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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팬덤 정치의 수렁에서 탈출하라

by 자한형 2025.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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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팬덤 정치의 수렁에서 탈출하라/ 목수정

다시 탄핵 정국 앞에 선 한국사회

지난 1214, 대한민국 국회는 20년 동안 세 번째로 대통령을 탄핵했다. 대한민국이 법통을 이어받은 상하이 임시정부까지 포함하자면 네 번째다(임시정부 각료들은 1925318일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던 이승만을 독립자금 유용 혐의로 탄핵한 바 있다).

2004, 노무현을 향해 진행된 대한민국 국회의 첫 탄핵은 여론을 역행한 오만한 야당의 폭거였기에 헌재에 의해 기각됐고, 탄핵 세력은 총선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2018, 80%가 넘는 국민이 요구했던 박근혜를 향한 탄핵은 헌재가 만장일치로 인용했다.

결과적으로 두 번 모두, 헌재는 거리에 나와 민의를 명확히 전한 국민의 목소리를 따른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2항의 내용과도 부합한다. 지난 12월 세 번째로 국회가 행한 탄핵에 대한 헌재의 판결을 국민 다수가 낙관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헌법 조항을 자세히 알지 못해도, 정치가 그러하듯, 헌법 또한 압도적 다수의 민의를 거스를 수 없는 유기체라는 것을 온몸으로, 지난날의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37살 먹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해방 이후, 그리고 1948년 공화정이 수립된 이후, 식민지에서 벗어난 신생 독립국들이 흔히 그러하듯, 독재와 쿠데타를 거듭해 오던 한국이 비로소 민주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한 때는 1987년이었다. 우리가 민주주의 안착의 신호로 염원했던, ‘평화적 정권 교체와 군부의 종식은 그로부터 5년 뒤였다.

국회에 총과 군홧발이 등장하며, 계엄이라는 야만적 카오스 상황이 재현될 뻔한 위기를 민주적 절차로 2시간 만에 제압한 것은 국회 앞으로 달려와 민의를 상징해준 시민들과, 야당으로서 최상의 컨디션에 이른 전투력을 보여준 민주당의 공이다. 2번에 걸친 압도적 규모의 대중 집회는 이기적 기득권 집단인 국민의힘을 성공적으로 압박함으로써, ‘37먹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왕성한 혈기를 지닌, 건강한 상태임을 입증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탁월한 탄핵의 기술을 가진 탄력적 민주사회로 국제사회에 우리의 정체성을 심을 수 있게 되었고, 언론은 세계가 놀란 한국의 민주주의를 타이틀로 뽑으며, 국난 극복의 DNA를 가진 한국 사회를 세계가 주목한다고 떠들고 있다. 분명, 정치적 위기에 맞서, 이 정도의 기민함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는 사회는 지구상에 흔치 않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국난을 신속하게 극복하는 우리의 대응 능력에 자족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왜 이토록 자주 국난에 처하게 되는지 짚어 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일 터이다. 8년 만에 다시 돌아온 탄핵 정국에서, 우린 묻지 않을 수 없다. 성공한 탄핵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진일보한 사회를, 나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가?

후보 시절, 손에 임금 왕()자를 그렸고, 토론에 나올 때부터 어떤 명분도, 합리적 이유도 없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양, 한사코 청와대행을 거부하던 그때부터 우린 어떤 인물에게 5천만의 미래를 맡기려 하는지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짐작이 심란한 현실로 드러나고, 마침내 명태균 스캔들이 최순실의 태블릿처럼 정국의 뇌관을 강타했을 때도, 쉽사리 민주당이 원하는 탄핵 정국은 조성되지 않았다.

윤석열의 어처구니없는 계엄령 자살골이 스스로의 운명을 재촉하지 않았던들, 세상은 여전히 탄핵을 주저하고 있었을 것이다. “죽 쒀서 개 준 꼴로 흔히 축약되는 허망한 세월을 반복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촛불시민이 뽑은 대통령 문재인과 민주당 정부의 실정은 정치적 도박에 가까웠던 윤석열 정부 출현의 핵심 원인을 제공했다. 눈 내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서도 질기게 집회를 이어갔던 시민들의 의지는 박근혜 탄핵을 가능케 했으나, 시민 항쟁의 결과물인 문재인정부를 에워싼 묻지마지지세력은 이후 마땅히 행해졌어야 할 모든 개혁 과제들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면서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행한 2년 반의 고통스러운 퇴행의 시간을 허락한 셈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8년전 상황으로 되돌아간 지금,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지난 시간을 복기해 본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 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은 집권 초 지지율은 기록한 사람은 김영삼이다. 최초의 문민정부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시작된 김영삼정부는 금융실명제 실시와 지방자치제 도입, 하나회 숙청 등으로 높은 지지를 얻으며 임기 초 83%의 지지율을 얻었다. 그러나 임기 중반, 전두환, 노태우 사면과 국정에 개입해 온 아들 김현철의 구속으로 지지를 잃기 시작한 권력은, 거듭되는 초대형 사고와 국가 부도 위기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추락하며 6%의 지지율로 임기를 마감했다.

최고 권력자를 향한 80%를 넘는 지지율이 약속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비극적이고 필연적인 추락이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은 역사를 통해 예외없이 입증되어 왔다. 외환위기에 포위된 세기말의 한국은 나라의 곳간을 지켜야 할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의 무책임한 책임 방기 속에서 처참하게 무너져갔고, 오늘 한국 사회에 고착된 비정규직과 정규직 계급사회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초석을 제공했다.

2014, 지우기 힘든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은 세월호 사건 이후, 2016년 말에 일어난 촛불 혁명은 한국 사회가 그동안 이루지 못했던 청산과 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촛불 대통령 당선 무렵 등장한 소위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 혁명을 무위로 돌리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의 전광판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즈 스퀘어 광고판까지 이용하며 팬심을 드러내고, 대통령을 종교 지도자처럼 믿고 따르는 광신도의 행태를 보이던 그들은 자신들만의 광란의 시간을 즐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통령이 마땅히 직면해야 할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언론과 개인들에게 망나니처럼 칼을 휘두르며 문정부의 홍위병을 자처했다.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실수, 실정, 내리지 않는 결정,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계획에 대해 그들은 언제나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중이라며 그를 대신해 해석했고, 문제 제기하는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압사시켰다. 노동 친화 정부를 내세웠지만, 철저히 기만적인 구호에 그쳤고,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 이후에도, 재발을 위한 법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다.

정권 초기, 탁현민을 앞세워 진행한 몇몇 이벤트들이 대중의 환심을 사고, 눈을 속이는데 성공했을 뿐, 내용적 진보는 그 어떤 영역에서도 이뤄진 바 없다. 남북 관계에서도, 북측을 평창올림픽의 흥행 요소로 이용했을 뿐, 이행 없는 빈말만 남발하면서, 관계는 오히려 험악해졌다. 2020년 북한 김여정의 지시로 일어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문정부가 이룬 대북정책의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최근 들어 대중예술 분야에서 한국인들이 거듭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 데 반해, 정치 영역에서는 구태가 반복되는 현상을 두고, 우리나라는 유독 우린 대통령 복이 없다거나, “대한민국은 정치인들만 잘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유권자들의 권리를 위임받은 정치인들만의 작업이 아니다. 시민들과 정치권 사이에서 이뤄지는 긴밀한 소통과 호흡이 빚은 결과물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 때 극에 달하며, 합리적, 비판적 정치 지형의 형성을 무력화했던 팬덤의 정치가 그 어떤 반성도 회의도 없이 오늘도 여권과 야권에서 두루 가지를 뻗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못한 대통령은 탄핵을 통해 벌할 수 있지만, 패거리를 이뤄 폭력적 팬덤 정치를 이어가던 세력들은 지금도, 그 어떤 반성도 자중도 없이 성업 중이다.

오늘도 계속되는 팬덤 정치

윤석열 정부하에서는 특히 그의 아내 김건희 팬클럽이 극성을 떨었다. 김건희 팬클럽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세를 불려온 한동훈 팬클럽 사이에선 적지 않은 분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팬클럽 <대깨문>들의 상당수를 흡수한 것으로 보이는 조국과 그의 일가들을 향한 팬덤 또한 병리적인 정치인 팬덤 현상의 맥을 이어가는 중요한 축이다. 한 가족을 향한 검찰 수사의 강도가 전례없이 과도했을지언정, 수년간 이뤄진 재판 속에서 그들이 행한 명백한 범죄 사실들은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감옥에 가는 조국을 마치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처럼 바라보는 그의 충성스러운 팬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12명의 의원을 둔 신생 원내정당 조국혁신당의 밑거름이다. 탄핵 이후, 본격적 대선 레이스가 재가동된 현시점에서, 압도적인 대선 1위 후보로 언급되는 이재명에게도 2022년 대선에서의 석패 직후 형성된 2030 여성 극렬 지지층, 소위 개딸”(개혁의 딸)들이 팬덤 정치 그룹을 이루고 있다. 이들의 극성스러운 집단 행동이 오히려 지배 계층 확산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민주당 내부의 비판이 일고 있다는 사실은 듣던 중 다행스러운 소식이다.

여전히 존경받던 성군 행세를 하며 반성할 줄 모르는 문재인 전 대통령, “친위 쿠데타라는 극단적 행위 이후에도 고도의 통치 행위운운하며 자신의 결정을 거침없이 정당화하는 윤석열, 가족의 이해를 위해 벌인 사적인 범법 행위가 들통나 감옥에 가면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희생한 우국지사를 흉내내는 조국, 이들은 모두 팬덤 정치 속에서 성장하여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 실패한 정치인들이다. 한국 사회는 그런 정치인들을 계속해서 양산해내는 팬덤 정치에 중독된 사회다.

권력자 아래 무릎꿇고 엎드리는 자, 바로 우리 사회의 적

팬덤 정치가 만들어내는 최악의 결과는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이다. 팬덤 정치를 양산해 내는 사람들은, 정책의 결과에 따라 유권자로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 팬질의 대상인 인물을 방어하고, 그들의 적을 공격하는 것에 판단과 행동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들은 정치를 광적인 종교 현상이자 감정적 파토스의 영역으로 만들며 이성으로 정치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떠나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마저 무덤으로 이끈다.

오랫동안 스타를 향한 팬질은 아직 성숙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10대들이 자신의 이상을 연예인에게 투사하며 벌이는 청소년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기성세대들이 집단을 이루어 현실 정치인을 향해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거악이 된 절대권력자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할 수 있지만, 합리적 토론과 갈등 조정을 통해 이후의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내는 데는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다.

정치인을 향해, 더욱이 큰 권력을 점한 정치인을 향해 유권자가 취해야 할 유일하게 유익한 태도는 비판적 지지뿐이다. 세상의 모든 권력자는 권력을 쥐는 순간, 악마와 손을 잡는 길로 필연적으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교적 덜 괴물이 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권력이라는 마약에 빠져들지 않도록, 그들이 찬물을 끊임없이 들이키며 덜 망가지도록 냉정한 비판을 가하는 것뿐이다. 권력자 아래 무릎꿇고 엎드리는 자, 바로 그자가 세상을 짓밟는 폭군을 만드는 자며, 8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귀한 기회를 말아먹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적이다.

·목수정

파리에 거주하며, 칼럼 기고와 책 저술, 번역을 하고 있다. 2023년 최근 저작으로 파리에서 만난 말들, 역서로는 마법은 없었다(알렉상드라 앙리옹-코드 저)가 있다.

해는 다시 떠오른다/신헌철 기자

정치적 혼돈 속 맞는 을사년

탄핵소추 이후 무질서 아쉬워

극단의 정치는 반동을 부른다

헌재의 판단 차분히 기다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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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김승옥은 소설 '무진기행'에서 불가항력 앞에 사람들이 느끼는 무력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을사년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짙은 안갯속에 있다.

지난 연말 무안공항의 비극 앞에 할 말을 한 번 더 잃었다. 그것이 못난 정치의 결과물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만든 세상이 여전히 안전하지 않음을 다시 깨닫게 했다. 그 고통과 슬픔 속에서 자원봉사와 추모 행렬은 이어졌다. 아직 온기가 있음에 희망을 품게 된다.

최고 권력자의 한밤중 비상계엄도 불가항력적 외력이었으나 시민과 국회의 힘으로 멈춰 세웠다. 그리고 예정된 경로와 과거 경험에 따라 11일 만에 탄핵소추가 이뤄졌다. 여기까지는 속전속결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의 혼돈은 정치인들에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능력이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둘러싼 논란은 명확한 규정이 없는 사안을 정치적으로 풀어낼 의지도 역량도 부족함을 드러냈다. 야당은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대한 한덕수 국무총리를 즉시 탄핵했다. 야당의 과속은 헌법재판관 2인 임명으로 겨우 멈춰 섰다.

우리 앞에 펼쳐진 무질서는 프랑스 혁명 직후를 떠올리게 한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참수됐다. 정권을 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로 15000명이 처형됐다. 함께 혁명을 이끌었던 조르주 당통은 단두대에서 로베스피에르를 향해 "다음은 네 차례"라고 저주했다. 결국 자코뱅파는 '테르미도르의 반동'에 부딪혀 실각하고 로베스피에르 역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시민혁명은 덧없이 종언을 고하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혁명 이후의 광기를 이성으로 통제할 시스템이 없었던 시절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는 1987년 개헌 이후 벌써 세 번째 탄핵소추를 경험했다. 헌법에 의해 재임 중 기소되지 않는 대통령의 잘못을 파면으로써 처벌하는 유일한 통로이니 그 자체로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반복된 탄핵은 극단의 정치를 배태했다. 개헌은커녕 선거구제 하나 바꾸지 못한 채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다.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을, 야당은 탄핵소추권을 최대한 사용하는 극단의 정치는 이미 임계점을 넘은 상태다. 한국 정치는 절반이 넘으면 생사를 건 승부를 모두가 계속해야 하는 '오징어 게임2'의 실사판이 됐다.

다행히 계엄과 탄핵 사태는 다시 예정된 경로로 진입하게 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1987년 체제의 산물인 헌법재판소는 헌정질서의 복원과 수호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탄핵심판의 논점은 복잡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피소추자가 권좌에 복귀했을 때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있는지도 중요한 잣대가 된다. 미래의 대통령에게 같은 행위를 허용할 것인지의 가늠자이기도 하다.

비상계엄은 잘못이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집권을 피하려면 탄핵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려면 냉정한 분리 접근이 필요하다. 다수의 국민은 이제 차분히 탄핵심판의 결과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다음 대선이 치러진다면 어떤 후보가 더 민주적인 지도자가 될 것인지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