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의 과제들/이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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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창피하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한 증인은 2012년 선출된 대통령과 최순실이 동급이요 공동 정권을 운영했다고 말했다. 일국의 장관과 청와대 수석도 그 증인이 추천하고 최순실이 중개했더니 실제로 임명되었단다. 외국에서도 더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지난 3일 미국의 공화당 인사가 “한국의 죽은 정부와 상대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게 도널드 트럼프 인수위의 분위기란다. 4일엔 영국의 외무장관이 뉴스 생방송 인터뷰 중 “난처한 상황에 빠진 한국 대통령의 이름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분 나쁘다며 중간에 퇴장해버렸다고 한다.
국회에서도 대통령 탄핵을 피할 수 없었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대통령의 지난달 29일 제3차 담화에서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에서 정해 달라고 한 것은 국가에 불필요한 해만 끼치는 것이고 이제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길은 바로 사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대통령이 그냥 물러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는 10월 29일 2만여명으로 시작해 20만명(11월 5일)과 100만명(11월 12일)을 넘어 전국적으로 95만명(11월 19일)과 190만명(11월 26일)으로 확대되었다가 1주일 전에는 232만명으로 증가했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을 혼란에서 건지고 바닥까지 떨어진 국민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국민이 원하는 결심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할 일이 적지 않다. 개헌은 근본적인 처방전에 필요한 감초다. 하지만 시간도 적고 대안이 갈려서 실현 가능성은 낮다. 지난 4년 동안 대통령의 권한이 입법부는 말할 필요도 없고 헌법재판소는 물론 검찰 및 경찰 등 사법부의 독립성을 상당히 침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민은 물론 언론과 연예인도 응징을 당했다. 1974년 이후 전 세계의 자유를 비교해서 추적해온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가 3년 전부터 한국의 정치적 권리도 후퇴했고 언론의 자유도 퇴보했다고 밝힌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은 외치와 내치를 대통령 한 사람이 담당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언론, 시민, 사회 위에 군림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진단이 그렇다면 처방도 이에 따라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치와 내치를 분리하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아니라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원칙에 기초해 견제와 균형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순수한 대통령제이다. 만약 대통령이 여당은 물론 야당과 수시로 소통하고 국민 여론을 무서워한다면 임기 동안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길 수 있다.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과 결정이 옳다고 정면돌파만 하기 때문에 반발을 샀건만 스스로 식물대통령이 되어 임기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푸념한다. 대한민국에는 평소 국회와 담을 쌓아 지내다가 대통령의 진퇴 문제만 뻔질나게 국회에 맡기는 정치문화는 이제 없어야 한다.
그리고 정당을 더 개혁해야 한다. 지금도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혈투를 벌이고 민주당은 친문과 비문 사이의 대결로 날을 샌다. 국민의당이라고 다른 게 있나. 우리 정당은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서로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 정권을 잡은 뒤 국리복민에 힘쓰지 않는다. 오로지 누구와 친하고 가까운 것으로 파벌이 나뉘어 자리싸움과 맹목적인 충성경쟁을 한다. 그 결과 정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무당파는 증가한다. 탄핵정국을 풀어낸 것도 정당이 아니라 선량한 국민들이요 전국적 촛불이다. 정당은 이번에 드러난 정경유착도 끊어내고 과거의 잘못된 사회적 관행과 문화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정부의 행정부처와 청와대 조직이 철저히 시스템으로 작동하도록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 할 것이다.
비상계엄령과 탄핵이 남긴 과제들/김호균
무장군인의 진입을 시민들이 온몸으로 막아내고 담장 넘어 들어간 국회의원들이 계엄해제 요구를 결의하면서 비상계엄령은 일단 차단되었다. 여당의 노골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탄핵 소추안은 어렵게 가결되었다. 비상계엄령에서 탄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생중계한 외신들은 ‘K민주주의’의 평화적 창의성과 회복력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심의과정이 진행될 2, 3개월 동안 극우세력이 경제와 민생의 안정을 위협하면서 반전을 노리는 것이 불안요소이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윤석열 현상’은 극우세력의 문제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호언으로 유권자의 지지를 받게 된 인물을 퇴직과 동시에 정계입문시켜 정권을 탈환한 보수의 무모함이 빚은 참극이다. 윤석열정권은 첫째, 취임과 동시에 전임 정부를 비난에 주력함으로써 자기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음은 물론 공허한 ’자유‘의 가치로 국민을 기만했다. 둘째, 박정희를 넘어 이승만을 ’재평가‘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국민을 우매화하려는 역사의식을 보여주었다. 셋째,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성이 아니라 외세의존성을 강화했다. ‘한미동맹’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부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끌어들여 한미일 동맹을 구축하려는 미국과 일본에 절대 추종하고 ‘아낌없는 퍼주기’로 시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고 분노 게이지를 높였다. 넷째, 북한과의 긴장을 부추기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전쟁을 유도하는 도발까지 자행했다. 탄핵은 내란뿐만 아니라 한반도전쟁도 막은 셈이다. 다섯째. 사회경제정책에서 보여준 퇴행성은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고 한국경제의 위기증후를 심화시켰다. ‘윤석열 실험’을 마친 지금 박근혜대통령 탄핵 당시보다 극우세력을 분명 과잉대표하면서 극우 지역정당으로 더욱 경화된 ‘국민의 힘’의 헤쳐 모여만이 보수가 정치적으로 갱생할 길로 보인다. 시민 분노의 유효기간이 “1년”이라는 윤상현 의원의 폭언에 대한 심판은 유권자의 몫으로 남았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보이는 행보는 마치 ‘비상계엄과 탄핵이 없었던‘ 것 같은 모습이다. 국회가 재차 통과시킨 양곡법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탄핵수사 진전상황과 헌법재판소의 동태를 보면서 대행의 행보를 맞추려는 의향으로 보인다. 작금의 환율 불안은 한국경제의 경쟁력 불안을 반영할 뿐이며 대증요법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매우 심각한 오류는 내란 이전부터 경제정책이 보여준 ‘대한민국 곳간 비우기’이다. 공공기관의 보유 부동산 매각, 외화반출 자유화 확대, 환율안정을 위한 국민연금 동원 등이 그것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보유한 외화자산을 환율안정에 동원함으로써 발생하는 조 단위의 손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통화스왑’으로 포장하는 것은 세수추계 오류와는 질적으로 상이한 ‘양두구육’이다. '친위쿠테타'가 성공했더라면 기재부의 ‘유연한 국정농단’이 더욱 심화되었을 것임은 포고령에 드러나 있다. 시민저항에 의한 내란의 실패는 윤석열표 정책의 중단과 노선변경에 대한 요구로 해석되어야 한다. 변경의 핵심은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심화시키는 정책에서 그것을 생산적으로 완화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이다. 경제부총리의 비상계엄 반대 입장으로 정책오류에 대한 책임마저 면제될 수는 없을 것이다.
감세 통한 건전재정 …기재부의 '위험한 도박'
한덕수 권한대행이 윤석열대통령과의 연속성에 분명한 방점을 찍고 있는 역할 설정은 트럼프 2기행정부와의 관계설정에서 분명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를 계속 언급하고 있지만 한국은 “북미협상에서마저 패싱”(한덕수 대행)당할 것을 우려할 뿐이다. 한덕수 대행이 ‘국정안정’을 빌미로 권한대행을 ‘윤석열 아바타’로 이해할수록 트럼프와의 회담은 멀어진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부터 자신이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해 “즉각적인 종전”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북한군 참전을 빌미로 금방이라도 한국군 파병을 결정하고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려다가 트럼프 당선인 측의 막판 경고에 ‘1억달러 현금 지원’으로 후퇴했다. 한덕수 대행체제에서 나온 변화는 통일부의 ‘대북전단지 살포 자제’뿐이다. 뿐만 아니라 내란시도로 바이든 행정부에 의해서도 확실하게 ‘팽’당한 윤석열을 그 ‘아바타’라고 할지라도 트럼프가 대면하는 형식 자체가 현 시국에서 한국 내정은 물론 자신의 한반도 메시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할 수 있다. 트럼프와 한덕수 대행 사이의 출발선 간극이 너무 크다.
헌정질서의 회복과 확립은 내란세력의 처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향후 헌정질서 문란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광범한 사회적 합의와 그 실행이 필요하다. 첫째, 국기기관과 그 종사자들 사이에서 법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윤석열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국회를 우회하는 ‘시행령 정치’를 선언했다. 다수 야당의 입법에 대한 25차례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22 차례에 걸친 야당의 탄핵소추를 불러들였다. 둘째, 피해자 중심주의의 확립이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취임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가해자 중심주의’를 급기야 ‘피해자 책임주의’로 더욱 추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세월호 수장(水葬)’이 박근혜정부 추락의 시작이었듯이 ‘이태원 압사(壓死)’는 윤석열정부 추락의 시발점이었다. 셋째, 고위공직자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책임자가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참사는 물론 쿠테타도 재발이 예정되어 있다. 5·18 군사반란에서 발포명령자 규명의 실패와 조기 사면은 10여명의 반란 동조자가 현충원에 묻히는 참사로 이어져 군부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었고 결국 작금의 12·3 친위쿠테타에 능동적으로 동참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수사나 재판 중인 공직자는 불법행위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즉각 직무에서 배제되어 유죄확정시 정상퇴직 상태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넷째, 국방의 문민화를 조속히 달성해야 한다. 이와 병행해서 군의 정치적 중립이 엄정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지난 대선에 현역 군인이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망국적 현상과 군의 능동적인 내란 참여는 서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헌법의 생활화가 필요하다. 헌법을 학교교육에도 도입하고 경제활동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불러들여 모든 시민의 법의식을 높임으로써 국정 전반에 대한 실질적인 시민감시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마을도서관을 폐쇄하고 장애어린이 지원금을 삭감하는 것이 헌법 제34조 “국가의 복지 증진 의무”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헌법 제33조에 규정된 “노동3권”이 헌법적 토대도 없는 ‘경영권’에 의해 심각하게 제약당하는 현실이 합헌적인지, 국내기업의 해외 공장건설을 지원하는 정부정책이 헌법 제32조 국가의 “고용증진 의무” 및 제119조의 “경제성장 목표”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등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친일, 반공, 독재의 삼위일체가 윤석열 정부의 실체였다. 이들 삼위일체 세력은 동시에 대한민국 극우 기득권 세력의 실체이기도 하다. 결국 친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을 색깔론으로 덧칠하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도 서슴치 않았다.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 왜곡만이 아니라 그것에 동조하는 국내 집단은 적어도 공직자로서 부적합하다는 공감대가 법제화될 필요가 있다.
내란수괴의 탄핵과 처벌로 불법 계엄과 내란에 대한 조치가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준엄한 사법처벌이 이루어져야겠지만 곧바로 허울 좋은 ‘국민통합’의 미명하에 사면복권이 ‘표 계산’ 속에서 이루어지고 공범들에 대한 처벌이 흐지부지된다면 후속 쿠테타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계엄에 맨몸으로 저항하고 평화적이면서 강력하게 탄핵을 외치는 ‘K민주주의’가 또 다시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자칫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탄핵뿐만 아니라 탄핵심판 이후의 과제에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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