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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해설

23.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by 자한형 2021.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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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모윤숙(毛允淑)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의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포옴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대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피 속엔 더 강한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과 가시 숲을

 

이순신(李舜臣) 같이, 나폴레옹 같이, 시이저 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크바 크레믈린탑까지

 

밀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날으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레 숨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 이슬 내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 싼 군사가 다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 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 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 먼 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 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 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포옴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시집 <풍랑>(문성당.1951) -

 

* 나이팅게일 : 지빠귀과의 새로 휘파람새와 비슷함. 밤꾀꼬리.

 

* 서백리아 : 시베리아.

 

해설

 

모윤숙(毛允淑)이 지은 시. 19508월에 썼으며, 1951년 문성당에서 간행된 시집 <풍랑(風浪)>에 수록되어 있다. 1290행이다. 625전쟁 때,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숨어지내던 경기도 광주 근처 산골에서 죽어넘어진 국군의 시체를 보고 썼다고 한다.

 

이 시가 수록되어 있는 시집 <풍랑>(1951)1950625전쟁의 파란만장한 피난생활을 겪는 시편들로 엮어졌다. 작가는 당시 우리나라 최대의 문예지인 [문예]의 발행인이었다. 그러나 전쟁 중에 이 여류시인은 시골 아낙네처럼 차리기도 하고, 또는 여승(女僧)처럼 변장하고 숨어다니면서 뜨거운 민족애의 분류(奔流)를 느껴야 했고, 울부짖는 겨레의 얼을 소중하게 체험했다. 사랑의 송가와 더불어 굵은 역사의 고백이 어린 시편(詩篇)은 여기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것보다도 설득력 있게 우리의 심금을 울려 놓았다.

 

이 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625 때 광주 산곡(山谷)에서 총상을 입고 죽어가는 어느 국군 소위를 발견한 화자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그의 애국ㆍ애족심을 명확한 시어와 강한 호소력의 남성적 어조로 노래한 계몽시이다.

 

일찍이 시원 동인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했던 모윤숙은 일제하에서 한때 민족적 색채가 강한 시를 발표하기도 하고, 창씨개명에도 반대하는 등 저항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결국엔 일제의 압력과 회유에 굴복하여 친일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해방 후에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당시 최대의 문학지인 [문예]를 창간하고 민족주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 의식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625가 발발하자 모윤숙은 김윤성, 공중인 등과 함께 비상국민선전대에 참가하여 많은 격시(檄詩)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모윤숙은 문학뿐 아니라, 정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여 유엔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큰 공헌을 했으며, 1972년에는 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였다.

 

개관

 

갈래 : 자유시, 서정시

 

형식 : 13연으로 된 산문시

 

경향 : 서정적, 애국적

 

표현상 특징

 

(1) , , 결의 3단락으로 짜임새 있게 엮어져 있다.

 

(2) 전사한 국군의 고백 수기와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3) 찌르는 듯한 명확하고 직선적이면서도 정확한 언어 구사를 하고 있다.

 

(4) 장편 소설이 가질 만한 내용을 산문시로 형상화하였다.

 

주제 : 전사한 국군 용사의 애국심에 대한 찬양과 애도

 

내용 풀이

 

(13) : 외딴 골짜기에서 죽어 넘어진 국군을 본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 그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그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듣는다.

 

(412) : 나는 25세의 대한민국 아들로 숨을 마친다. 나는 용감하게 원수의 하늘까지 진격하고 싶었다. 나는 내 부모, 동생, 사랑하는 소녀 등 가까운 내 사람들과 이 땅에 살고 싶어 더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나는 군복을 입은 채 이름 모를 골짜기에 숨지어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벗이 되었다. 나는 바람이나 새들에게도 이르고 싶다. 내 나라의 동포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를 갚기 위해 나는 나의 무덤도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한다.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내 나라 땅 한 줌 흙이 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13) : 외딴 골짜기에서 죽어 넘어진 국군을 본다. ()13연을 한 연으로 묶어 수미상관의 구성으로 끝맺음을 했다.

 

감상

 

이 작품은 작자의 낭만주의와 애국주의가 융합을 이룬 작품으로 전몰용사의 주검을 통하여 애국심을 감동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시의 구조는 유기적 연계를 이루며 구성되었는데 제12연과 제1112연은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국군과 시인의 감동적 만남이라는 배경을 나타내주고, 310연은 국군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3연은 죽음을 말하고, 456연은 떳떳하고 후회 없는 자아를 노래하고 있다.

 

특히, 5연은 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 부분으로, 조국과 동포의 행복을 위한 자신의 희생이라는 대승적(大乘的)인 자아의 승리를 노래하고 있다. 789연은 뒤에 남은 동포에게 당부하는 말이며 제10연은 결론으로 조국의 한줌 흙이 되겠다고 하였다.

 

국군이 숨을 거두며 당부하는 말을 작가가 듣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고도의 압축이나 상징미는 드문 반면에 풍부한 상상과 잘 짜여진 구성 등에서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전 12연의 자유시로 기()ㆍ서()ㆍ결()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 죽은 국군 소위가 말하는 대목을 중심으로 하여 그 앞뒤에 서사와 결사를 결합한 형식이다.

 

13연의 기()단락에서 화자는 외딴 골짜기에서 발견한 국군 소위의 시신에서 아직 식지 않은 피를 바라보며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고 있다.

 

411연의 서()단락은 죽어가는 국군 소위가 남기는 유언이지만, 이것은 실제로 그가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죽은 시신에게서 화자가 떠올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25세의 대한민국 아들로 숨을 마친다. 나는 용감하게 원수의 하늘까지 진격하고 싶었다. 나는 내 부모, 동생, 사랑하는 소녀 등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서 살고 싶어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나는 군복을 입은 채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 죽어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벗이 되었다. 바람이나 새들에게도 이르고 싶다. 내 나라의 동포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내가 이루지 못한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를 갚기 위하여 무덤도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겠다.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내 나라의 한 줌 흙이 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마지막 12연의 결()단락은 3개 연으로 이루어진 기()단락을 하나의 연으로 만들어 재배치함으로써 수미상관의 구성으로 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전쟁터의 죽음은 피아(彼我)가 없이 가련하다. 모든 전쟁은 아무리 고귀한 명분을 가진 것이라 하더라도 쇠붙이를 만든 살의와 획책된 죽음의 비인간성으로 인해 단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채 전쟁에 말려들기도 하며, 증오의 화신이 되어 총칼을 들고나설 수도 있다.

 

폭력을 거부하는 것은 이성적 인간의 마땅한 태도이지만 복잡한 세상의 일은 항상 이성을 유지하도록 하지 않는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우리의 땅에는 대규모의 전쟁이 있었다. 동족이 서로를 죽인 이 전쟁은 대량살육의 끔찍함과 함께 동족간의 증오에서 시작되어 그 증오를 증폭, 재생산하였다는 데에 돌이킬 수 없는 뼈아픔이 있다. 양쪽 모두에게 양보하지 못할, 서로 다른 명분이 주어진 이 피비린내 속에 이성(理性)을 유지하는 일은 난망한 것이었으리라.

 

난리 중에 시인은 젊은 군인의 시신을 보았다. 전쟁터에서 숨져간 스물다섯 살의 젊은이가 평화로운 시절이었더라면 가질 수 있었던 인생의 화려한 시절을 떠올리며 시인은 그의 죽음이 고귀한 죽음이며 헛된 희생이 아니라는 위로의 말을 남긴다. 이와 같은 `고귀한 희생'은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겨레를 `오랑캐'의 흉악한 손에서 지켜내기 위해 의연히 총칼을 든 자랑스러움과 후회 없는 희생은 무릇 전쟁이 남기는 영광이자 상처이지만, 이 시가 소재를 얻고 있는 전쟁은 일말의 서글픔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서로가 오랑캐로 보고 증오의 총탄을 쏘아댄 그들이 모두 한 핏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었던 시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으리라. 그래서 시인이 찾아낸 위로의 시구들 또한 아름답고 눈물겨운 것이다

 

[출처] 모윤숙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작성자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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