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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390

2. 강원도 달비장수 강원도(江原道) 달비 장수 -전병순 지지리도 가난한 마을이었다. 추암산 기슭으로 양지바른 골짜기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모두 해서 초옥만 열두 가호, 두세 집을 제하고는 한결같이 지난 가을에도 이엉을 새로 엮지 못한 듯 늙은 느타리버섯처럼 축 처지고 주름잡힌 지붕의 처마끝으로 썩은 샛물이 흘러 괴어 마당들은 노상 청태 낀 듯 한 겹 입혀지고 있었다. 거북이등처럼 금이 간 흙벽에 이 빠진 평상마루 하며, 죽석이면 최상급인 안방들엔 부황기 아니면, 회충 지닌 얼굴들처럼 누렇게 뜬 늙은이나 아낙네 어린이들만이 간혹 날고구마나 배추뿌리를 깎아먹으며 웅숭그리고들 있었다. 구 이팔 수복 때, 입산 도주하는 인민군 유격대들이 마을의 장정들을 모조리 끌고 가버려서 유난히 홀어미가 많다는 이 추암 부락이다. 할 일도 없고.. 2022. 4. 14.
1. 가해자의 얼굴 가해자의 얼굴 -이청준 1 1950년 6월 하순에서 9월까지―, 당시에 ㄱ중학교 2학년 학생이던 아이가 더부살이로 얹혀 지내던 혜화동의 누님 집으로 그 석 달 남짓간에 아이의 자형을 찾아온 사람은 모두 세 파수였다. 몸을 피하려 했대도 아이의 자형은 어차피 그 중의 누구에겐가 붙잡혀 끌려가고 말 처지였다. 세 번 다 모두 아이의 자형과는 한동안 ㅂ연맹이란 단체에 소속을 함께 해 온 사람들이어서 그의 주변사를 빤히 다 알고 있는 처지들인데다, 마지막 세번째는 경우나 목적이 달랐지만, 첫번과 두번째는 각기 서로 다른 편을 위해서 동지를 붙잡으러 온 위인들이었던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차라리 아이의 자형이 첫번 연행자들에게 일찍 덜미를 붙들려가 버린 것이 어차피 치러야 할 뒷날의 난국을 얼마쯤 앞당겨 겪어버린.. 2022.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