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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35

이병주 (1921~1992) 해방 이후 부산 국제신보 편집국장 및 주필, 해인대학 교수 등을 역임한 언론인.소설가.생애 및 활동사항호는 나림(那林). 경상남도 하동 출생. 1941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문예과를 졸업하고, 이어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불문과에 진학하였으나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퇴하였다. 한때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지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1948년 진주농과대학 강사, 1951년 해인대학(海印大學, 현 경남대학교) 교수가 되었다.이 대학에 재직중인 1953년, 32세 때 첫 장편소설 「내일 없는 그 날」을 『부산일보』에 연재하였다. 이는 당시 부산일보 논설위원이었으며, 훗날 문화방송 사장이고, 함께 필화사건에 걸려 옥고를 치르기도 한 황용주(黃龍珠)와 편집국장 이상우(李相.. 2021. 10. 11.
염상섭 (1897~1963) 일제강점기 「표본실의 청개구리」, 「삼대」, 「해바라기」 등을 저술한 소설가.개설본관은 서원(瑞原). 본명은 염상섭(廉尙燮). 호는 제월(霽月) 또는 횡보(橫步). 서울 출생. 대한제국 중추원 참의 염인식(廉仁湜)의 손자이며, 가평 군수 염규환(廉圭桓)의 8남매 중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경주(慶州) 김씨, 부인은 의성(義城) 김씨 김영옥(金英玉)이다.생애 및 활동사항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우다가 1907년 관립사범부속보통학교(官立師範附屬普通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반일 학생으로 지목되어 중퇴하였다.1912년 보성소·중학교를 거쳐 일본에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교토[京都] 부립제2중학을 졸업하고 1918년 게이오대학[慶應大學] 예과에 입학하였다.재학 중 오사카[大阪]에서 자신이 쓴 「조.. 2021. 10. 11.
박종화 (1901~1981) 일제강점기 「밀실로 돌아가다」, 「만가」, 「오뇌의 청춘」 등을 저술한 시인.소설가, 비평가.생애 및 활동사항호는 월탄(月灘), 이 밖에도 죵화·춘풍(春風)·조수루주인(棗樹樓主人, 釣水樓主人)의 필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서울 출생. 소년시절 사숙(私塾)에서 12년간 한학을 수업한 뒤 1920년 휘문의숙(徽文義塾)을 졸업하였다.1947년 성균관대학교 교수와 서울시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우익 진영의 대표자로서 1949년 발족한 한국문학가협회(韓國文學家協會)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서울신문사 사장, 서울시문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1954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5년 예술원 회장에 취임, 제1회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1966년 제1회 5·16민족상을 수.. 2021. 10. 11.
나도향 (1902~1926) 일제강점기 「벙어리 삼룡이」, 「뽕」, 「물레방아」 등을 저술한 소설가.개설서울 출생. 본명은 나경손(羅慶孫), 필명은 빈(彬)이며, 도향은 호이다. 의사 나성연(羅聖淵)의 맏아들이다.생애 및 활동사항1917년 공옥학교(攻玉學校)를 거쳐, 1919년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에 뜻을 두어 할아버지 몰래 일본으로 갔다. 그러나 학비가 송달되지 않아서 귀국하였고, 192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1922년 현진건(玄鎭健)·홍사용(洪思容)·이상화(李相和)·박종화(朴鍾和)·박영희(朴英熙) 등과 함께 『백조(白潮)』 동인으로 참여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 2021.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