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후폭풍…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말 앞당기나/김회권
지난 10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 뒤 거수경례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24년 12월 3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짜가 됐다. ‘123’이니 기억하기도 쉽다. 수많은 국민들은 ‘비상계엄 선포’라는 뉴스를 보고는 어리둥절했다. 계엄(戒嚴)은 군이 민간의 생활을 지배한다. 이 무시무시한 상황이 용인될 정도로 우리 현실이 삭막한 걸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절대 다수의 의견이고 그래서 ‘비상계엄’이라는 네 글자가 모두에게 생경했을 터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남을 이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은 약 6시간 만에 해제됐다. 군 헬기와 장갑차에서 내려 국회에 나타난 공수부대원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관으로 진입했고 국회 관계자를 포함한 시민들이 이를 막아섰다. 그 사이 190명의 국회의원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계엄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계엄령은 그렇게 무력화됐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묻고 헌정을 복구해야 하는, 그리고 재발도 막아야 하는 책무가 남았다.
역풍을 우려해 탄핵을 주저했던 야당은 ‘탄핵 정국’을 활짝 열었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대통령’이라는 호칭조차 떼어버렸다. “윤석열이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고를 쳤다. 전두환, 박정희와 이제 나란히 섰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 때문에 단순해졌다. 탄핵 이외에는 선택지가 다 사라졌다. 두 번째 탄핵이라 신중하게 언급돼야 할 단어였는데 거리를 둘 필요가 없어졌다. 지지율 20%도 안 되는 대통령이 세상을 뒤집어 엎으려고 한다. 독재자는 끌어내려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의 야당 인식법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피 흘린 현대사를 거친 우리 헌법은 1987년 개정 때 국회에 즉시 계엄을 통고하도록 적시했다. 동시에 계엄해제권도 국회에 부여했다. 사실상 국회의 동의 없는 계엄은 불가능하다. 앞선 민주당 당직자는 “계엄의 이유 역시 미스터리지만 설명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회의 해제 권한을 법기술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계엄사령관의 포고령 1번인 ‘정치활동 일체금지’는 심지어 명백한 위헌이다. 이건 야당을 주적으로 상정했기 때문에 나올 법한 논리다. 적이고 처단해야 하는데 계엄 통고도 할 필요 없다는 것 아니겠나.”
윤 대통령은 ‘군주형 대통령’이라고 불린다. 그의 기질은 의회와의 파트너십에서 엿볼 수 있다. 군주형 대통령을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불러왔다. 과거 제왕적 대통령이 갖는 문제 중 하나가 국회와 야당을 대하는 태도다. 윤 대통령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행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정책 추진을 위해 법률안을 바꿀 때마다 야당의 동의를 구해야만 하는 지금의 여소야대 국면이 마뜩잖을 수 있다. 야당에 협조를 요청하는 정치적 거래보다 손쉬운 방법은 야당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다.
대선 때부터 그런 조짐은 있었다. 윤 대통령은 2021년 12월 28일 당시 경쟁 상대였던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를 “확정적 중범죄자”라고 비난했다. 야당의 대표를 같은 이유를 들어 집권 이후 2년 가까이 만나지 않다가 지난 4월 들어서야 첫 만남을 가졌다. 야당과의 충돌로 정치적으로 순탄하지 않은 상황을 번번이 맞았지만 그럴수록 대통령의 배타적 인식은 커졌고, 민심과 거리가 먼 사고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집권 뒤 윤 대통령이 공개 연설에서 종종 언급한 ‘반국가 세력’은 윤 대통령의 극단적 괴리감을 드러내는 말로 평가받았다.
윤 대통령이 말한 ‘반국가 세력’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뜻하는 건지는 확실치 않았다. 야당도 그 후보군 중 하나였다. 그리고 12월 4일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은 이를 확인시켰다. 윤 대통령은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비상계엄의 이유를 들었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는 ‘괴물’로 규정했다. 여기에 ‘종북’이라는 퇴행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된 야당은 내란을 획책하는 존재가 됐으니 무력을 활용해 진압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과거 국회의장실에서 근무했던 한 민주당 인사는 윤 대통령의 이런 접근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매우 닮았다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국회를 정치적 상대가 아닌 통치의 대상으로 여겼고 국회를 상대로 혐오증도 드러냈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비단 야당만 그런 게 아니다. 거칠게 말하면 여당도 하대하고 부리는 대상으로 취급했다. 여당 안에서 다른 소리가 나오는 걸 조금도 참지 못하고 내치지 않았나. 당시 친박들 중 일부는 국회의장에게 와서 거친 말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대통령 맘에 들지 않아서다. 대통령이 워낙 세니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국회의장을 거친 사람들은 이런 경험 탓인지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김형오나 정의화, 문희상 같은 전임 의장들이 분권형 개헌에 훨씬 적극적이지 않나.”
지난 12월 5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보고된 직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김민석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photo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대통령은 왜 민심과 멀어지는가
왜 대통령이 되면 민심과 멀어지게 되냐는 물음은 우리 대통령제가 풀지 못한 오랜 난제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두고도 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제왕적 대통령의 ‘탈피’를 강조했다. 민심을 지근거리에 두고 항상 의식하겠다고 했다. 청와대를 떠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구중심처(九重深處)인 청와대를 벗어나 좀 더 활짝 열린 광화문을 대통령의 공간으로 선택했지만 여의치 않자 지금의 용산에 터를 잡았다. 청와대 이전이 필요한 이유로는 ‘불통(不通)의 공간 배치’를 들었다. 미국 백악관처럼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를 중심으로 참모들의 사무실이 모여 있는 형태를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총리 및 장관의 자율성·책임성 확대도 강조했다. 당선인 시절 한덕수 총리를 지명하면서 ‘야당과의 협치’를 주문했다. 각 부처를 총괄하는 책임총리가 국회, 특히 다수당인 야당과 협의를 통해 정책을 원만히 구현해나가는 방식을 이상적이라고 했다. 그랬던 한 총리는 지금 윤 대통령의 ‘가게무샤(그림자 무사)’로 평가받는다. 대통령 대신 여론의 뭇매를 맞거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총리가 됐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제왕적 인식과 행동을 그 누구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정기관은 감시와 제약 기능을 잃었고 오히려 정권을 위한 기구로 전락했다. 야6당이 제출한 탄핵소추문에서도 이런 점을 지적한다. “오로지 국민을 위해 공정하게 복무해야 할 검찰과 감사원 등 사정기관을 동원하여 야당 등 비판적 세력과 전(前) 정부 인사를 압박하면 국민의 지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비합리적이고 퇴행적인 사고에 몰두하여 정적 탄압을 일삼는 등 국민의 분열을 초래했다.” 야당 우위의 입법부도 대통령의 폭주를 막아내는 데 역부족이었다. 국회 동의 없이 장관을 임명하는 건 당연시됐고 대통령 재의요구권 남발은 대통령실과 입법부가 대립의 길을 걷게 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극단화된 제왕적 인식과 행태가 개인의 문제인지 제도적 문제인지를 놓고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그간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문제의식은 모든 대통령이 뭉개고 넘어간 문제였다. 비상계엄은 이런 대통령의 잘못된 권력의 사용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다. 자연히 대통령의 권력 집중도를 낮추자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 지난 12월 4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를 비판하며 내각제 개헌의 운을 띄웠다. 오 시장은 이날 시청에서 입장 발표를 통해 “국가 운영 구조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가 운영 구조에 대한 언급을 두고 권력구조의 재편을 뜻한다는 풀이가 나왔다. 이른바 ‘잠룡’ 중에서는 첫 언급이다.
“부통령제 있었으면 이미 탄핵됐을 수도”
당장의 비상계엄 대응으로 여야 모두가 다급한 상황에서 차후 권력구조의 변화 문제는 아직 너무 앞선 이야기인 듯하다. 몇몇 민주당 관계자들은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민주당 재선의원은 “지금은 탄핵이 우선이다. 이후 대통령 선거를 당겨서 하게 된 뒤에야 개헌 이야기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87년 체제의 한계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부통령 제도가 있었다면 윤 대통령은 이미 탄핵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87년 개헌 당시를 떠올렸다. “1987년 개헌 때 나를 포함한 소장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부통령제 도입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주요 대선 후보가 부통령 제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 부통령이 있다고 치자. 부통령도 여당 사람일 거고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벌써 끝났을지도 모른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대통령 교체를 요구했을 수 있다. 비상계엄 이후에도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선거하면 민주당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서 아닌가.”
보통 제왕적 대통령 모습의 극대화는 행정부를 장악한 대통령이 정당 공천권과 장관직 등 인사권을 무기로 집권당 다수의원들을 통제할 때 생긴다. 강한 장악력을 앞세워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이 뭉치는 국정 운영방식이 매번 문제가 되는 이유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서는 권력의 분산이 필수적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과 국회가 저렇게 극단적으로 부딪치면 제도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대통령 권한을 축소할 필요가 생긴다”고 말했다. “분권형 대통령 정도로 가야 될 거라 본다. 실질적 권한은 의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갖고 대통령은 정무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역할로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가 너무 틀어쥐고 있는 권한도 지방으로 분산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충돌의 범위도 좀 줄어들지 않겠나.”
시스템이 변한다고 모든 게 바뀔 수 있냐는 물음에도 답이 필요하다. 우리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하라’고 적시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제’라는 제도의 결함 탓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섣부르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제도의 변화가 답이 아니라고 본다. 김 교수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된다고 해서 지금 대한민국 정치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번 건은 실체적으로 비상계엄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 계엄령을 발동시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시킨 게 문제다. 그래서 권력 남용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나. 그런데 대통령의 권한 문제와 권력 남용은 별개 문제다. 반대로 의회에서 다수를 등에 업은 야당이 도를 넘은 것도 그들의 권한을 넘어선 거다. 양쪽이 다 권력 남용을 하는 상황에서 권한 대 권한이 충돌했다. 정치의 실종, 정치의 퇴보를 보여준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주는 것과 달리 정치권에서는 우리 대통령의 권한이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학계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용어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제왕적 대통령은 리더십의 문제지 대통령제의 문제로 간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대통령의 권한에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는 학계 지적도 적지 않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대통령제의 문제와 대통령 리더십의 문제는 분리가 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 아래 대통령제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대통령 권한은 약화됐다. 입법부는 국정감사권, 국정조사권, 탄핵소추권이 있다. 여기에 의원들은 면책특권도 굉장히 강하다. 반면 야당이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체제에 행정권의 방어력은 굉장히 약하다.”
선거 안 나오는 5년 단임 대통령의 한계
한국은 공정한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형성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수준이 매우 높다. 장 교수는 “오히려 문제는 선거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선출된 이후에 다음 선거까지 상대를 존중하면서, 그리고 사회를 통합하면서 행사하는 민주주의 수준이 바닥이다. 이번 비상계엄도 본질적으로는 이 문제다. ‘실질적 민주주의’ 혹은 ‘내면화된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선거 이후 정치 공동체를 움직이는 훈련이 전혀 안 돼 있는 상황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결국에는 한 정파의 통치자가 돼 버리는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심각해졌다.”
리더가 한 정파의 통치자가 될수록 민심과는 멀어진다. 과거에도 그랬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서 일했던 한 인사는 “박 대통령도 초반에는 대통령으로서 뭘 해보려고 했는데 거의 안되니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변화가 여의도정치에 보다 집중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봤다. “우리는 단임제 5년짜리 대통령이다. 5년 뒤에는 선거에 출마할 일이 없다. 그렇다 보니 민심보다는 내 것에 집중하게 된다. 당내 사람들에 집중하고 내 의사를 당에 깊숙이 반영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 그 과정에서 통제받는 의원들이 여러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대통령을 무비판적으로 모실수록 대통령은 점점 홀로 동떨어진 정치인이 되어 갔다.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서구 민주주의는 ‘불신(不信)의 제도화’를 거쳤다. 위정자가 그 누구든 믿지 않으며 그들이 신뢰를 배신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와 장치를 철저하게 고안했고 위험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이번 비상계엄은 군림하는 지도자가 신뢰를 배반했을 때 치달을 수 있는 최악의 사례 중 하나다. 우리의 제도가 불신의 제도화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민의에 어긋난 정치인을 견제하기 위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비상계엄이 불러온 고불신(高不信)의 정치, 그 이후가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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