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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현대수필3

60. 난과 수석

by 자한형 2022.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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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수석(水石) 박두진(朴斗鎭)

 

을 좋아하다가 돌을 좋아하게 되었다. 난을 그만두고 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난과 돌을 다같이 좋아하게 되었다.

난은 난대로 좋고 돌은 돌대로 좋아서 각각 좋아하게 된 것이지만 난을 좋아하다가 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극히 자연스러운 일, 으레 그래야 할 일,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물론 꼭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법은 없겠지만 난을 좋아하다가 돌까지를, 그리고 그 난과 돌을 다같이 좋아할 수 있게 된 것은 나로서는 다시없는 청복淸福, 다시없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난을 난대로만, 돌을 돌대로만 아는 것으로 그쳤다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을 알았기 때문에 돌을 더 알 것 같고 돌을 앎으로써 난을 더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느낌이다.

이 자연의 정수精粹이자 놀라운 순수純粹, 한 뿌리 풀로서의 난과 한 덩이 돌로서의 수석水石은 서로 서로 완전히 이질·대조·대척적對蹠的이면서 그 극, 고고孤高와 초연超然에서 근원은 하나에 있다.

난이 정의 극치라면 수석은 의의 극치, 난이 부드러우면서 의연毅然하다면 수석은 강하면서 지혜를 감추고 있다. 아니 난의 고고와 어질음에 대해서 수석은 불기不羈이면서 차라리 성자聖者롭다.

난이 청초淸楚, 고아高雅, 순미純美한 품격品格이라면 수석은 뇌뢰낙낙磊磊落落 하고, 하면서도 관용자수寬容自守한다. 하되 가볍지 않고, 하되 오하지 않고, 하나의 완벽한 개성으로 한 개 작은 수석이 능히 기세로도 아아峨峨한 태산준령泰山峻嶺이 필적한다. 수수투루綏瘦透漏, 누천만만년屢千萬萬年의 시련과 열력閱歷, 그 대자연의 오묘하고 주도한 조형적造形的 배려가 하나의 응고된 결정結晶, 멀리 인지를 초월한 예술의 일품逸品으로 우리 앞에 있는다.

수석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그 수석을 찾아 나서고 찾고 발견하고 캐내는 과정으로 달리게 한다. 태산준령을 그 봉우리와 능선을 걸어서 넘고 경계景槪와 정기精氣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맑은 물 강변 역력礫礫한 돌밭을 곡괭이를 들고 헤매며 바로 태산준령의 또 하나의 응결체凝結體, 변화무쌍하고 정교·웅혼雄渾하기 이를 데 없는 소자연小自然의 경이를 탐색 발굴해 내는 것이다.

형태와 규모, 질과 색에서부터 경상형象形 상징象徵 추상抽象으로 가려보면서, 수석을 캐는 사람 자신이 하나의 조형造形 예술가의 특유하고 개성적인 심미적審美的 자질과 능력을 구사하면서 무사無邪한 동심의 세계로까지 몰입한다. 단양丹陽, 울산蔚山, 울진蔚珍, 옥천沃川, 점촌店村, 양수兩水, 덕소德沼에 이르는 북한강·남한강·금강·오십천五十川 어디에나 수석은 그 만고의 신비와 미를 간직한 채 숨어 있다.

여기에는 고괴古怪해서 그 앞에 미전米顚이 무릎을 꿇고, 하배下拜했다는 옛 기위寄威한 돌을 방불케 하는 돌을 만날 수 있는가 하면, 아주 세련된 초현대적인 조각으로 저 에밀 지리오리나 앙리 아담, 잔 아르푸나 아몽드롱의 작품을 갖다 놓은 것 같은 순 칠오석漆烏石 추상작품을 캐어낼 수도 있다. 대자연의 비장秘藏의 작품은 그 찾아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고, 또 실지로 드러나 있다.

난이나 수석을 사랑함은 다 속기俗氣를 벗어나 초연한 경지에 다다르는 하나의 길일 텐데 요즈음 나는 너무 수석에 마음이 이끌려 도리어 속기에 빠져들어가는 것이나 아닌가 스스로 경계하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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