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단편소설2122 11.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윤흥길 먼저 우연한 계제에 인물 잘나고 몸 좋은 여노(女奴)를 시가보다 훨씬 저렴한 값에 구입하게 된 이야기. 그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실천하고자 했던 작은 미거(美擧)를 그 자신에 의해 기록된 일종의 인간성의 승리로까지 치부하고 있었다. 다음 그는 당황했다. 많이 후회도 했다. 새 주인에 향하는 계집종의 충성을 그로서는 뿌리칠 재간이 없었다. 결국 두엄자리에 앉아 신선 놀음하는 생활이 시작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생활에도 차츰 익숙해지는 사이에 도끼 자루는 어느덧 썩어버렸다. 그렇다고 칠칠한 위인은 못 되지만, 무슨 요일인가마저 까먹을 정도로 솔봉이는 아니었다. 아침에 출근할 당시만 해도 그걸 알았고, 회사가 파하는 즉시 집에 일찍 들어가겠노라고 마누라한테 약속.. 2022. 3. 1. 10. 어떤 부부 어 떤 부 부 -유진오 『흠.』 한참이나 인환은 생각하다가. 『별 수 없지, 무어. 처녀로 행세해 보지.』 그의 입술을 치어다 보고 앉았는 희경을 건너다보고 말한다. 『처녀루?』 희경은 인환의 눈을 치어다 본다. 『헐 수 없지 않소, 취직은 해야겠구. 거짓말 좀 허기루.』 『그래두―』 희경은 찬성치 않는 듯이 머무적거린다. 『거리낄 거 뭐 있소. 누굴 속여서 어쩐다는 것두 아니겠구, 대체 저쪽 조건이 우습지, 미혼 여자래야 만 될 이유가 무어야?』 『글쎄, 그래두.』 희경은 여전히 마음이 정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내 생각엔 괜찮을 것 같구먼두.』 인환은 담배를 피어 물고, 후―내뿜었다. 생각하면 사내자식이 제 손으로 계집자식을 벌어 먹이지 못하고 계집을 취직 전선에 내세운다는 것은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2022. 3. 1. 9. 어두운 기억의 저편 어두운 기억(記憶)의 저편 이균영 눈을 뜨자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벽을 더듬거려 겨우 문 옆에 붙은 스위치를 찾아냈다. 희미한 백열등이 켜졌다. 그곳은 장식이 없는 작고 낯선 방이었다. 지독한 두통과 함께 응급환자와 같은 목마름이 그를 덮쳤다. 잠자리의 머리맡엔 주전자가 있었다. 컵이 있었으나 그는 허겁지겁 꼭지에다 입을 붙이고 두통과 목마름을 다스렸다.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렸다. 여느 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대개 그는 잠자리에서 깨어나면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있었다. 오래 길들여진 그의 버릇 중의 하나였다. 그는 지난밤 잠자리에서 하던 생각의 끝을 이어 내거나 어렴풋이 남아 있는 꿈을 되새기며 정해진 일조 시간을 아끼는 꽃처럼 눈뜨기를 망설였었다. 그는 될 .. 2022. 3. 1. 8. 신의 눈초리 신(神)의 눈초리-유주현 이 세상에 의외의 일이란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지만 내가 강군의 부음(訃音)을 들은 것은 정말 너무도 뜻밖이어서 처음엔 그 죽음의 대상이 그의 부자(父子)가 서로 엇바뀌어 잘못 전해진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그날 내가 강군을 만난 것은 전혀 뜻밖의 우연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근자에는 특히 오후의 산책을 즐기는 버릇이 있다. 주로 서재에서 외로이 지내는 것이 나의 일과이기 때문에 오후만 되면 부담없이 집을 나서서 아무데나 거닐기를 좋아한다. 온종일 호젓한 분위기에 젖어 있다가 집을 나서면 주로 명동이나 무교동 일대의 그 잡답(雜沓) 속을 헤쳐보고 싶어진다. 그런 때면 아무리 번거롭고 시끄러우며 비위에 거슬.. 2022. 3. 1. 이전 1 ··· 26 27 28 29 30 3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