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단편소설390

6. 꺼삐딴 리 꺼삐딴 리-전광용 수술실에서 나온 이인국(李仁國) 박사는 응접실 소파에 파묻히듯이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그는 백금 무테 안경을 벗어 들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등골에 축축이 밴 땀이 잦아 들어감에 따라 피로가 스며 왔다. 두 시간 이십 분의 집도. 위장 속의 균종(菌腫) 적출. 환자는 아직 혼수 상태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 수술을 끝낸 찰나 스쳐 가는 육감 그것은 성공 여부의 적중률을 암시하는 계시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뒷맛이 꺼림칙하다. 그는 항생질 의약품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던 일제 시대부터 개복 수술에 최단 시간의 기록을 세웠던 것을 회상해 본다. 맹장염이나 포경 수술, 그 정도의 것은 약과다. 젊은 의사들에게 맡겨 버리면 그만이다. 대수술의 경우에는 그렇게 방임할 수만은 없다... 2022. 4. 14.
5. 까마귀 까 마 귀 -이태준 「호오.」 새로 사온 것이라 등피에서는 아직 석유내도 나지 않는다. 닦을 것도 별로 없지만 전에 하던 버릇으로 그렇게 입김부터 불어가지고 어스레해진 하늘에 비춰 보았다. 등피는 과민하게도 대뜸 뽀오얗게 흐려지고 만다. 「날이 패 차졌군,,,,,,」 그는 등피를 닦으면서 아직 눈에 익지 않은 정원을 둘러보았다. 이끼 앓은 돌층계 밑에는 발이 묻히게 낙엽이 쌓여 있고 상나무, 전나무 같은 상록수를 빼어 놓고는 단풍나무까지 이미 반 남아 이울어 어떤 나무는 잎이라고 하나도 없이 설멍하게 서 있다. -무장 해제를 당한 포로들처럼-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쓸쓸한 나무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묵묵히 섰는 것을 그는 등피를 다 닦고도 다시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파기 방으로 정한 바깥채 작은사랑으로.. 2022. 4. 14.
4. 고려장 고려장(高麗葬) -전상국 현세가 그 정신 병원을 찾아간 것은 (막판에 가서 한번 해볼 수도 있는 방법)을 결행하기로 마음을 굳혀 버린 뒤, 아직도 마음 밑바닥을 송곳처럼 쿡쿡 쑤시고 올라오는 가책으로부터 자신을 건져 올리기 위해서였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마치 욕조 속의 물이 얼마나 뜨거운가 확인하기 위해 손을 넣어 보듯 그 일을 좀더 완벽하게 해치우기 위한 사전 탐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신영원이란 선입감과는 달리 그곳은 정결하고 조용했다. 현세가 만나볼 수 있었던 그 의사 역시 병원의 나른한 분위기처럼 여유가 있어 뵈고 깨끗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친절했다. 상대편의 마음을 샅샅이 읽어내려는 유도적 화술이 몸에 밴 그런 친절이었다. 좀처럼 자기 의견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떠들어라, .. 2022. 4. 14.
3. 겨울의 출구 겨울의 출구(出口) -전상국 「얘들아. 아버지 들어오실 시간이다. 」 어머니가 부엌에서 연탄불을 갈아넣으며 우리 방 쪽을 향해 말했다. 머리가 반백인 초로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에 도착할 시간을 어림하고 있다가 그것을 집안 식구들에게 알리는 게 이제 버릇이 돼 있었다. 그것은 우리 나라 아낙네들의 지아비에 대한 한결같은 경외심의 한 표현이라고 봄이 좋을 것이다. 흥 -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형이 가볍게 코방귀를 날렸다. 아버지를 향한 형의 감정의 미묘한 움직임은 이 코방귀 하나로 충분히 짐작이 됐다. 형은 아버지를 멸시했다. 아버지가 생각하고 행하는 여러 가지 생활 방식에 대해 깊은 적의를 가지고 맞섰다. 육친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복받쳐 올라 그것을 미처 주체 할 수 없을 때 형은 그 사실로 해서.. 2022.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