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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와인 산업에서의 사고 발상 전환 2

by 자한형 2024.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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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산업에서의 사고발상 전환(3) /이철형

오렌지와인

오렌지 와인이라고 하면 오렌지를 발효하여 만든 와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오렌지로 만든 와인은 그다지 인기가 없어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와인업계에서는 오히려 오렌지 와인이라고 하면 양조할 때 발효기간 동안 포도즙에 포도 껍질과 씨를 담가두어 포도껍질과 씨의 성분이 추출되게 하는 화이트 와인을 오렌지 와인이라고 한다.

이렇게 화이트 와인을 만들면 포도씨의 리그닌에서 추출된 성분에 의해 일반 화이트 와인보다 진한 오렌지 색조를 띄게 된다. 이 색깔을 보고 영국의 한 와인 수입상이 사용한 용어를 와인 전문 잡지인 디캔터 기자가 활용하면서부터 오렌지 와인이라는 명칭이 널리 퍼졌다.

오렌지 와인의 다양한 색상들. [사진=아시아 와인 트로피 와인 컨퍼런스]

이런 오렌지 와인이 등장하기 전에는 우리가 현재 마시는 거의 대부분의 화이트 와인은 포도껍질과 씨를 포도즙에 담가두는 과정(이를 침용maceration이라고 한다)을 거치지 않았다.

포도를 수확해서 좋은 포도송이를 선별한 다음 이것의 줄기를 제거하고 포도알갱이를 압착하여 포도즙을 짜고 껍질과 씨는 분리해서 버리고 포도즙만을 효모로 발효시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 양조법이다.

침용은 레드 와인 양조시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로제 와인도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블렌딩하여 만들지 않는 다음에야 침용 시간은 레드 와인보다 짧지만 필수 코스다.

침용을 하면 껍질의 색소와 껍질에 있는 몸에 좋다는 페놀 성분과 향 성분 등이 추출되기에 로제와 레드 와인의 붉은 색을 얻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침용하지 않은 와인(왼쪽)과 침용한 피노 그리지오(화이트 품종) 와인. [사진=플리커]

레드 와인의 경우에 침용 기간은 통상 발효기간인 10~14일 정도이고 길어야 3주 정도에 불과하지만 오렌지 와인의 경우에는 4일에서 1년 이상까지 양조가에 따라 침용 기간이 달라진다.

그리고 오렌지 와인의 경우에는 주석산을 첨가한다거나 이산화 황을 첨가한다든가 하는 것을 최소화하거나 심지어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 일반 와인 양조와 다른 점이다. 심지어 인공배양 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포도 껍질에 있는 천연 효모에 의해 발효가 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양조시에도 일반 화이트 와인처럼 온도를 15이하로 낮추어 발효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상온에서 발효하는 경우도 많고 일부는 변형된 침용 방법으로 발효 전에 10~15의 낮은 온도에서 발효가 되지 않는 상태로 최대 24시간 정도 침용했다가 그 이후 발효를 진행하거나 반대로 상온인 18정도에서 4~8시간 침용했다가 그 이후 낮은 온도에서 발효를 진행하기도 한다.

오렌지 와인은 일반 와인처럼 작은 오크통에서 숙성하지 않고 오크통을 사용하더라도 이미 사용한 적이 있는 큰 오크통을 사용하거나 오히려 오크 성분의 영향을 받지 않고 포도 자체의 향과 맛을 살리기 위해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고 스테인레스 스틸통이나 시멘트 발효조, 토기 용기 발효조를 사용하여 만드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렇게 만든 오렌지 와인은 일반 화이트 와인과 무엇이 달라질까?

오렌지 와인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면 단순히 색깔만 더 진하게 추출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화이트 와인이 주는 신선하고 상큼한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와인이 탄생한다.

산도가 높아 더 시고, 신맛의 종류도 사실은 산화 방지를 위해 침용을 오래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산화 현상이 생겨 상한 사과나 쉐리류의 신맛이 난다.

그리고 오크 숙성을 하지 않아도 헤이즐넛이나 브라질 너트 등의 너트류의 향과 꿀향, 말린 오렌지 껍질 향 등이 나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껍질에서 탄닌이 우러나서 탄닌감도 있는 강건한 스타일의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 된다.

아르만테스 마카베오 (오렌지 와인인데도 꽃향과 과일향이 일품이고 신선 상큼하다.)

따라서 오렌지 와인 양조가들의 숙제는 기존의 화이트 와인처럼 꽃향과 과일향을 간직한 채 독특한 다른 향과 맛을 더하게 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오렌지 와인의 소비자층은 소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존의 상큼 신선한 스타일의 와인을 좋아하는 다수인 소비자들에게도 어필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묵은지가 맛있기는 하지만 자주 먹지는 않고 묵은지 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와 같다.

그럼 이런 오렌지 와인은 21세기에 들어 새로이 발명된 것일까? 역사적으로 보면 오렌지 와인의 양조방식은 6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와인의 발상지라고 추정되는 코카서스 지역의 조지아에서는 우리의 장독같은 케브리(Qvevri)라는 토기 용기를 땅에 묻어두고 여기에 포도즙과 껍질 등을 함께 넣고 돌로 입구를 막고 밀랍으로 밀봉하여 와인을 만들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는 곳이 많다.

과거에는 유럽의 거의 대부분의 와이너리들도 포도껍질과 씨를 침용하는 방식으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196,70년대 들어 냉각 기술 등의 과학 기술을 도입하여 신선하고 상쾌하고 상큼한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 위해 침용을 하지 않는 현재 스타일의 화이트 양조 방식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초반 조지아를 방문했던 서유럽의 양조가들 중 누군가가 귀국하여 오렌지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다른 양조가들에게도 권유하기 시작했다.

조지아의 각종 케브리(왼쪽)과 케브리를 땅에 묻은 와이너리. [사진=플리커]

여기에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양조가들이 동참하면서 과거 방식의 부활을 넘어 하나의 운동(Movement)차원으로 전개되었고 이들이 각종 페스티벌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21세기 들어 세인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맥주에서 라거 방식이 과학 기술 발전으로 저온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 보다 부드럽고 상큼 신선한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 생산 방식이고 에일 방식이 상온발효를 하면서 변질을 막기 위해 홉을 많이 넣어 강하고 거친, 역사적으로는 라거보다 오래된 과거 스타일 맥주 생산 방식으로 만든 것인데도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에일 맥주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것처럼 오렌지 와인도 과거 방식인데 오히려 와인 세계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과일 오렌지로 만든 와인과 혼동이 생길까봐 양조가들은 오히려 포도 껍질 및 씨와 접촉한 와인이라는 의미의 스킨 컨택트 와인(Skin Contact Wine)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편이다.

엄밀히는 스킨 컨택트 화이트 와인이다.

하지만 레드 와인은 껍질에서 색깔을 우려내기 위해 이 과정이 필수코스이기 때문에 굳이 이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통상은 화이트란 단어를 빼고 스킨 컨택트 와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과일 오렌지 와인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냥 색깔만을 나타내는, 보석인 호박 또는 호박색을 의미하는 앰버(Amber)라는 단어를 넣어서 앰버 와인이라고도한다.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피노 그리지오로 만든 오렌지 와인을 적갈색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어인 라마토(ramato)를 사용하여 라마토 와인이라고도 한다.

오렌지 와인 페스티벌 (매년 봄에 슬로베니아의 이졸라(Izola)에서, 가을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

오렌지 와인 페스티벌. 이 페스티벌은 매년 봄에 슬로베니아의 이졸라(Izola)에서, 가을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된다.

화이트 와인의 세계에 침용한 와인과 침용하지 않은 와인이 등장하여 공존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늘 새롭거나 색다른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역사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서 부활시키려는 일부 생산자들의 노력도 숨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 좋고 그동안 별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양조가들은 이를 계기로 새롭게 각광을 받을 기회가 생겨서 좋고 이 방법을 채택하지 않은 양조가들에게는 고민거리이기는 하지만 이런 새로운 도전이 자극이 되어 기존 와인을 보다 잘 만들게 하는 자극제가 되기에 모두에게 좋은 것 같다.

오렌지 와인 트렌드가 얼마나 확산될 지 그리고 전체 화이트 와인 시장에서 비중이 얼마나 높아질지는 모르지만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이 와인 덕분에 와인에도 적용이 된다고 하겠다.

와인 산업에서의 사고발상 전환(4)

내추럴 와인

내추럴 와인이 현재 와인업계의 화두 중 하나다.

내추럴 와인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될까?

야생 포도를 으깨서 통에 넣어 놓으면 자연에 존재하는 야생 효모가 저절로 발효를 시켜 사람은 발효가 끝나면 단지 앙금만 걸러내고 병입하여 만든 와인이라는 생각?

아니면 포도는 어차피 온실재배가 아닌 들판의 포도밭에서 키워서 와인을 만드는 것이니 모든 와인이 내추럴 와인 아닐까, 라는 생각?

호주 내추럴 와인 양가라 PF 쉬라즈

지구촌에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자연, 천연을 뜻하는 네이처 혹은 내추럴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하고도 호의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다.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목가적인 풍경이 연상되면서 그런 단어가 들어간 제품은 괜히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이라는 용어의 등장으로 인해 이와 구분 짓기 위해 현재 우리가 마시고 있는 대부분의 와인들은 컨벤셔널 와인(Conventional Wine)’ 즉 전통 와인 혹은 재래식 와인이라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전통의 재래식은 바로 내추럴 와인이다.

지난 칼럼의 오렌지 와인처럼 8000년이라는 오랜 와인 역사에서 19, 20세기의 눈부신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와인 양조 방법이 그 이전의 방식과 획기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만들어진 와인이 소위 컨벤셔널 와인이라 불리우는 와인들이다.

이것이 20세기에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19, 20세기 이전의 옛날 방식으로 빚은 와인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21세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내추럴 와인이다.

한마디로 내추럴 와인은 복고 와인이자 옛날 방식의 부활 와인이란 얘기다.

시간적으로는 더 현대적인 컨벤셔널 방식이 품질의 안전성과 안정성, 그리고 품질 자체를 기존 방식보다는 더 획기적으로 높여 주고 생산성도 높이기에 와인 생산 업자들 대부분이 19세기 이후 이를 채택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흔하게 마시는 이 컨벤셔널 와인도 역사적으로 보면 그 이전 것과는 다른 새로운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새로운 와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요구는 틈새시장이기도 하니 자연을 가미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을 꿈꾸는 생산자들의 생산 욕구가 반영되어 19세기 이전 방식이 재조명 받게 된 것이다. 사람의 수명이 평균 100세를 넘지 않으니 지금 세대에게는 내추럴 와인이 새로운 와인이 되는 셈이기도 하다.

내추럴 오렌지 와인인 호주 알파 & 박스 사의 골든 멀렛 퓨리의 라벨로 과거 방식의 부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추럴 오렌지 와인인 호주 알파 & 박스 사의 골든 멀렛 퓨리의 라벨로 과거 방식의 부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럼 복고 와인인 내추럴 와인은 컨벤셔널 와인과는 무엇이 다를까? 그리고 유기농 와인과 바이오 다이나믹 와인과 내추럴 와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엄밀히 이야기해서 생산자들 사이에서 조차도 공통적으로 규정한 명확한 기준이나 표준은 없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국가 차원의 인증 기구도 아직은 없다. 민간차원에서 나름 공통분모들을 모아가며 생산자들끼리 다양한 협회를 만들고 정리해가고 있는 단계에 불과하다.

그럼 그 공통 분모는 무엇일까?

와인은 크게 농업인 포도 재배와 가공업인 양조의 두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유기농 와인과 바이오 다이나믹 와인은 바로 농업인 포도 재배와 관련된 것으로 각각 유기농법과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의 포도 재배 규정을 준수하여 만들면 그렇게 분류된다. 이 두 가지 농법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은 물론 민간 차원의 인증 기구가 존재한다.

내추럴 와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조 과정까지 일정한 철학과 방식에 의해 관리 되어져야 하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객관적 인증 기구가 아직은 없다.

내추럴 와인이 되려면 우선 포도 재배 방식이 최소한 유기농법이어야 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이어야 한다는 것에는 생산자 모두가 공감한다. 그런데 화학비료나 제초제, 해충제 등이 개발되기 전에는 오늘날 이야기하는 유기농법 말고는 없었지 않겠는가? 아마 당시에는 유기농법이란 용어 자제도 없었을 것이다.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은 유기농업인데 좀 더 엄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주와 달의 기운에 맞추어 농사를 짓고 물소뿔에 소똥과 석회질 등 기타 몇 가지 재료를 넣고 섞어서 땅에 수개월간 묻어 두었다가 이를 달의 주기에 맞추어 시기를 조정해가면서 희석하여 뿌리는 등의 조치를 포함하여 몇 가지 기준에 맞추어 행하는 농법인데 이는 독일의 학자가 주창한 것을 농민들이 따라 하면서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앞의 특별한 조치와 함께 유기농법처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제초제나 살충제를 뿌리지 않는다.

방충은 해충들이 기피하는 식물로 하고, 토양의 미생물의 다양화를 추구하여 건강한 토양을 만든다는 철학에 기반한 농법이다.

이 역시 알고 보면 물소뿔 등의 몇 가지 조치를 제외하면 비료나 살충제가 개발되기 전 구시대의 농법이었던 것이다. 이런 농법으로 생산한 포도를 양조할 때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면 내추럴 와인이라고 한다.

근데 이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기준이 어느 정도의 공통 분모는 있지만 양조자 마다 조금씩 다르다. 내추럴 와인은 양조시 배양효모가 아니라 자연에서 자생하는 야생 효모(혹는 천연효모라고도 한다)가 저절로 발효기능을 발휘하게 하고 통상 컨벤셔널 와인 양조에서 허용하는 첨가제 사용, 청징, 여과 등 양조 과정에서의 인위적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여 만든다.

극단적으로는 병입시에 이산화황을 아예 넣지 않거나 넣더라도 극히 소량을 넣고 필터링(여과)을 하지 않은 채 병입을 한다.

비유하자면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 원재료를 그냥 물로 씻어서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그대로 먹도록 한 요리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고 있는 컨벤셔널 와인들은 최대한 맛있게 하고 좀 더 오래 보관하면서도 변질을 막기 위해 과학과 법이 허용하는 모든 양념적 요소들을 가미한 요리라고 볼 수 있다.

내추럴 오렌지 와인 ; Alpha Box & Dice, Golden Mullet Fury.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그럼 어느 것이 더 맛있을까?

날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양념을 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이는 선호의 문제지 더 낫다는 것은 없다. 그럼 왜 굳이 내추럴 와인이 등장한 것일까?

채식주의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와인에도 채식주의자적 성향을 가진 와인 소비자층과 그런 생각을 가진 생산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 와인들과 맛과 향도 다른 경우가 더 많아서 이를 즐기겠다는 소비자들과 이런 틈새시장에서 새로이 인정받아 보겠다는 생산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내추럴 와인이 안고 있는 숙제는 무엇일까?

첫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객관적인 공인된 기준과 표준이 없고 인증하는 기구가 없다 보니 신뢰의 문제가 남는다. 그냥 생산자의 말만을 믿어야 한다.

내추럴 생산자들 간에 나름 서로간의 교류의 장이 있어서 이 분야의 선구자나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생산자들은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는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 100% 확인할 방법은 없다. 양심을 믿는 수밖에는...

둘째는 이산화황(SO2)이 살균이나 색깔의 보존, 변질 방지 등의 기능을 하는데 이것을 전혀 넣지 않거나 아주 소량을 넣을 경우 해당 와인은 변질의 가능성이 크고 장기 보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산화황을 전혀 넣지 않은 와인들은 상미기간이나 유통기간이 짧을 수 밖에 없는데 이들 와인이 알코올 음료이기에 현재로서는 별도의 유통 기한의 규정이 없다. 자발적으로 몇 년이라고 이야기하는 생산자가 있기도 하고 장기 숙성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생산자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 객관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셋째는 빈티지마다 맛과 향이나 품질 변화의 폭이 클 가능성이 높다. 즉 매년 생산되는 와인의 품질이나 맛과 향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 동일 생산자의 와인의 맛과 향이 전년도 것과 아주 다를 수 있어서 전년도의 맛과 향이 그리워서 다시 재구매한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은 할 말이 있다. 그게 바로 내추럴 와인이라고..

자연이 좋기는 하지만 자연 그대로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로 독인 것도 있다

이름이 주는 좋은 이미지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것도 어리석은 것 같다.

내추럴 와인이 하나의 트렌드로서 문화 확산이론을 적용해보면 지금은 이노베이터 단계를 지나 얼리 어답터 단계의 그 어디쯤에 와있는 것 같다.

유행을 앞서가는 사람들이 레스토랑에서 찾는 경우도 있고 격심한 경쟁을 피하고 마케팅 차원에서 내추럴 와인만 취급하는 레스토랑도 생겨나고 있다.

와인 생산자들도 나름의 철학적 배경을 갖고 틈새시장을 노리고 이 분야에 주력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현재 거의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컨벤셔널 와인 생산자들도 이들을 지켜보면서 나름 더 환경친화적이고 믿을 만한 방식으로 더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게 되어 오히려 반길만한 현상이다.

이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할 지, 그리고 그 시장이 기존의 와인 시장을 얼마나 잠식할 것인 지 혹은 전체 와인 시장에서 얼마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와인 시장에서 오렌지 와인처럼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매김을 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결론적으로 철학을 지킨 진짜 내추럴 와인은 인간 개입 최소화 와인이고 자연이 알아서 만들게 하는 복고풍의 와인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현상은 늘 기존 시장 지배자들을 긴장하여 더 노력하게 만드니 내추럴 와인이 도전자나 기존 지배자 양자 모두에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그리하여 와인 애호가 입장에서는 지금도 두 가지 스타일의 와인을 비교하며 즐길 수 있어서 나름 행복하지만 향후 보다 더 친환경적이면서도 더 나은 품질과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와인을 즐기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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