기도 하고 1대 창업주가 기대했던 바일 것이다.
스스로를 자원 관리자(resource manager)라고 칭하는 사람!
자신은 일반적인 창업가들처럼 원맨쇼(one-woman show)를 하는 사람일 수 없다고 보고 자신의 역할은 좋은 원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좋은 포도원을 찾아내고 이를 확보하기 위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고 양조의 영역은 그것을 잘 할 수 있는 다른 진짜 전문가들에게 과감하게 위임하는 스타일이다.
목표와 비전을 전구성원이 공유하고 유지하도록 하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어제보다) 더 나은 와인을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조직이 늘 준비된 상태로 있게 한다고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사람!
1대 창업주 때부터 시작한 것이지만 그때 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업이 속한 지역사회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인재 배출을 위해 중·고등학교 교육에 투자하고 환경보호와 보전을 위한 각종 시설과 장비에 남들보다 선투자를 하며 불치의 환자나 약자를 돌보는 곳에 기부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가치들의 소중함을 자녀들까지 공유하게 했다.
통상 기업 경영에서 창업주는 공성(攻城), 후계자는 수성(守城)의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바바라 방케 회장은 수성은 물론 오히려 영토를 더 크게 확장해가는 공성의 덕목까지 두루 갖춘 리더인 셈이다.
통시적 시각으로 뚜렷한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고 적재적소에 인적 자원을 배치하고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하여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기반을 만들어 줌으로써 참여자들이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리더십에 겸손함까지 더했으니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베리떼 (라 뮤즈, 라 주아, 르 데지르의 3종이 있는데 로버트 파커 100점을 많이 맞은 컬트 와인!.)
전부인의 자녀들의 자녀와 자신의 자녀들이 3대로 성장하여 와인 사업에 투신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1대와 2대가 보여준 노동에 대한 신성성, 환경 보호와 보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라는 가치관을 부모들로부터 물려받아 공유하고 있고 각자의 와이너리도 소유하면서 각자의 재능과 관심사에 따라 2인 3각 경기처럼 조직 전체에 대해서는 전문 영역을 나누어 가지되 조직 전체의 홍보대사 역할은 모두가 함께 한다는 식의 조직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공동 운명체로서 각자 개발한 와이너리나 조직이 구매한 와이너리도 자치구처럼 독립적으로 운영하도록 하여 각 와이너리의 개성을 최대한 살리되 잭슨 패밀리 와인즈 라는 공동 핵우산의 보호 속에 공동 마케팅을 펼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마치 로마제국의 제국 확장 전략을 보는 듯하다.
더구나 가족 구성원으로 베이부머 세대와 X세대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가 모두 존재하고 이들이 모두 와인 사업에 종사하기에 세대별 차이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서 더 탄탄하게 제국의 확장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분간 이 잭슨 패밀리 와인즈 라는 와인 제국이 쇠락할 가능성을 점치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얼마나 더 확장해나갈 지가 궁금해진다.
그룹이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하에 최고 품질을 지향하며 노동을 중시하여 그 가치를 인정하니 조직 구성원들을 존중하지 않을 리 없고, 지역 사회를 존중하여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도덕적 책임감을 갖고 이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으니 지역 사회에서 배척당할 일이 없으며, 항상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조직이니 경쟁에서 밀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잭슨 패밀리 와인즈의 제국 창업과 유지, 그리고 전망을 살펴보았다. 잭슨 패밀리 와인즈는 와인기업이기도 하지만 일반 기업의 창업과 확장과 성공, 그리고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와인 제국 건설(5)
바론 필립 드 로칠드 사의 와인 제국 건설기(1)
나다니엘 남작(Nathaniel de Rothschild·1812~1870)
세계 금융 자본을 쥐락펴락하며 자본주의 음모론의 배후로까지 등장하는 국제 금융 제국을 건설한 로스차일드(영어권에서는 이렇게 부르지만 프랑스어권에서는 로쉴드, 한국말 표기에서는 로칠드) 가문의 터전을 닦은 암셀 마이어(Mayer Amschel Rothschild, 1744~1812)에게는 아들 5명이 있었다.
그 중 셋째 아들로 영국 런던에 금융회사를 소유한 네이든(Nathan Mayer Rothschild ·1777~1836)의 넷째 아들인 나다니엘(Nathaniel) 남작이 1853년도에 샤토 무통 로칠드 와이너리를 구매하여 와인업에 진출하고 15년 후인 1868년에 다섯째 막내 아들로 프랑스 파리에 금융회사를 소유하고 있던 제임스(James Mayer Rothschild·1792–1868, 나다니엘의 삼촌)가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를 구매하여 현재 프랑스 보르도 그랑 크뤼 특 1등급 5대 샤토 중 2개를 동일한 가문이 보유하여 와인 제국까지 건설하게 된다.
1855년 파리 박람회를 앞두고 보르도의 그랑 크뤼 등급이 정해지면서 61개 샤토가 1등급(당시에는 4개)부터 5등급으로 시장 가격 기준으로 등급이 정해지게 되는데 이때 샤토 무통 로칠드는 2등급이었고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1등급이었다.
삼촌은 1등급으로 등급이 정해진 이후에 샤토를 구매한 것이다. 샤토 무통 로칠드도 이 등급제도가 정해진지 118년만인 1973년도에 유일하게 등급변경이 되면서 1등급이 되었다.
이 두 와인 회사 중 좀 더 다이나믹한 면모를 보였고 근대 와인 역사에 끼친 영향이 심대한, 샤토 무통 로칠드를 생산하고 있는 바론 필립 드 로칠드 사가 이번 와인 제국 컬럼 2편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친인척 관계이면서 경쟁관계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도 중요하기에 함께 다루기로 한다.
바론 필립 드 로칠드 사가 유명한 이유는 보르도 그랑 크뤼 등급 제정 이후 지금까지 약 164년 동안 유일하게 등급 변경이 된, 그것도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상향 이동한 와이너리라는 것인데 이것 말고도 20세기 들어 와인 산업에 혁명적 기여를 한 점이 많기 때문이니 개요 정리 차원에서 그 내용부터 살펴보자.
왼쪽부터 무통 까데 (보르도 브랜드 와인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 오퍼스 원, 에스쿠도 로호 (붉은 방패라는 의미의 로칠드)
왼쪽부터 무통 까데 (보르도 브랜드 와인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 오퍼스 원, 에스쿠도 로호 (붉은 방패라는 의미의 로칠드)
첫째가 지금은 당연시 되고 있는 샤토 병입의 효시라는 것이다. 1924년 불과 22세의 나이였던 필립 드 로칠드 남작(나다니엘의 증손자 (1902~1988))이 자신의 양조장에서 직접 병입을 하여 판매하는 걸 최초로 시행하였다.
이는 와인 생산자가 직접 자신이 생산한 와인의 품질을 보증하는 셈이 된다. 그 이전에는 와인 생산자들은 중간 유통상인 네고시앙에게 맡겨서 병입을 했기에 중간에 네고시앙들이 이상한 장난질을 하더라고 어찌할 방도가 없이 그들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어서 진품여부의 논란이 늘 존재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걸 잠재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 네고시앙들의 힘이 강대했던 바 쉽지 않은 행보였을텐데 그는 나머지 4개의 특 1등급 샤토와 샤토 디켐의 오너들을 설득하여 추진하니 네고시앙들도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명분에 당대 최고명성을 가진 시장 지배자들을 참여하게 만들었으니 네고시앙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세계적인 금융 가문의 친인척이라는 명성도 무시 할 수 없었다.
둘째는 와인에 예술을 입힌 최초의 회사라는 것이다.
그는 1924년 샤토 병입을 하면서 동시에 라벨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 일환으로 와인업계 최초로 화가 친구의 작품을 라벨에 도입하였다. 몇 번 그렇게 하다가 1945년부터는 아예 매년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라벨로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의 이 우환 화백 작품도 2013년 라벨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칸 영화제도 매년 후원하여 무통 까데 라운지를 칸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오픈하여 세계 각국의 명배우와 영화 관계자들이 이 곳에서 칸 해변을 바라보며 휴식하거나 갈라 디너를 즐기게 해주고 있다.
셋째는 프랑스 보르도 특 1등급 회사 중 최초로 브랜드 와인 무통 까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통상 보르도 특 1등급 와인 회사들은 작황이 좋지 않은 해에는 그 포도로 1등급 와인을 만들지 않거나 세컨드 와인을 생산하여 출시하게 된다.
하지만 이 회사는 가격이 비싸서 좋은 와인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샤토 무통 로칠드를 만드는 기술로 무통 까데라는 브랜드 와인을 보르도 최초로 만들어서 세계화시켰다.
무통 까데는 오늘날 보르도 와인으로 전세계에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브랜드가 되었다.
넷째는 신대륙의 회사들과 콜라보를 통해 그 나라의 울트라 프리미엄급의 와인을 만들어 내어 그 나라 와인도 훌륭하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만든 최초의 회사이다.
구대륙에 속하는 프랑스를 벗어나 구대륙 회사로서는 최초로 신대륙이라 불리우는 미국과 칠레의 대표적인 와인 회사들과 합작으로 컬트 와인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선 미국은 로버트 몬다비와 손잡고 미국 컬트 와인의 효시인 오퍼스 원(Opus One, 1979년 첫 빈티지와 1980년 빈티지가 1984년에 동시 출시/회사는 1978년 설립)을 만들었고 칠레에서는 콘차 이 토로사와 함께 칠레 프리미엄 와인의 효시인 알마비바(Almaviva, 1997년 회사 설립/1998년 첫 빈티지 출시)를 만들었다.
이런 일들을 해낸 인물이 세계 금융왕국의 건설자인 암셀 마이어의 4대손인 필립 드 로칠드 남작(1902~1988)인데 그는 그랑프리 카 레이서이자 시인, 극작가이기도 하면서 연극 영화 제작자에 배우이기도 해서 다방면에 재능을 가진 팔방미인이었다.
그의 무남독녀 외동딸인 필립핀드 드 로칠드(1933~2014) 회장 역시 젊었을 때는 배우로 활동하다가 가문의 와인 사업을 맡게 되면서 칠레에 알마비바 합작사와 에스쿠로 로호(Escudo Rojo) 현지 독립법인을 설립했다.
19~21세기를 관통하는 흥미진진한 이 제국의 건설과 확장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칼럼을 기약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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