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낸 우리 부부는 호텔에 딸린 식당에서 조식을 하고 짐을 챙겨서 방을 나왔다. 국내여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호텔에서 제법 묵어봤음에도 이런 호텔은 처음이었다. 중저가호텔인데 가전제품, 취사용품 등이 다 구비되어져 있었다. 세탁기까지 구비되었다. 오랫동안 장기간 거주코자하는 이들을 위한 주거겸용 호텔로 특이했다. 행선지로 정한 곳은 대청호부근의 청남대였다. 한시간쯤 소요되었다. 길가에는 봄꽃들이 허드러지게 피었고 호수가의 경치도 더할나위 없었다. 푸르른 녹음이 우거져 있는 것이 별천지였다. 한적한 호수길을 따라 드라이브하는 정취도 남달랐다. 한참을 가다보니 청남대 매표소가 나왔다. 뭣모르고 그곳에 도착한 우리는 매표를 하면서 속사정을 알게 되었다. 차량을 끌고 입장을 하려면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매표소에서 입장료와 버스요금을 내고 들어가고 버스로 나오는 방식이었다. 매표소 부근에 주차를 하고 매표를 한다음 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일단 매표를 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20분 정도 버스를 탔다. 청남대로 들어가는 도로변의 경치나 경관은 더할나위 없을 정도로 멋진 풍광이었고 멋진 길이었다. 버스에 내려 기념관을 둘러 보았다. 역대 대통령의 족적, 업적 등이 전시물로 만들어져 있었다. 대통령으로 재직시 받았던 선물 등도 있었고 생활하면서 사용했던 일용품 등도 전시되었다. 집무실도 있어 대통령이 되어 볼 수도 있었다. 그곳이 기념촬영지여서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한쪽에서는 가훈을 써주는 이벤트도 있었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온 우리내외는 청남대 본관으로 향했다. 봄꽃들이 여기저기 만개해 있었고 길 주변으로는 아름들이 반송이 줄지어 있었다. 잔디밭 한쪽에서는 분재전시회가 있었고 영춘제도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잔디밭의 중앙에는 스테인레스로 된 봉황이 조형으로 우뚝 세워져 있었다. 청남대 숙소 입구에는 5그루의 소나무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뒤쪽으로는 금송, 모과나무 등 진귀한 나무들이 즐비했고 분수도 있었다. 연회장으로 사용되는 잔디밭은 잘 가꾸어져 있었다. 분재전시회와 산책로를 둘러본 후 숙소를 보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사진촬영은 금지되었고 실내화로 갈아신고 관람을 해야했다. 그곳을 빠져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전체를 둘러보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각 대통령별로 산책길이 있었다. 6분의 대통령이 이곳을 활용했던 듯했다. 주차장도 넓었는데 꽉찬 느낌이었다. 83년부터 전두환 대통령이 조성해 만든 것이라 했다. 2004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60만평쯤 되어보였다. 메타세콰이어도 거의 수령이 50년은 되어 보였다. 청남대 관광을 마친 우리내외는 속리산으로 향했다. 한시간쯤 소요되었다. 거의 식사할 시간이 되었으나 그냥 입장후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입장했다. 세조길이라 표시된 길을 따라서 걸어 들어갔다. 세조가 복천암에 수도하던 신미대사를 만나러 갔던 길이 세조길이다. 두 번째는 태조 왕건이 갔던 길을 따라서 갔던 길이 세조길이란다. 마지막으로는 세조가 피부병으로 고생을 했는데 목욕소에서 목욕을 하기 위해 갔었던 길이 세조길이란다. 복천암까지 3.1킬로미터였다. 예전에도 한번 왔었던 길이라 익숙했다. 중간에 매점에서 오뎅을 먹었고 마지막 정착지인 세심정에서 식사를 했다. 복천암을 둘러보고 내려온 이후였다. 복천암에서 연등을 걸기위한 준비작업이 한창이었다. 툇마루에 앉아서 주목을 바라다 보고 앉았더니 스님이 농을 하셨다. 주목을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주목이라는 나무를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식사로 시킨 것은 파전과 비빔밥이었다. 법주사로 내려오는 길에는 호수가 있었다. 그 호수에는 나무덩쿨 위에 거북이 세 마리가 햇볕을 쬐고 있었다.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세조길을 내려와서 법주사를 둘러보았다. 팔상전과 쌍사자 석등 불상 그리고 허드러지게 피어있는 왕벚꽃나무 등을 둘러보았다. 한켠에는 엄청난 철솥도 전시용으로 비치되어져 있었다. 팔상전은 부처님의 일생을 8면의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탑은 5층 목탑으로 임진왜란때 불탔으나 다시 재건했다는 얘기였다. 입불상은 33미터에 달했다. 본래예정으로는 곤지암 화담숲을 둘러보려 했으나 너무 시간이 늦어져 더 이상 관광은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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