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31 고향소식 고향소식 박재삼 아, 그래, 건재약 냄새 유달리 구수하고 그윽하던 한냇가 대실 약방…… 알다 뿐인가 수염 곱게 기르고 풍채 좋던 그 노인께서 세상을 떠났다고? 아니, 그게 벌써 여러 해 됐다고? 그리고 조금 내려와서 팔포 웃동네 모퉁이 혼자 늙으며 술장사하던 사량섬 창권이 고모, 노상 동백기름을 바르던 아, 그분 말이라, 바람같이 떴다고? 하기야 사람 소식이야 들어 무얼 하나, 끝내는 흐르고 가고 하게 마련인 것을…… 그러나 가령 둔덕에 오르면 햇빛과 바람 속에서 군데 군데 대밭이 아직도 그전처럼 시원스레 빛나며 흔들리고 있다든지 못물이 먼 데서 그렇다든지 혹은 섬들이 졸면서 떠 있다든지 요컨대 그런 일들이 그저 내 일같이 반갑고 고맙고 할 따름이라네.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감각적, 회고적, .. 2021. 12. 8. 고향앞에서 고향앞에서 오장환 흙이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우는 소릴 불러 다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서성거리다 행인의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끓여다 놓고 주인집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잔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오가는 길에 혹여나보셨나이까. 전나무우거진 마을 집집마다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 상고 : 장수 -(1940)-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낭만적, 서정적, 감각적, 비극적, 애상적 ◆ 표현 : 다양한 감각적 표현 현재형의사용으로 작품의 사실감 고조 회한과자책 속에서 쓸쓸.. 2021. 12. 8. 공터 공터 -최승호-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에 싸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공터는 말이 없다 있는 흙을 베풀어주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밝은 날 공터를 지나가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가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1994)-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관념적, 사색적, 명상적 ◆ 특성 ① 대상을 의인화하여 대상의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 ②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를.. 2021. 12. 8. 과목 과목 - 박성룡 - 과목에 과물(果物)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薄質) 붉은 황토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滅裂)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果物)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 흔히 시를 잃고 저무는 한 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서 시력(視力)을 회복한다. - (1959)-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서정적, 사색적, 인식적, 관조적 ◆ 표현 : 경이로움과 감탄적인 어조 투박한 한자어와 '사태, 경악'과 같은 돌발적 시어를 사용하여 신선한 느낌을 표현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제재 : 과목 ◆ 주제 : 자.. 2021. 12. 8.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