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흑사병 필록세라 이야기(2)/ 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코로나19의 백신이 하루 속히 개발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19세기 중후반 약 40년간에 걸쳐 유럽 와이너리의 70~80%가량을 황폐화시키며 전세계 포도농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와인 흑사병의 원인과 그 해법을 발견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알아보자.
프랑스 식물학자 플랑송(Jules Émile Planchon:1823~1888)은 당시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방의 몽펠리에 대학의 식물학 학장으로 재직중이었다.
그는 1866년에 그의 동료들과 첫 대규모 피해 사례가 된 프랑스 남부 론 지방을 그 원인과 해결책을 연구하고자 방문한다.
여기서 그 팀 동료 중의 한 명이 순전히 실수로 살아있는 포도나무를 뽑아보게 되는데 이 때 뿌리에서 프랑스에서는 보지 못했던 필록세라라는 진딧물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이 원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럼 그동안에는 왜 이 진딧물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 이전에는 죽은 포도나무를 뽑아서 원인을 찾으려고 했지 어느 누구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포도나무를 뽑아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죽은 포도나무에서는 필록세라가 더 이상살 수 없어서 다른 살아 있는 포도나무로 옮겨가고 없었으니 죽은 포도나무를 아무리 살펴도 원인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필록세라를 발견한 그들은 파리와 보르도의 전문가들에게 이를 보고한다.
그러나 파리와 보르도의 전문가들은 이들 시골뜨기(?)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다가 무려 4년 가까이 경과한 1869년에서야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그 해 봄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부 론에 홍수가 발생하자 거의 죽어가던 포도원이 이 홍수로 인해 물에 잠기는 일이 발생했다가 물이 빠지면서 포도나무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서야 해충들이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필록세라가 원인이란 것을 인정했다.
그럼 파리와 보르도의 전문가들은 왜 처음부터 필록세라가 원인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을까?
당시 전문가들의 과학적 사고 방식은 질병의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보기 보다는 포도나무 자체의 불균형에 기인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 전문가의 실력을 은근히 무시하는, 파리와 와인의 성지 보르도의 전문가로서의 권위 의식과 자부심도 한 몫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플랑송 등은 필록세라가 미국에서 왔다는 것과 미국의 포도나무들은 이것에 잘 견딘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포도나무 자체가 해답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다윈의 진화론을 믿고 있던 미국 미주리주에 거주하던 곤충학자 릴리(Charles Valentine Riley:1843~1895)도 이들의 견해에 동조하여 필록세라가 원래부터 존재하던 미국 포도나무 종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고 미국 포도나무종은 필록세라에 잘 견딘다는 것에 착안하여 미국산 포도나무종을 대목으로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1890년 영국의 유머와 풍자 주간지 Punch에 소개된 필록세라 삽화로 여기에는 ‘진정한 미식가, 필록세라는 가장 좋은 와이너리들을 찾아내고 가장 좋은 와인에만 달려든다’라고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 [사진=위키디피아]
그럼 이제 원인도 알았고 해답도 찾았으니 순풍에 돛 단 듯 문제가 술술 풀려나가야 하는데 현실은 또 그렇지 못했다.
이를 현장에 적용하는데 문제가 발생했고 제대로 된 해답을 찾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플랑송과 릴리는 1871~1872년 사이에 미국에서 약 700,000만개의 포도나무 가지를 프랑스로 수입한다.
하지만 이때는 미국인들도 미국 포도나무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고 프랑스인은 더더욱 이에 대해 잘 몰랐던 터라 농민들은 초기에는 위험을 줄인다는 생각에 접붙이기 방식 대신에 그냥 미국산 포도나무 가지를 직접 통째로 심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된다.
실제로 플랑송도 1873년에 귀국하여 미국의 비티스 라브루스카(Vitis labrusca)종인 콩코드(Concord)나 클린턴(Clinton)이라는 포도나무를 대목으로 사용하는 대신에 이들을 통째로 직접 심을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 북부지역의 추운 야생지역이 고향인지라 프랑스의 따뜻한 기후에는 맞지 않아 미국에서와는 달리 필록세라에 덜 강한데다가 그나마 여기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들이 전통적인 유럽 품종으로 만든 와인들과 맛과 향이 다른 데다가 좋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국 초기에 미국종을 그대로 심은 포도재배업자들은 대부분 도산하고 말았다.
한편 접붙이기를 시도한 농가들도 있었는데 이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접목 자체는 쉬운 편이었으나 프랑스 품종과 이 미국산 대목이 서로 적응하고 또 미국산 대목이 바뀐 환경하에서 필록세라에 대한 적응력을 갖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와 조사 끝에 필록세라에 견디며 프랑스 기후에 맞는 비티스 리파리아 (Vitis riparia) 와 비티스 루페스트리스(Vitis rupestris)라는 종을 찾아냈고 1870년대에 몽펠리에 대학에서 프랑스에서도 잘 견디는 12개의 대목을 키워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들은 1890년대에는 교배를 통해 프랑스 기후 조건에 더 적합한 대목용 포도나무를 개발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 접붙이기와 미국산 포도나무종을 직접 심는 방법 이외에 시도한 것이 교배종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 보르도 대학에서는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를 부모로 하고 비티스 라브루스카 (Vitis Labrusca) 등의 대목재를 자식으로 하는 교배종(hybrid)을 만드는 경쟁에 돌입하여 접목이 필요 없는 새로운 교배종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교배종은 병충해와 추위 등 기후 환경에는 강하지만 향과 맛이 기존의 유럽종인 비티스 비니페라를 따라주지 못해 결국 EU에서는 이를 금지하거나 적극 권장하지 않게 되어 오늘날 유럽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이 교배종들은 미국 와인생산의 90%를 차지하는 캘리포니아, 오레곤, 워싱톤 주를 제외한 온타리오주, 뉴욕주, 미주리주 등지에서 일부 재배되고는 있다고 한다.
대목과 교배종 개발 이외의 다른 방법도 시도되었다.
1870년대 정부와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들은 해충제를 사용하여 극복해보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고 일부 농가들은 외국의 대목이나 포도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모래땅에서 키워서 이겨보려고 했으나 비료를 주어야 하고 관개를 하는 과정에서 필록세라가 침범하기도 해서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더구나 이 시기가 프랑스가 프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막바지이기도 해서 정부로부터의 지원 역시 기대할 수 없었다.
이외에도 일부 효과가 있는 화학약품이 개발되기도 했으나 특수 조건에서만 주로 효과가 있는데가다 이 작업과 관련한 숙련자가 필요하고 이것을 매년 사용해야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할 경우 포도나무가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약해지는 부작용이 생겨서 결과적으로 이 방법 역시 의미가 없게 되었다.
1890년 초반까지도 필록세라의 큰 피해를 입히지 않고 있던 샹파뉴 지방에서는 알파파 같은 몇 가지 식물을 포도원에 심어서 필록세라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천적관계를 이용하는 방법도 권장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역시 효과가 없게 되었다.
필록세라를 극복해보려는 또 다른 시도는 아예 필록세라 청정지역에 포도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이 때 프랑스의 많은 와인 생산업자들이 오늘날의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등지에 포도원을 조성했었으나 이 지역 역시 1902년에서 1905년사이에 필록세라의 침범으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스페인의 리오하 지역 역시 이 필록세라를 피해 보르도 와인생산자들이 일찍이 건너간 지역중의 하나였는데 이곳 역시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필록세라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럼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프랑스 정부가 내걸었던, 오늘날 가치로 무려 500만불까지 올라간 상금은 어찌 되었을까?
대목 방식을 찾아낸 플랑송이나 릴리는 과학자답게 애초부터 상금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실험적 대안을 채택하여 상용화까지 성공한 보르도의 포도재배업자(Leo Laliman)는 이 상금을 타려고 신청했으나 정부가 이 접붙이는 방법은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고 방지법을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는 핑계를 대며 상금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 환경에서도 견디는 대목용 미국산 포도나무 종을 찾아내고 개발한 원예학자인 , 미국 텍사스주의 토마스 문손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1888년 레종 도뇌르(Légion d'honneur)다음으로 높이 인정받는 농업기사 훈장(Chevalier du Mérite Agricole)을 받았다.
이것은 미국인으로서는 토마스 에디슨에 이어 두번째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텍사스의 포도인(Grape man of Texas)’으로 추앙받고 있다. 곤충학자인 찰스 릴리도 프랑스로부터 1884년에 레종 도뇌르(Légion d'honneur)와 기사훈장을 받았다.
그럼 당시 지구상의 포도원들 중에 필록세라의 피해를 입지 않은 운 좋은 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칠레,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의 콜라레스 지역과 호주의 일부, 스페인의 일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 주변, 그리스의 산토리니, 독일 모젤 지역 등은 이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
대부분 외부와 자연적으로 단절되거나 인위적으로 단절시킨 지역 혹은 기후나 토질 조건(모래가 많거나 점판암이 많은 토양)상 해충인 필록세라가 번식하지 못하는 지역들이었다.
유럽종인 비티스 비니페라 포도 품종 중에서 필록세라의 피해를 피한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토착 화이트 품종인 아시리티코(Assyrtiko)와 스페인의 레드 토착 품종인 후안 가르시아(Juan Garcia)가 그 주인공들인데 이들이 자라는 지역의 토질이나 기후 조건이 일반 다른 지역에 비해 특이하기도 해서 반드시 품종만의 요인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는 한다.
호주의 경우는 소위 봉쇄작전으로 일부 지역을 지켜낸 대표적인 사례이다.
1870년대초 퀸즈랜드가 필록세라에 감염되자 1874년에 포도나무와 장비, 기계 등을 주(州)간에 이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포도나무 보호법을 제정하였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타스마니아주와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는 필록세라의 청정지역을 자랑한다. 즉 이들 지역은 접목하지 않은 유럽의 포도품종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각 나라의 입국시에 동식물의 검역을 엄격하게 실시하게 된 배경에는 이 필록세라 사태도 일조를 했다.
그리고 병충해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름 다양한 방법으로 치열하게 노력하였는 지도 보여준다.
이렇게 축적된 경험과 문제 해결 과정들은 분야는 다르지만 코로나19의 극복에도 영감과 지혜를 줄 것으로 확신한다.
와인의 흑사병 필록세라 이야기(3)
[사진 출처=퍼블릭도메인픽쳐(www.publicdomainpictures.net/)]
코로나 19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가을부터 새로운 팬데믹이 올 수도 있다는 어두운 전망들이 나오면서 우리를 여전히 불안하게 하고 있다.
와인의 흑사병이라는 필록세라는 어떨까?
필록세라 문제가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과연 완전히 해결되었을까?
이 역시 앞으로 다시 기승을 부려 인류 주류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을 사라지게 하거나 와인의 가격을 폭등시킬 우려는 없는 것일까?
그 가능성을 점치기 위해 필록세라의 전파기와 극복기에 이어 마지막으로 이의 현재 진행형과 박멸 가능성을 알아보자.
19세기 중후반과 같이 거의 전지역이 초토화되다시피하는 일은 없지만 여전히 필록세라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은 국지전 형태로 세계 곳곳의 와이너리들에서 계속되고 있다.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지만 메르스, 사스, 코로나 19처럼 필록세라도 변종까지 생겨났다.
그것도 필록세라에 잘 견디는 포도 품종의 원산지라는 미국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근 100년만인 1983년에 바이오타입 B(biotype B)라는 변종이 생겨나서 그동안 필록세라에 잘 견디는 것으로 인기를 끌어 대목으로 사용하던 포도나무(AXr1)를 공격하고 그동안 필록세라의 안전지대이자 청정지역이라고 생각했던 오레곤, 워싱톤주를 덮친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십수년 동안 가꾸어왔던 포도원을 갈아엎고 새로이 심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 나파밸리의 경우에는 1990년대에 이로 인해 전체의 2/3에 가까운 포도원들이 새로이 포도나무를 심어야 했고 미국 와인의 대부라 불리우는 로버트 몬다비는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와이너리의 가족 경영을 포기하고 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시켰다는 설이 나돌 정도다.
그런데 그 원인은 변종도 변종이지만 안타깝게도 필록세라에 강한 것으로 인기를 누렸던, 이 교배를 통해 개량된 대목용 포도나무의 부모 나무 중의 한쪽이 필록세라에 약한 유럽종인 비티스 비니페라가 섞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실수가 있을 수는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 작은 실수가 한 지역 혹은 한 산업 전체의 존망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섬뜩해지기까지 한다.
특히나 바이오 산업같이 생명을 다루는 분야에서의 실수나 데이터 조작같은 도덕성의 결핍은 그 대가가 너무 클 것 같다.
그럼 20세기의 눈부신 과학기술을 가지고도 도대체 왜 근절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변종이 생긴 것도 문제지만 여기에는 원초적인 필록세라의 생물학적 요인이 존재한다.
이 필록세라가 바퀴벌레처럼 박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상 곤충의 경우 변태 단계의 어느 한단계를 차단하면 그 이후의 단계로 변화하지 못해서 번식자체가 차단되어 멸종하게 되는데 필록세라는 다르다는 것이다.
필록세라의 무서움은 각 변태 단계별로 독립적으로 생존 및 번식이 가능해서 어느 한 단계를 차단한다고 해도 각기 다른 단계에서의 독립적인 생존과 번식을 통해 다시 전체 변태과정을 지속해간다는 데에 있다.
크게 보면 이들은 포도나무 잎의 유충, 줄기의 유충, 뿌리의 유충, 날개 유충의 4단계 변태과정이 존재하는데 이들 각각의 단계에서 자체 번식이 가능하다고 한다.
통상은 성체만이 번식을 할 수 있는데 4단계 각 단계별로 성체가 되는 셈이다.
잎의 유충. [사진=위키디피아]
포도 나무 잎에 사는 유충은 암컷과 수컷의 알로 나뉘는데 이것이 부화하면 입이 없어 먹지를 못하고 곧 죽게 되는 대신 죽기 전에 서로 교접해서 겨울에 암컷이 나무 줄기 껍질에 알을 하나 낳고 죽는다.
그런데 이것이 봄이 되면 부화해서 잎으로 올라가서 다시 단성생식으로 대략 한 마리가 200개의 알을 낳는데 이 알이 부화하면 다른 잎으로 가거나 뿌리로 가게 되고 뿌리로 간 유충은 수액을 먹기 위해 나무 뿌리에 구멍을 낸다.
이때 통상은 나무 자체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진액을 내서 그 상처를 막아 뿌리가 흡수한 양분이 줄기를 타고 잎으로 올라가는 방어 시스템을 작동시키는데 필록세라는 나무가 이 조치를 못하도록 독을 주입하여 계속 구멍이 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버려서 방어시스템을 무력화시킨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나무가 뿌리로 하여금 영양분을 줄기나 잎으로 공급하지 못하게 하여 포도나무가 점차 죽게 된다.
이 뿌리 유충은 또 매 여름마다 동일한 포도나무의 다른 뿌리나 다른 포도나무의 뿌리에 알을 낳으면서 7년 이상을 살아가는데 이 알들은 가을에 부화해서 동면한 후 봄에 수액이 오르기 시작할 때에 활동을 개시한다.
습기가 있는 지역에서는 이것이 날개가 있는 진딧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다시 포도나뭇잎 뒷면에 암컷과 수컷의 알을 낳는다.
생물학적으로는 참 신비스러운 생존 방식인데 포도나무나 이를 퇴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이건 대책이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의 대응방식에 맞추어 이들도 진화하여 느리지만 변종까지 생겨났다.
그래서 20세기 초반에 필록세라가 극복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세계의 포도재배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필록세라 자체의 독특한 생존 방식과 변종 형태 이외에도 이들이 여전히 박멸되지 않고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부 포도원들이 ‘우리 와인은 순수 혈통’이라는 특화 전략을 꾀하여 필록세라에 강한 포도나무를 대목으로 사용하지 않는 접붙이기 방식 대신에 아예 비티스 비니페라 종 자체를 심고 있기에 여전히 그들의 생존 무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 온난화도 한몫을 하는데 혹한을 잘 견디지 못한다는 필록세라에게 이것은 오히려 생존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유난히 추운 혹한의 겨울을 지낼 때 동네 어르신들이 내년에는 대풍년이 들 것이라는 말을 새삼 상기시켜주는 대목이다. 병충해를 일으키는 세균이나 곤충들도 혹한은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니..
그런데 아무리 박멸이 어렵다고 해도 왜 필록세라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앞에 언급한 것처럼 독특한 생물학적 생존 방식으로 인해 박멸하기가 어렵다는 점 말고도 조기 발견이 어렵다는 것이 피해를 키운다.
처음 포도원을 조성할 때 감염된 포도나무가 있을 경우 첫해부터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수년이 지나서 포도나무가 죽어가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그 조짐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조성된 포도원의 경우에는 필록세라에 감염된 경우 초기부터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10~15년의 세월이 경과하고 나서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통상 건강해보이는 포도나무를 뽑아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죽은 나무라야 뽑아서 살펴보는 것이 농부의 마음인데 죽은 나무의 경우에는 필록세라는 이미 다른 나무로 옮겨가고 없어 발견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전 포도원을 갈아엎는 방법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경우 새로이 포도원을 조성하는데 만도 최소 4~5년이 소요된다. 생산없이 조성에만 4~5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비록 포도가 포도나무를 심고 3년이면 열린다고는 하나 어린 포도로 만든 와인은 풍미가 덜하여 고급 품질의 와인을 만들 수도 없으니 시장성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일단 감염되면 알아차리고 재조성하여 시장성있는 품질의 와인이 나오기까지는 빨라야 최소 7~10년이 소요되니 이런 긴 기간을 수입없이 버틸 포도농가도 없고 이런 농가에 지원할 금융기관도 없다.
결국 예방이 최고이고 운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럼 필록세라 극복 기술은 어디까지 왔을까?
소비자나 생산자나 모두 앞으로도 계속 불안한 상태로 가슴 졸이며 지내야 하는 것일까?
우선 다양한 유형의 필록세라에 대응할 수 있는 대목용 포도나무의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포도원으로 들어가는 기계나 사람들의 소독에도 신경을 쓰고 있고 포도원에 작업하러 들어가는 횟수를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의 경우에는 자주 포도원에 들어가야 하므로 이 또한 쉽지는 않다.
2018년도에는 한 생물학 연구에서 필록세라에 견디는 유전형질을 찾아내기도 했고 호주에서는 DNA프로파일링 기술로 토양에서 필록세라의 유전자물질을 감지해내어 조기에 포도원의 필록세라 감염여부를 발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실험실 연구 단계라서 상용화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것이 상용화되면 드론 등의 기술을 함께 활용하여 효율적인 저비용 공중 촬영 등을 통해 필록세라 조기 경보 시스템이 개발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조기 발견이 그나마 차선책으로라도 중요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포도원 재조성의 시간을 아주 크게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고 첫 포도원 조성시에도 필록세라의 감염 여부를 알 수 있기에 미연의 방지책이 되기 때문이다.
필록세라의 궁극적인 박멸이나 이에 잘 견디는 포도나무 자체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연구는 지속될 것이고 해충이나 세균과 인간과의 물고 물리는 전쟁에서 지금까지는 적어도 인간의 승리의 역사였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도 와인을 즐기고 있고 앞으로도 즐길 것이다.
다만 이 승리의 역사 배경에는 항상 숨은 공로자들이 있었으니 코로나19와의 피말리는 전쟁의 일선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분들에게 감사와 찬사를 보내듯이 필록세라의 위협 속에서도 인류사에서 8000년 역사를 이어주고 있는 포도농가와 와인생산자 그리고 과학자들에게도 와인을 마실 때마다 감사와 찬사를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인류와 인류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그리고 이 순간에도 노력하고 있는 모든 숨은 공로자들을 위해 감사의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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