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제국 건설(8)/ 이철형
바론 필립 드 로칠드사(社)의 6대손 이야기(2)
와인 재벌가의 후계자 양성법과 6대손의 생각 엿보기
지난 칼럼에 이어 바론 필립 드 로칠드 사의 6대 수장 필립 세레이 드 로칠드(Philippe Sereys de Rothschild)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와인 제국의 현재 계승자의 철학과 사상을 알아본다.
Q. 지구 온난화가 현재 와인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와 필립 세레이 드 로칠드 회장.
필립 세레이 드 로칠드 회장(왼쪽)과 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
A. 오랜 세월 와인을 빚어온 입장에서 보면 기후가 일정한 적이 없었기에 사실 온난화 자체만으로는 큰 문제는 없다.
진짜 문제는 온난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과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환경생태계가 변하게 되어 기존에 없던 미생물이나 세균, 생물, 식물들이 와이너리에 생겨나는데 우리는 이런 생태 환경 변화를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와 분석을 해왔고 이를 통해 대응책을 마련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예상대로 되어 왔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앞으로도 이런 자세로 꾸준히 하면 될 것 같다.
* 필자의 생각 : 이 문제는 생태계 자체의 변화와 그 속도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각 생산자들의 적응 속도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것은 대자본일수록 그리고 유서깊은 생산자일수록 유리한 상황일 것 같다.
하지만 이들 역시 자신들이 개발한 대처 방식을 주변 생산자들과 공유할 것이라 보여진다. 생태계를 공유해야 해서 자신들만의 포도원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Q. 라벨에 유명 화가의 작품을 매년 부착할 정도로 예술 사랑이 남다른 것 같은데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나?
A. 외할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말씀하셨다. ‘와인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와인’이라고. 그래서 기금을 조성해서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예술 분야는 발레, 오페라, 극장, 음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원하고 있고 스포츠 분야도 후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칸 영화제 같은 곳에 후원한 지는 오래되었다.
* 필자의 생각 : 외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스피드광이라고 할 정도로 그랑프리 카레이서였으니 당연히 스포츠에도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Q. 와인 사업에서 경영하기 제일 힘든 분야가 어디인가?
A. 힘들지 않은 곳이 없다. 우선 톱이 되는 것이 힘들고 또한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더 힘들다. 굳이 이야기 하자면 브랜드 중에서 무통 까데(Mouton Cadet)의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브랜드가 가장 많이 노출되었고 생산량도 많기에 좋은 품질을 매년 잘 유지한다는 것이 가장 힘이 든다.
그리고 와인 품질에 미치는 영향 요인이 워낙 많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콕 찝어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특히 양조에서의 품질 유지가 가장 힘든다. 매년 기후 조건 등은 달라지는데 고객이 기대하는 예년과 유사한 높은 수준의 품질을 계속 유지해야 하니까...
* 필자의 생각 : 와인사업은 포도재배, 양조, 판매 유통으로 구성되어 소위 농업, 가공업, 유통업이 동시에 존재하는 전형적인 6차산업이다. 원재료인 포도의 품질이 좋아야 품질 좋은 와인이 나오니 포도재배가 8~90%의 중요도를 차지한다고 주장하는 생산자들이 많다.
유럽처럼 매년 기후변화가 심한 경우에는 매년 일정한 좋은 품질의 맛과 향을 내게 하는 양조가 또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판매가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 마케팅과 판매도 매우 중요하기에 어느 분야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 와인 제국의 경우에는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했기에 마케팅과 판매는 상대적으로 앞의 두 분야보다는 중요도가 덜 하다고도 볼 수 있다.
Q. 행복감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A.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와인을 마시게 하고 나누게 하고 즐기게 하는 것이 어려운데 이를 달성했을 때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Q.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이 불안정한 상황이 주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하나?
A. 불안정한 상황 자체를 즐긴다.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사실은 그래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와인을 많이 마신다. 와인이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와인 자체가 기적이지 않는가? 도대체 무엇이 포도로 하여금 이렇게 병마다 다를 정도로 다양한 맛과 향이 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포도로부터 와인 잔으로의 여행, 그것이 기적이라고 밖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놀랍 다.
Q. 그럼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무엇인가?
샤토 무통 로칠드 1961년 빈티지
A. 그건 자식들 중에서 누구를 제일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기억에 남는 것으로 바꾸어서 굳이 이야기 하자면 하나는 샤토 무통 로칠드 1961년 빈티지이다. 이 와인은 매번 마실 때 마다 다르다는 느낌이다. 한번도 같은 적이 없다.
이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러다 보니 어떻게 익어갈 것인 지 혹은 어떻게 개선될 것인가라는 궁금함이 계속되게 되는데 이것도 와인이 주는 두번째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퍼스 원 1987년 빈티지도 기억에 남는 와인이다.
외할아버지 덕분에 좋은 와인을 많이 마실 수 있는 것이 나에겐 행운이다.
* 필자의 주석 : 보르도 1961년은 세기의 빈티지이다. 로버트 파커를 스타덤에 올린 1982년 빈티지가 그 이후 그에 버금가는 세기의 빈티지라고 하고..
라따뚜이 만화영화에서 악역의 지배인이 주인공을 유혹하기 위해 권하는 와인도 1961년산 샤토 슈발 블랑이었다.
샤토 무통 로칠드 1961년산을 아직도 매년 마실 수 있다니 대단하고 그저 부럽기만 한데 이들은 매년 일정량을 미래를 위해 자신들만의 와인셀러에 별도로 보관해오고 있다.
오퍼스 원은 미국 컬트 와인의 원조로서 1987 빈티지는 1979년 이 와인의 첫 빈티지가 생산된 이래 처음으로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96점을 받아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Q. 와인을 쉽게 제대로 즐기는 법에 대해 설명한다면?
A. 좋은 와인은 복합적(Complex)이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초보자에게는 좀 생소할 수도 있다.
와인은 각자 자기 역사가 있다. 와인을 이해하기 위해 배경 스토리를 알아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약간의 배움이 필요하고 다른 와인들과 비교하며 마셔보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익숙해지고 제대로 즐기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니 느긋하게 시간을 두고 천천히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와인을 자주 접하는 것이 좋다.
Q. 바론 필립사가 마케팅을 잘하는 것 같다. 와인 마케팅은 어떻게 해야 할까?
A. 소믈리에와 유통업자, 그리고 와인 애호 가들을 대상으로 한 시음이 필요하다.
와인 붐은 미국은 4,50년 전에, 중국은 10년 전에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두 나라 모두 과정은 동일했다.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 필자의 생각 : 그런 의미에서 필자도 2000년부터 무려 17년간 와인나라 아카데미를 통해 한국에 와인 문화를 보급했었다.
와인은 음식이니 마셔보지 않고 구매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으로 2000년도부터 약 2년간은 와인 문화 보급을 위해 무료로 아카데미에서 시음 기회도 제공하고 산업분야의 전문가 양성을 위해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여 운영하였기에 현재 한국에서 소믈리에로 활동하는 1세대는 거의가 와인나라 아카데미 출신이다.
그 이후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도 소믈리에 과정이 생겼고 건국대학교와는 국내 최초로 교육부 학위 인정의 와인학 석사과정도 운영했다.
Q. 와인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A. 클린(Clean) 와인이 중요하다. 그리고 20~25년 전보다 지금 고품질 와인들이 많아졌듯이 앞으로도 많아져서 경쟁은 심화될 것이지만 전반적인 품질이 좋아지게 되어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다.
* 필자의 생각 : 클린이란 단어를 자꾸 사용하는데 여기에 함축된 의미가 친환경적이고 내추럴하게 포도와 토양의 본연의 테루아가 잘 표현된 그런 청정 와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와인의 맛과 향이 최고 수준으로 매년 가급적 유사하게 유지된다는 부대 조건도 붙는...
Q. 마지막으로 향후 새롭게 진출할 사업이나 신규 와이너리 투자 계획이 있는가?
A. 현재 찾고 있지만 톱 시크릿이라 말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계속 노력해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 벌써 그 날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갈라 디너 리셉션 시간이 되어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디너 장소로 자리를 옮겨갔다.
이날 리셉션에서는 무통 카테로 만든 ‘그린 카데’라는 와인 칵테일이 서빙되었다. 그리고 디너 행사는 예술을 사랑하는 가문을 위해 소프라노와 테너의 독창과 중창으로 문을 열었다.
신라호텔 영빈관 토파즈 홀 디너 현장.
* 서비스 코너
무통 카데 소비뇽 블랑으로 그린 카데(Green Cadet) 칵테일 맛있게 만드는 법
1. 큰 와인잔에 아이스 큐브 즉 사각 얼음을 적당량 채운다.
2. 여기에 슈가케인(Sugarcane)(=사탕수수)시럽 100ml를 넣는다.
3. 무통카데 소비뇽 블랑을 120ml를 넣는다.
4. 여기에 라임 한 조각을 넣고 빨대를 꽂으면 완성!
맛은 아주 상큼 신선하고 감미까지 있어서 여름에도 좋고 한 겨울에도 짜릿 상쾌하다.
초봄엔 연두빛과 같은 봄의 상큼함을 선사한다.
기분 전환용으로도 아주 그만일 듯.
리셉션용으로 좋고, 집에서 가볍게 혼자 취미 생활하며 즐기기에도 좋다.
와인의 흑사병 필록세라 이야기(1)
필록세라의 대서양 횡단 전파기
인류역사에서 큰 돌림병으로 인해 지금의 코로나19처럼 세계가 공포에 질렸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멀리는 14세기 중엽 유럽 인구를 1/5로 줄어들게 하고 백년전쟁도 잠시 멈추게 할 정도로 피해가 컸던 페스트가 그 중 하나다.
원래는 벼룩이 매개가 되어 전파되는 전염병으로 아시아 내륙 지역의 풍토병이었던 이것이 1347년 킵차크 부대에 의해 유럽에 전파되어 수년에 걸쳐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페스트의 병원균은 500년도 더 지난 1894년 프랑스 세균학자에 의해 확인되었다.
다음으로는 1918년 초여름에 1차 세계 대전으로 프랑스에 주둔하던 미국 병영에서 발생하여 8월말 첫 사망자가 나왔고 이 참전 군인들이 미국으로 귀환하면서 미국으로 전파되어 그후 전세계에서 2년간에 걸쳐 약 2000만 명 이상을 사망케 한 스페인 독감이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인류 최대 재앙이라고 불리우는데 당시에는 바이러스 분리 기술이 없어 원인을 모르고 있다가 2005년 미국의 한 연구팀이 알래스카에 묻혀 있던 여성의 폐조직에서 이 바이러스를 분리 재생해 내서 원인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와인의 역사에도 자칫하면 인류역사에서 와인이 사라질 뻔한 이와 유사한 공포의 질병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필록세라(phylloxera)다.
필록세라는 포도나무에 생기는 병명이 아니라 포도나무 뿌리에서 뿌리 진액을 먹고 사는 일종의 진드기/진딧물의 명칭이다.
와인의 역사에서는 포도나무의 흑사병이라고 불리울 정도인 플록세라는 19세기 말 유럽 전역은 물론 전세계의 포도밭을 거의 쑥밭으로 만들어 버린 무서운 존재다.
그것도 바이러스처럼 1,2년만에 마무리 된 것이 아니라 무려 3,40년 동안에 걸쳐서 와인 산업 전체에 피해를 입혔다.
진드기라면 8000년이나 되는 와인 역사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변종도 아닐텐데 어떻게 유럽이 그렇게 피해를 보게 된 것일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더구나 이것의 원산지는 북미대륙의 동부지역이었다.
그 사연은 이렇게 전개된다.
19세기 중후반경에 영국의 열혈 식물학자들이 미국 포도나무를 수집하여 영국으로 가져갔다.
이때 북미대륙의 필록세라가 대서양을 건너 간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의 포도원이 큰 피해를 보고 난 후 유럽대륙에서 피해를 보았다는데 유럽대륙의 경우 불가해한 것이 첫 대규모 피해 사례가 영국에 가까운 보르도나 부르고뉴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먼 1863년 프랑스 남부 론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남부 론의 포도원이 황폐화되기 시작해서 그 이후 1870년대에 프랑스 등 유럽은 물론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다시 미국으로 까지 퍼져 나가서 1900년경까지 약 30~40년에 걸쳐 전세계 포도재배업자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런데 여기에도 첫 피해에 관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필록세라의 피해를 먼저 본 것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1857년 소노마의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인 부에나 비스타 와이너리의 설립자인 아고스톤 (Agoston Haraszthy) 백작이 1861년 프랑스, 독일, 스위스의 와이너리들을 돌면서 350여종의 다른 유형의 포도나무 샘플을 모아서 미국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소노마에서 실험적인 재배를 했는데 불행하게도 포도나무가 전부 갈색으로 변하더니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최초의 필록세라 감염 사례가 되는 셈인데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했고 이로 인해 그는 도산한 후 미국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그 이전에는 없던 것이 19세기 중후반에 왜 이렇게 갑자기 많이 발생했을까? 어떻게 필록세라는 원산지인 북미대륙 동부 지역에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것일까?
우선 19세기 중후반은 16세기 초중반에 시작된 신대륙 발견사와 식민지 개척사를 타고 유럽의 문명이 신대륙에 전해지고 약 300여년이 경과하여 유럽의 문물이 식민지로 전해져서 유럽의 포도나무가 식민지에 널리 퍼져서 정착되는 시점이었다.
또한 반대로 식민지의 문물이 유럽으로 전해지던 시절이기도 했다. 유럽사회를 벗어나 지구 전체가 하나로 되어가던 그 초기였던 것이다.
1850년대에 유럽의 포도원에서 포도나무에 흰가루 곰팡이병(Powdery Mildew)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유럽 식물학자들이 미국 포도나무는 이 병에 좀 더 잘 견딜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 포도나무 샘플을 가져왔는데 여기에 필록세라가 따라 온 것이다.
이 시기에 마침 식물을 장시간 살려서 옮길 수 있는 밀폐 유리 용기가 개발된 것도 한 몫을 한다. 당시 운송수단인 배로 운반할 때 이 유리 용기에 넣어 갑판위에 두면 햇볕을 받으며 장기간 여행을 해도 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증기선이 운항되면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미국간의 왕복이 빈번해지게 된 것도 이들의 교류에 큰 기여를 했다.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한 필요성과 과학 기술의 발달이 시기적으로 딱 맞아 떨어져서 좋은 점도 많았지만 서로 면역력이 형성되지 않은 병원균이나 곤충도 본의 아니게 전파가 용이하게 된 것이다.
피해규모는 얼마 정도였을까?
피해 규모는 프랑스만 놓고 볼 때 1875년 총 와인 생산량이 84.5백만 헥토리터였던 것이 1889년 23.4백만 헥토리터로 줄었으니 무려 72%가 14년간에 걸쳐 감소했다.
그래서 유럽 전역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전 유럽의 2/3에서 아주 비관적으로는 9/10가 황폐화되다시피 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 정도로 피폐해지니 프랑스 정부에서는 이를 퇴치하는 방법을 내는 사람에게 당시 2만 프랑(오늘날 가치로는 일백만불)의 상금을 걸 정도였고 이것은 나중에 금액이 올라가 현재 가치 기준으로 500만불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이를 해결하게 되었을까?
처음 겪는 일이니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모두가 당황했다.
그리고는 수년에 걸쳐 살펴본 결과 모래와 점판암이 많은 지역은 그나마 피해가 없었고 건조한 지역에서는 황폐화되는 속도가 지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여전히 근본 원인을 찾지 못했다.
민간에서는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생각으로 두꺼비를 산 채로 각 포도나무 아래에 묻는 일도 있었고 확산 방지를 위해 포도원을 불사르기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한편 각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1868년부터 1871년의 불과 3년 사이에 450여편의 관련 논문을 쏟아낼 정도로 원인과 해결책 연구에 몰입하면서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Jules Émile Planchon(좌) 과 Charles Valentine Riley(우).
Jules Émile Planchon(좌) 과 Charles Valentine Riley(우).
그리하여 드디어 프랑스 식물학자(Jules Émile Planchon:1823-1888)와 미국 곤충학자(Charles Valentine Riley:1843-1895)로 구성된 연구팀이 원인이 필록세라라는 것을 발견하고 미국산 포도나무가 필록세라를 이겨낸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미국산 포도나무(Vitis riparia, Vitis rupestris, Vitis Labrusca)의 대목에 유럽산 포도나무(Vitis Vinifera)를 접목하는 해법을 찾아냈다.
그러나 식물이다 보니 환경이 바뀌면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바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미국 텍사스주의 토마스 문손(Thomas Volney Munson:1843-1913)이라는 원예학자였다.
그는 필록세라에 저항력이 있으면서도 프랑스의 기후와 토지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미국 포도나무 대목을 발굴하고 제공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문제에 대한 각 분야의 전문가의 협업과 국제적인 공조로 와인의 흑사병을 해결한 것이다.
그럼 이들은 필록세라가 원인이란 걸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리고 원인을 발견했는데도 왜 그 이후로 2, 30년 동안이나 필록세라의 피해는 더 지속된 것일까?
이 과정은 다음 편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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