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 673 장미 세 송이 장미 세 송이 / 정형숙 붉고 커다란 장미 세 송이가 화폭을 채웠다. 강렬한 색감과 화려함이 나를 이끌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제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찾고자 했다. 한참을 그림 앞에서 서성였다. 화가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노력해도 끝내 떠오른 생각은 없었다. 전시장에 걸린 다른 그림을 보면서도 떨떠름했다. 다시 장미 세 송이 작품으로 돌아왔다. 눈 맞춤이 계속되자 사각형 그림 속에 작은 틈새가 보였다. 틈새는 검푸른 공간으로 확대되어 교실 뒷문 손잡이를 잡는 내가 있었다. 말소리가 창문을 넘자 복도는 시끌벅적했다. 저마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자랑하기 바빴다. 교실에 빈손으로 들어서는 나를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선생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대기업에 취업한 미숙이가 들어.. 2023. 7. 30. 수필 삼국지 수필 삼국지 / 이미영 대저 천하의 명저란 오랫동안 읽히면 반드시 새로운 평가를 받고 오랫동안 재평가됐다면 반드시 오래 읽히게 된다. 《수상록》의 표지와 첫 장을 장식하는 몽테뉴의 초상화는 “내 책은 뭐 별거 없어요, 좀 있는 집안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리 평탄한 삶은 아니었어요.”라고 슬쩍 흘리는 것 같다. “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기뻐하셨듯 나는 삶을 사랑하고 삶을 즐긴다.”고 말했지만, 그의 얼굴은 다른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살던 아주 오래전 인물이다. 나는 거리와 시간을 좁히기에는 맹랑한 현재 사람이다. 목침만 한 옛날 책이 표지모델부터 지루하게 다가온다. 수필 삼국지의 패장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생활의 발견》의 표지에도 린위탕이 등장한다. 중국 전통 의상.. 2023. 7. 30. 몽동발이 몽동발이 / 최명임 - 2023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빛깔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다. 붉은 듯 푸르고 푸른 듯 초록이다. 칠흑으로 이어지다 어느 구간에선 순백이다. 몸태는 톱으로 자른 듯 뭉툭하지만, 살결은 잘 구운 도자기 빛이다. 몸에 밴 삶의 빛깔일까. 박물관 앞에 서서 존재감을 발하는 그의 본색이 궁금하다. 저 삶은 어떻게 빛났을까. 곡절과 시련이 지나간 흔적은 물론 껍질마저 벗어버린 몽동발이다. 어떤 날붙이의 서슬도 무색할 석화목이다. 그와 마주하는 순간 접신한 무녀처럼 몸이 떨렸다. 그가 겪어낸 숱한 번민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꿈꾸는 생명 하나가 떨어졌다. 처음 맡아보는 흙냄새와 야릇한 기척에 잠자코 숨을 죽였다. 생명이 꿈틀거렸다. 틈새에서 빛을 마시고 빗물을 들이키며 땅속을 헤집었다.. 2023. 7. 30. 고향의 무지개 고향의 무지개 / 염성연 - 2023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자란 미인송이 열병식 하는 군인처럼 서 있는 오솔길, 길이 끝나는 언덕 위에 새로 만든 무덤이 덯그렇다. 지난밤 하늬바람은 울긋불긋 단풍잎으로 큼직한 꽃동산을 만들어 놓았다. 꽃무덤 주인이 뭉게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빙그레 웃고 있다. 마을의 최고 연장자인 촌장 어른이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간다는 소식에 자식들은 물론 온 마을의 남녀노소 다 모였다. 촌장은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다가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자그마한 나무상자가 있었다. 무엇이길래? 궁금한 머리들이 일제히 눈을 돌려 나무상자를 따라 움직인다. 그 속에서 누렇게 바랜 신문지로 싼 봉지가 나왔다. 봉지를 헤치니 얼룩진 편.. 2023. 7. 30.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