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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해설

22. 광야

by 자한형 2021.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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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曠野)>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유고시집 `<육사시집(陸史詩集)>(서울출판사.1946)-

 

해설

 

윤동주와 함께 일제 암흑기의 2대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육사는 1935[신조선]에 시 <황혼>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1937년 신석초, 윤곤강, 김광균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하는 등,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성이 풍부한 목가풍의 시를 발표하였다. 그의 시작 발표는 주로 [조광(朝光)]을 통하여 1941년까지 계속되었으나, 시작 활동 못지 않게 독립 투쟁에도 헌신, 전 생애를 통해 17회나 투옥되었으며, 40세에 북경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1935년부터 1941년까지의 기간 중에 씌어졌는데, 이때는 그가 중국과 만주 등지를 전전하던 때인 만큼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한 침울한 북방의 정조(情調)와 함께 전통적인 민족 정서가 작품에 깃들어 있다. 대표작인 <광야>에서 보듯이 그의 시는 식민지 치하의 민족적 비운(悲運)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 의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꺼지지 않는 민족 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한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 시는 육사의 확고한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현실 극복 의지가 예술성과 탁월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자기 극복의 치열성에 바탕을 둔 초인 정신과 투철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는 지사(志士) 의식, 그리고 순환의 역사관에 뿌리를 둔 미래 지향의 역사의식 등이 종합적으로 나타나 있다.

 

구체적으로 이 작품에서 자기 희생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출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 개념인 동시에 절대적 심상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육사 자신으로서는 소중하기 그지없는 한 몸의 희생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 개념으로 그에게 절대를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육사가 외곬으로 믿고 섬긴 조국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에서 이 부분이 단순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국 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차원을 아득히 넘어선 절대의 국면이 백마 타고 오는 초인과 일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이육사의 <광야>는 항일 저항시의 압권인 동시에 그 언어의 밀도로 보아도 단연 다른 작품의 추종이 허락되지 않을 정도의 수작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육사는 한국 현대시사를 장식한 빛나는 성좌로 평가되어야 한다.

 

개관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참여시, 낭만시, 상징시

 

성격 : 남성적, 저항적, 지사적, 의지적, 참여적, 지사적, 미래지향적, 상징적

 

운율 : 내재율, 3음보 2행 형식의 변형

 

어조 : 남성적 어조

 

특징

 

- '과거-현재-미래'로 시간의 순서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음(추보식 구성)

 

- 의인법을 사용하여 역동적 심상을 만들어냄

 

- 각 연과 행은 동일한 형태로 만들어짐. 즉 모든 연은 3행이고 1행보다는 2행이, 2행보다는 3행이 길게 형태 지어짐

 

- 남성 편향적인 시어로 정신적 강렬성과 의지를 부각시킴

 

- 예스러운 어휘와 어미를 사용하여 품격을 유지함

 

- 호방하고 웅장한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상징적인 시어를 많이 사용함

 

-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광막한 공간과 장대한 시간을 교차시켜서 시상을 전개함

 

- 속죄양 모티프를 취하고 있음

 

- 시적 화자의 선구자적이고 예언자적인 태도가 돋보임

 

제재 : 광야

 

주제 : 조국 광복 실현의 의지와 꿈

 

제작 : 1940

 

구성- 시간의 흐름(추보식)

 

1() : 과거 - 태고 광야의 원시성

 

2() : - 광야의 광막성 - 절대성

 

3() : - 역사의 태동(胎動) - 가능성

 

4() : 현재 - 암담한 현실과 극복 의지

 

5() : 미래 - 영광스런 미래에의 소망(주제연)

 

시어의 내포적 의미

 

<강물> : 역사

 

<> : 암울한 시대 상황

 

<매화 향기> : 민족 정신

 

<닭 우는 소리> : 생명의 기적

 

<백마> : 조국(민족)의 번영이나 영광

 

<초인> : 비범한 능력을 가진 존재,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꽃피울 초월적 존재.

 

어휘ㆍ시구 풀이

 

<까마득한 날> : 아주 오래 전. 뒤의 '천고의 뒤'와 호응.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설의적 표현으로 여명을 알리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과 혼돈의 상태를 가리킴. 닭 우는 소리는 인간의 생활, 역사의 시작. 따라서 역사 이전의 상태로 때묻지 않는 천지 개벽 이전의 광야의 원시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 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대지에 산맥이 형성된 과정을 동적으로 묘사한 표현(활유법). 역동적 심상. 사이비 진술(사이비 진술이란 진술과 유사하지만 진술이 아니라는 뜻으로 시적 진술이 상징성과 은유성을 갖는 데서 비롯된 말)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 광야의 광막성, 신성함.

 

<끊임없는 광음과 부지런한 계절> : 광음이나 계절은 모두 시간을 나타내지만, 광음은 '끊임없는'이라는 관형사의 성격으로 보아 물리적인 시간을 의미하고, 계절은 '부지런한'으로 미루어 인간적(의지적) 시간이다.

 

<광음> : 시간, 세월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 시간의 개념인 '계절'''의 심상으로 시각화, 영화의 화면으로 재현하려고 한다면 가장 알맞은 카메라의 촬영 기법은 OL(over-lap: 화면이 겹쳐지며 장면이 바뀌는 수법. 한 화면의 끝과 다음 화면의 처음을 부드럽게 포개는 기법.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기도 함.

 

<강물이 길을 열었다> :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았던 광활한 대지에 문명의 역사가 시작된 상황의 표현. 역사, 문명의 태동.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대부분 큰 강 주변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표현이다.

 

<지금 눈아득하니> : 겨울의 추위가 사라질 봄에 대한 희망은 아득히 멀다.

 

<> : 일제 치하의 가혹한 현실 상황

 

<매화 향기> : 독립의 기운.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와 고고한 정신

 

<내 여기씨를 뿌려라> : 비록 현실적 힘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밝은 미래를 향한 나의 염원이 후대에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

 

<가난한 노래의 씨> : 미래에 대한 준비이자 자기희생(속죄양 의식). 자신의 노력을 '가난한'것으로 인식하는 시적 자아의 겸손한 자세. 미래의 희망을 예견하는 희생적 자세.

 

<뿌려라> : 감탄적 명령. 1인칭과는 호응하지 않으나, 강한 의지를 표출.

 

<천고의 뒤> : 온갖 고통을 거친 먼 미래의 시간.

 

<백마 타고 오는 초인> : 조국의 광복을 실현하고 조국의 역사를 찬란히 꽃피울 존재, 이상적 구원자.

 

감상

 

이 작품은 배경의 웅대함으로 처음부터 독자를 압도한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아득하게 넓은 평야, 시간적 배경은 천지가 처음 열리는 까마득한 태초에서부터 머나먼 미래에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크게 나누어 보면, 13연이 과거를, 4연이 현재를, 5연이 미래를 각각 노래하고 있다.

 

3연까지의 부분에서는 광야의 원시적 순수성에서부터 무수한 세월이 흘러 강물이 길을 열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2연은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산맥들의 모습을 살아 있는 동물의 움직임처럼 인식하면서, 그것들이 차마 침범하지 못한 광야의 광활함을 노래하였다. 이처럼 웅장한 터전에 마치 꽃이 피고 지듯 무수한 계절이 지나간 뒤 비로소 강물이 흐르고 길이 열렸다.

 

만물이 눈에 덮여 있는 가운데 이 넓은 광야에 매화의 향기가 그윽하고 은은하게 풍겨 온다. 이 분위기는 앞 부분에서 전개되어 온 광야의 모습을 좀더 숭고하고 신성한 것으로 만들면서 그 안에 선 인물의 외로움을 암시하여 준다. 그는 아무도 없는 광야, 더욱이 눈 덮인 겨울의 광야에 서서 무한한 과거의 시간과 먼 미래의 시간을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은 고독한 것이면서 그의 강인한 의지를 더욱 곧게 세우도록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고독감과 긴장된 의지의 경지가 `매화 향기'라는 사물을 통해 암시된다.

 

강인한 의지로 외로움과 추위를 이기며 서 있는 이 자리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린다. 일체의 생명이 용납되지 않는 냉혹한 시련의 상황에서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자리에 혼자서 뿌리는 씨앗이기에, 더욱이 견디기 어려운 추위(가혹한 현실 상황)를 무릅쓰고 뿌리는 것이기에, 그것은 가난한 노래의 씨앗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광막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억센 의지로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연한 결의가 담기어 있다.

 

그러면 그가 뿌린 외로운 노래의 씨앗은 누가 거둘 것인가? 그것은 대체 싹이나 틀 수 있는가? 이런 물음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냉혹한 시련만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로 모든 고통을 이기며 싸워야 했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성패(成敗) 여부가 아니라 달리 선택할 길이 없는 그 필연성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지막 연에서 노래한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라고. (김흥규: <한국의 현대시>(1996) -

 

 

 

 

광막한 공간과 아득한 시간을 배경으로 강인한 지사적 의지를 노래한 시다. 화자는 이곳에 서서 태초를 포함한 역사(歷史)를 생각하고, 미래의 찬란한 역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매화 향기''고고한 기상, 강인한 기품' 또는 '민족정기'로 해석된다.

 

이 시의 제13연은 광야의 과거의 역사, 4연은 현재의 암담한 상황과 의지, 5연은 미래의 소망으로 구분할 수 있다.

 

1연은 아득한 옛날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광야에는 사람도 살지 않았을 것이다. 광야의 원시성을 뜻한다. '닭 우는 소리'는 대유법으로, 사람의 자취 또는 생명체를 뜻한다.

 

2연은 산맥들이 바다를 향해 형성될 때에도 이 광야만은 침범하지 못했다. 광야의 광막성 또는 신성성을 뜻한다. '광야'는 역사의 현장으로 해석함이 좋다. 의인법을 사용하여 역동적 표현을 하고 있다.

 

3연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이 땅에 강물이 흐르고 길을 열었다. 문명의 탄생을 뜻한다. '강물'은 역사 또는 문명을 상징한다.

 

4연은 상황의 인식과 현실 극복의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평화로운 한반도에 일제의 가혹한 수난이 닥치고, 고고한 정신마저 빼앗길 위기에 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생명의 씨를 심어야겠다. ''은 가혹한 시련을 뜻하고, '매화향기'는 고고한 기상, 광복의 기운을 뜻하는 것으로 ''과 대조적 심상이다. '노래의 씨'는 가혹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생명의 의지, 또는 생명의 씨앗으로 이해된다.

 

5연은 미래 지향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자기희생을 통하여 이 땅의 후손들이 마음껏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현실을 극한적 상황으로 인식하고 새 역사의 아침이 도래할 수 있게끔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남성적인 어조로 표현하여 강렬성을 더해 주고 있다.

 

 

 

 

이 작품은 15행의 5연시로 과거(13), 현재(4), 미래(5)의 시간적 추이에 따라 구성되어 있는데, '까마득한 날'에서 '다시 천고의 뒤'까지의 시간의 흐름은 조국의 현실을 '광야'로 상징한 역사의식의 표출이다.

 

1연에서는 천지가 개벽하는 태초의 상황을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라는 부정적 설의법을 이용하여 광야의 원시성과 신성성을 보여 주고 있으며, 2연에서는 활유법을 구사하여 광야의 광활하고 장엄한 모습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3연에서는 신성한 공간인 광야에서 태동한 우리 민족사의 유구한 역사와 문명을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라는 동적 이미지로써 보여 주는 한편,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에서는 시간적 개념인 '계절''피어선 지고'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감각화하고 있다. 4연에서는 일제의 압제를 상징하는 ''과 조국 광복의 기운이자 온갖 폭압에 맞서 싸우는 절조(節操)'매화 향기'를 대립시킨 가운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는 미래에 대한 굳은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아득하니''멀다'의 뜻이 아니라, '그윽하고 은은하다'의 의미이며, '노래의 씨'는 가혹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생명의 의지로, ''에 함축되어 있는 자기희생적 이미지를 통해 화자의 극복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한편, '가난한'이라는 수식어는 자기 겸손의 표현이기보다는 냉혹한 현실 상황에서 홀로 행하는 행동임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5연에서는 새 역사에 대한 소망이자 조국 광복에 대한 굳은 확신을 통하여 미래 지향의 확고한 역사의식을 제시하고 있다. 암담한 현실 상황에 화자가 뿌린 '가난한 노래의 씨'를 수확하여 '목놓아' 노래 부를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바로 불행했던 역사를 몰아내고 온갖 질곡과 고통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여 찬란한 민족 문화를 꽃 피울 인물이다. 그런데 그 '초인'의 도래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에서의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과 같은 확고한 믿음임을 '초인이 있어'에서의 '있어'를 통해 알게 해 준다.

 

따라서 이 시는 '광야의 원시성ㆍ신성성''광야의 광막성''민족사의 태동과 개척''현실 인식과 선구자 의식''초인 정신과 예언자적 역사의식'의 구조로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육사의 투철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지사적ㆍ예언자적 기품과 단호하고 강인한 남성적 어조로써 신념에 찬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민족시의 정화(精華)라고 할 것이다.

 

 

 

 

이 시를 내용면에서 생각할 때 중요한 부분은 제4연과 제5연이다. 13연에서 광야의 생성을 묘사한 표현도 볼 만하지만, 광야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이 시의 주제는 마지막 두 연에 표현되어 있다.

 

상상컨대, 이 시의 작자인 이육사는 중국의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가없는 저 만주 벌판이라도 바라보면서 이 광야를 착상하였을지도 모른다. 이 시인이 대륙의 광야를 방랑하던 1930년대의 후반은 제2차 세계대전을 향하여 인류의 역사는 너무도 추잡하고 혼란하게 먹칠하여졌을 때이다. 이 시인은 그러한 때 큰 대륙의 가없는 원시적인 평야를 멀리 바라보며, 기성문화의 아무런 물도 들지 않은 역사의 순수한 백지(白紙)를 연상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백지 위에다 새로운 꿈을 창조하여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꿈의 실현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함을 깨닫고 시인들은 곧잘 예술적인 차원에서 순수언어의 구축에 의해 환상적으로 그 꿈을 실현하여 보곤 한다. 발레리의 순수시가 그랬고, 조이스의 <율리시즈>도 그렇다. 이 시의 작자는 문화 이전의 순수의 광야에다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고 자신이 자신에게 의지적인 명령을 한다. 그리고 나선 그 씨가 자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드디어는 그 씨를 성장시키며 수확하는 초인이 반드시 나타나 그 성취의 노래를 부르게 하리라고 의지적으로 표현할 만큼 그 꿈의 실현을 굳게 믿고 있다. - 김현승 : <한국현대시 해설>(지학사.1981) -

 

 

 

 

이 시는 유창한 시간성이 시의 분위기를 엄숙하게 하고 있다. 3연까지는 천지 창조의 과정을 노래한 것으로, 이것은 신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4연은 현실을 노래한 것이다. 지금 광야에는 눈이 내린다. 이것은 암담한 조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는 육사의 지사적(志士的) 기백, 고고(孤高)한 선비 정신, 담아(淡雅)한 민주적 정서를 역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 이러한 정신으로 이 광야에다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것이다. 가난한 노래의 씨는 노래 그 자체가 아니라, 노래가 될 수 있는 어떤 결과를 거둘 수 있게 원인을 뿌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독립을 지향하는 민족혼을 뿌려놓는 것이다.

 

그래서 이 씨에서 자란 노래를 천년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으로 하여금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는 것이다. ‘천고의 뒤는 먼 미래를 뜻하는 말이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미래의 세대다. 육사가 미래의 세대에게 걸었던 기대는 이처럼 컸던 것이다. ‘백마를 탄 초인의 이미지는 힘과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이 제5연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시인이 정의의 기수(騎手), 불행의 시대를 사는 세대의 정신적 지주라면, 이와 같은 행복한 미래의 예언이야말로 시가 갖는 본래적인 사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육사는 이 시에서 조국의 밝은 미래를 예언한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이 독립운동가였고, 그래서 그만큼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투사적인 기개와 지조가 전편에 넘치고 있다. - 권웅 : <한국의 명시 해설>(보성출판사.1990) -

 

 

 

 

이 시는 웅장한 목소리와 비전으로 때 묻지 않은 역사의 신성한 미래를 노래한다. 주목되는 것은 여기서 육사가 보여주는 고절(孤絶)의 의식시간적으로는 장구한 과거의 천고(千古)와 미래 사이, 공간적으로는 만물이 눈 덮인 광야 위에 홀로 선 자기의 인식이다. 이 고절의 자리어쩌면 절절한 고독감으로 그를 절망케 할 수도 있었을 자리에서 육사에게 행동의 의미를 부여하는, 그리하여 그를 구제하는 것이 장엄한 미래에의 기대이다. 이 때문에 극한적 상황의 압박에서 정신의 의연함이 획득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해명하는 핵심은 넷째 연에서 드러난다. , 그는 자신을 아득한 과거와 미래의 연속을 매개하는 창조의 계기로 자임(自任)하는 것이다. 허심탄회하게 `가난한 노래의 씨'라고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언명(言明) 속에는 거대한 역사의 중력(重力)을 감히 지탱하겠다는 오연(傲然)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육사가 <광야>에서 기도했던 것은 타인에게 향한 발언이기보다 자기 스스로에게의 다짐이라고 여겨진다. , 역사적ㆍ문화적 혼돈의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삶에 절대한 사명을 부여함으로써 세계 내적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결의는 번민의 음울함도 절망적 침통함도 넘어섰지만 `기다림'의 의미 때문에 여전히 비극적인 자기 확인이다.

 

 

 

 

[출처] 이육사 : <광야(曠野)> |작성자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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