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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33. 아름다운 강북

by 자한형 202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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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강북/ 백임현

도봉산 근처에서 산 세월이 어언 40년이다. 정릉에서 처음 살림을 시작해 지금까지 열 번이 넘는 이사를 다녔지만 언제나 미아리, 창동, 중계동 등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이라고 도봉산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은 이제 우리 집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남편은 평생 동안 직장생활을 이 부근에서 하였고 아이들도 이곳에서 태어나 어른이 되었으므로 곳곳에 유년이 깃들어 있다. 지금도 미아리 언덕길을 지나노라면 빨간 신발주머니를 들고 엄마 오늘 한 번 잘해 볼게하면서 비탈길을 신나게 달려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외지에 나갔다가도 멀리 도봉산이 보이면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진다. 고향이 가깝고 산이 가까워 그럭저럭 정들여 살다보니 저절로 평생 연고지가 되었다.

이곳은 도봉산을 중심으로 주변에 크고 작은 산이 많아 산을 좋아하는 남편한테는 더 없이 살기 좋은 곳이다. 마치 도봉산이 우리의 산인 것처럼 남편은 산이 있는 이 고장을 사랑하면서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산이 있다. 70년대 초 친척들이 한 둘 강남으로 가면서 여러 차례 함께 움직여 보자고 권유한 바 있으나 고향이 멀어진다는 것과 정든 산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아 그대로 머물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강남이 교육과 문화의 중심이 되고 부의 대명사로 상징되는 특정지역이 되고부터 우리가 정들여 살아 온 강북은 모든 면에서 낙후된 지역이 되어 버렸다. 주변에 아무리 풍광이 좋은 명산이 있어도 그것이 자랑이 되지 않았다. 예나 이제나 산 빛은 변함이 없고 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도 변하지 않았으나 세태 따라 변하는 민심이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많은 친구들이 대부분 강남 분당 등지에 살기 때문에 그쪽 나들이를 자주 하는 편이다. 강남이 발전하기 전에는 명동이나 인사동에서 모임을 했었으나 이제는 친구들이 강북까지 오려고 하지 않아서 내가 그들에게로 간다. 강남 쪽을 갈 때면 주로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게 된다. 한강은 언제 보아도 경치가 좋다. 드넓은 강폭에 넘칠 듯 그득한 강물, 유유히 흐르는 유람선, 푸른 물결 위에 수를 놓은 듯 눈부신 윈드서핑의 영롱한 날개, 거기에 운치를 더해 주는 한강 다리들, 이 모든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한강은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평화롭고 아름답다. 그 중에서도 항상 내 눈길이 머무는 곳은 무지개처럼 떠 있는 다리들이다. 그 다리들을 보면 옛날이 생각난다.

예전에는 한강 철교와 인도교 등 몇 개의 다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강을 건너는 일이 용이하지 않아 강가에는 나루터가 있었고 강을 건네주는 나룻배가 있었다. 전쟁 중에는 한강 다리가 끊어져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으며 공산치하에서는 목숨 걸고 강을 건너다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수복 후에도 도강증이 있어야 건널 수 있었기 때문에 한강 건너는 일이 아주 힘들었다. 이처럼 불편이 많았던 한강에 지금은 스무 개가 넘는 다리가 놓여 누구라도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지만 다리가 많다고 강 넘기가 쉬워진 것은 아니다.

강남이 신기루처럼 점점 높아지고 이 나라 부유층이 모여 사는 특별구가 되면서부터 한강은 아무나 넘을 수 없는 강이 되었다. 한강은 이제 부와 빈곤을 가르는 경계가 된 듯싶다. 그 경계는 너무도 견고하고 우리 같은 강북시민들은 도저히 넘어 설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의 꿈이 강남시민이 되고 싶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돈 벌고 출세한 사람들은 강남으로 간다.

강남에는 몇 해 사이에 부유층으로 상승한 친지들이 많다. 강북에서는 같은 서민이었으나 강을 건너가 몇 차례 이사를 하더니 재력 있는 부유층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살아가는 데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자위를 해보지만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마음이 쓸쓸하다. 이 시대는 아무래도 북쪽보다는 남녘에 길운이 있는가 보다.

가난을 벗어난 그들이 이 시대의 당당한 승자처럼 느껴질 때, 어쩔 수 없이 밀려드는 무력감, 배운 대로 욕심 부리지 않고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건만 그들 앞에서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한가. 어쩐지 세상을 잘못 산 것 같은 자괴감이 들어 허탈하다. ‘, 친구 따라 강남 갈 걸.’ 나는 별수없는 속물인가 보다. 부의 분배가 균등하게 이루어져 모든 사람들이 위화감이나 울분 없이 골고루 평화롭게 사는 세상은 언제 올 것인가.

노래 속에서의 <강남>은 서정적인 정감을 주는 것이 많다. 봄바람이 불어 오는 산 너머 남촌, 제비가 찾아오는 따뜻한 강남.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아름다운 우정, 우리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강남을 상상하며 노래했었다. 서울의 강남도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땅이었으면 좋겠다.

강 건너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어디에서나 북한산과 도봉산이 보인다. 멀리서도 눈부신 봉우리들이 수려하다. 고향의 지붕 같은 산, 마음이 무겁다가도 그 산이 보이면 편안해진다. 그래서 그 언저리를 맴돌며 평생을 불평 없이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무슨 불만인가. 욕심을 버리라고 산은 말하는 것 같다.

오늘도 도봉산은 푸르다. 그리고 강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다. 유구한 세월 도봉산이 한결같이 빛깔로 푸르른 것은 크고 작은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그 산을 사랑하는 많은 생명들이 산을 지키기 때문인 것처럼 우리의 강북이 오늘도 변함없이 여전히 아름다운 것은 시절의 변화에도 동요 없이 내 고장을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지키는 소박한 사람들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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