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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 672

분꽃 분꽃 / 김재희 저녁나절 살랑대는 바람에 마음 자락이 헛헛하다. 어려서부터 이맘때쯤이면 가끔 콧물을 훌쩍이곤 했다. 특별히 뭔가가 서러워서도 아니고 억울해서도 아니다.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막연히 허전하곤 했다. 그럴 때 위안을 받는 것이 있다. 화단에 핀 분꽃이었다. 온종일 입 다물고 있다가 저녁나절이면 봉긋이 피어나던 분꽃은 꼭 나를 향해 웃어주는 것 같았다. 큰딸이면서도 나는 어머니와 그리 살가운 정을 나누지 못했다. 어머니로서는 맨날 병치레만 하는 딸이 그리 미덥지 않으셨는지 마음에 들지 않아 하셨다. 나 또한 그런 어머니에게 곰살맞게 굴지 못했다. 그럴라치면 자꾸 더 야단을 맞고 그것이 억울해서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분꽃은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까만 씨 속에 하얀 분말가루처럼 .. 2024. 8. 8.
세포가 춤춘다 세포가 춤춘다 / 문윤정 커다란 티베트 명상 주발(Tibetan Singing Bowl)이 탁자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좌종이라고도 하는데 저음의 장중한 소리가 특징인 소리 도구이다. 막대기로 가볍게 명상 주발을 치자 장중한 소리가 공기 속으로 잔잔하게 퍼져 나간다. 명상 주발이 공명하여 내는 소리는 완만하지만 공기의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어떤 에너지가 느껴진다. 소리가 점점 잦아들면서 여음餘音의 꼬리는 길게 이어지다가 멈추지 않는 듯이 멈춘다. 명상 주발의 공명과 파동은 내 마음속에도 그렇게 파동치다가 점점 잦아든다. 여음은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서 가늘게 떨린다. 명상 주발을 이용하여 소리 명상에 들어갔다. 스님이 주발을 치면 깊이 들이마신 숨을 내쉬면서 한 호흡이 끊어질 때까지 ‘옴~~~' 소리.. 2024. 8. 8.
고양이 예찬 고양이 예찬 / 차달숙 가축이라면 소, 돼지, 말, 닭, 오리, 등이 있다. 소도 버펄로 같은 야생 소에서, 돼지도 산돼지(멧돼지)에서, 닭, 오리도 조류에서 길들어졌다. 양식에 성공한 산물이다. 그리고 고양이도 야생고양이에게서 길들어졌다. 고양이는 사실상 가축으로서 쓸모는 없다. 소나 말은 매우 유용해서 노동력을 제공한다. 또 잡아먹으면 훌륭한 고기와 가죽, 뼈까지 주인에게 헌납한다. 돼지는 강한 번식력에 아무거나 잘 먹고 좋은 육류를 주인에게 주고 간다. 그런데 고양이는 가축 축에 더 끼이기 어려울 만큼 쥐를 잡는 것 이외에 쓸모가 없다. 밥은 한 끼도 거르지 않고 꼭꼭 달라고 해서 먹고 산다. 그런데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는.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고양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2024. 8. 8.
소리를 먹는 집 소리를 먹는 집 / 정연순 - 제 1회 우하 박문하 문학상 이른 아침에 방문을 열어젖힌다. 새들이 개나리 울타리 사이를 드나들며 재재거린다. 나의 눈꺼풀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새 소리만이 아니다. 고개를 들면 멀리 삼악산 봉우리가 우뚝하며 가슴까지 열어 보인다. 봉우리는 맑은 날이면 나무로 깃털을 세우고 흰 구름이 흘러가는 날이면 살짝 몸피를 감춘다. 그렇게 나와 봉우리 사이엔 고정되지 않은 정경들이 숨어있다.  산마을에는 열여섯 가구가 산다. 내가 거처하는 집은 허름하다. 지어진 지 오래고 양철지붕이다. 비가 오면 나는 빗방울이 양철지붕과 만나는 지점에서 튕겨 오르는 화음을 듣는다. 소리는 지붕의 낡음과는 하등의 연관성이 없기에 그저 좋다. 다만 먼 곳에서 보면 지붕의 색깔이 칙칙하여 얼마 전에는 주.. 2024.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