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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물. 우리 시대의 거장, 스승을 말하다(월간중앙 연재물),

장기려박사

by 자한형 2021.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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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태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4개월 만인 19501019, 유엔군과 국군은 평양을 탈환했다. 당시 김일성의과대학 의사였던 장 박사는 대학병원과 야전병원을 오가며 부상자 진료에 밤낮이 없었다.

그 해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대전환, 국군은 평양을 철수하게 된다. 이 때 장기려박사는 남으로 가기 위해 환자용 버스에 태워졌다. 부모와 부인, 그리고 5남매를 두고 차남만 데리고 떠났다. 이 순간이 45년간의 긴 이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족을 만난다는 일념으로 부산에서 피란생활이 시작되었다. 영도에서 천막을 치고 무료 진료소를 열었다. 절대 빈곤의 시대에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날이 갈수록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기약 없는 희망일 뿐이라고 여겨졌다. 경성의전에 들어갈 때부터 하느님 앞에 맹세한 대로 가난한 이웃을 돕고 그들의 삶에 작은 촛불 역할이라도 해야겠다는 초지를 되새겼다. 무려 하루 200명씩이나 환자를 돌보면서도 지겹거나 피곤한 줄 몰랐다. 이렇게 지성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다 보면 혹시 북에 있는 가족도 누가 도와주리라는 신념이 생겼다. 아니 바로 그 믿음으로 자신을 바치기로 했다. "의사를 한번도 만나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는 당초의 인술에 대한 철학을 박사는 묵묵히 실천해 나가기로 했다.

장기려박사는 한국 최초의 의료보험 조합인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을 만들었다. 언제까지나 병원 무료진료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북유럽의 의료보험 제도를 본딴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탄생시켰다.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났을 때 도움받자'는 표어를 내걸고 주변의 몰이해도 감내해야만 했다. 오로지 가난한 환자를 위한 사랑과 기도로 이뤄진 진료의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실제 모델이 장 박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경성의전을 수석 졸업하고 59년간 대량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간 질환 치료에 앞장서 왔다. 복음 병원이 간 치료의 메카처럼 여겨진 것도 모두 장 박사가 끼친 공적 때문이라 봐도 좋을 듯하다.

병원장이 무료 환자를 너무 많이 양산하다 보니 병원 적자도 그만큼 불어나게 되었다. 결국 병원 회의에서 앞으로 무료 환자 결정은 원장이 아닌 부장회의에서 결정토록 했다. 이렇게 되자 장 박사는 아무리 딱한 환자의 사정이 있어도 재량권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졌다. 입원비를 낼 수 없는 가난한 농부환자를 위해 뒷문으로 도망가게 도와주고 그에게 차비까지 찔러준 일화는 유명하다. 부장 회의의 재량권 제약을 받은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그 자신의 일상은 낭비를 모르는 청렴한 생활이었다. 평양에 있을 때도 장기려박사는 월급을 집에 갖다 주지 않으니까 부인이 의사 가운과 환자복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와 함께 진료에 임했던 외과 전문의 서재관 박사는 그가 영도 복음 병원 시절부터 고신의료원에 이르기까지 병원에 이렇다 할 담장을 치지 않은 것은 숨은 까닭이 있었다고 말한다.

장 박사는 가족 만나길 그토록 소망했지만 막상 1985년 정부의 방북 권유를 거절했다. 그 때는 요즘처럼 대량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 많은 이산가족을 다 두고 혼자만 특혜를 누릴 수 없다는 뜻에서였다. 1995년 성탄절 새벽에 86세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 해 10월 임종을 앞둔 때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땅에서 지금 만나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짧게 만나 헤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만나자"고 했다. 한이 너무 깊으면 마치 겉으로 보기엔 태연한 것처럼 보이는 법이다.

그는 평소 재혼에 대해 "평양에서 주례를 서 주신 목사에게 백년해로하겠다고 서약했으니 100년 이후에나 재혼하겠다"고도 했다. 가난하여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이웃들의 영원한 벗이던 장기려박사는 흔한 아파트 한 채도 갖지 않고 고신 의료원 1024평 남짓한 사택에서만 살다 갔다.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업적에 대한 포상이 없었을 때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막사이사이상'이 주어진 것은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장기려박사 일화 세토막 (기독신문)

장기려 박사가 운영하는 청십자 병원에 한 농부가 입원했다. 이 농부는 워낙 가난해서 치료를 끝내고도 입원비가 밀려 퇴원을 할 수가 없었다. 생각다못한 농부는 장 박사를 찾아가 하소연했다.“원장님, 모자라는 입원비는 돈을 벌어서 갚겠다고 해도 도무지 믿지를 않습니다. 이제 곧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제가 가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환자의 사정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있던 장 박사가 입을 열었다.“밤에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냥 살짝 도망치시오.”그날 밤, 장 박사는 서무과 직원이 모두 퇴근한 다음에 병원 뒷문을 살짝 열어놓았다. 얼마 뒤 농부와 그의 아내가 머뭇거리며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장 박사가 농부의 거친 손을 잡았다.“얼마 안되지만 차비요. 열심히 사시오.”다음 날 아침, 환자가 사라졌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서무과 직원이 원장실로 뛰어왔다.“106호 환자가 간밤에 사라졌습니다.”그러자 장 박사는 겸연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사실은 내가 도망치라고 문을 열어 주었소. 다 나은 환자를 병원에서 마냥 붙들고 있으면 그 가족들은 어떻게 살겠소? 이 과장도 알다시피 지금이 한창 바쁜 농사철 아니오?”2 ▲…거제 보건원의 정희섭 원장은 장 박사가 월남해 왔을 때 부산 제3육군병원 원장으로 장 박사를 받아주었던 사람이다. 그런 인연으로 장 박사는 2주에 두번씩은 거제도에서 환자를 보기로 했다. 그가 오는 날은 병원이 장날처럼 붐볐다. 외딴 섬마을에서 오는 환자들은 바람이 불어 배를 탈 수 없을까 염려해 미리 병원 가까운 여관에 들기까지 했다.손자가 수술을 받고 퇴원하던 날, 그 손자의 할머니는 손수건에 달걀 3개를 싸가지고 와서 장 박사의 손에 쥐어 주었다. “선생님, 우리 삼대 독자를 살려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장 박사는 그 순간 그 할머니의 얼굴에서 자신을 기도로 키워주셨던 친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 손자의 병은 제가 고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조금 도와주었을 뿐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선생님이 수술해서 우리 손자를 안 살렸습니까?”장 박사는 웃으며 이렇게 설명했다. “할머니, 우리 몸에는 스스로 낫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없으면 의사는 극히 작은 수술도 할 수 없습니다. 할머니는 칼에 손을 벤 적이 있으시지요?” “, 있지요. 피가 나지 않게 꼭 싸매두면 저절로 상처가 아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은 알듯도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네요. 우리 손자를 살리시고도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시니”3 ▲…하루는 장기려 박사가 외출을 위해 병원을 나서는데 나이 많은 거지 하나가 그의 옷을 잡았다. 장 박사는 여기저기 옷을 뒤졌지만 그의 호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갖고 있는 돈이 전혀 없다는 장 박사의 말에 거지 노인은 몹시 실망해 잡고 있던 옷자락을 놓았다.돌아서 몇 걸음을 옮기던 장 박사는 갑자기 뒤돌아서서 거지 노인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양복 주머니에서 월급으로 받은 수표를 꺼내었다. 장 박사가 수표를 건네주자 거지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종이 나부랭이가 돈이란 말이오?” 화가 나 돌아서려는 거지 노인을 장 박사가 붙잡았다. “이것은 수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은행에 가면 돈으로 바꿔줄 겁니다.”며칠 후, 장 박사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는 은행입니다. 혹시 수표를 잃어버리신 일이 없으신지요?”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웬 거지 노인이 박사님 사인이 된 수표를 가지고 왔는데요?” “! 그것 말이군.” 장 박사는 그제서야 며칠 전 거지에게 준 수표가 생각났다. “그 수표는 내가 준 것이니 그리 알고 돈을 지불해 주시오.” 그러자 은행원은 박사님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런 수표까지 거지에게 주시다니요은행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장 박사가 거지에게 준 수표 한 장, 그 수표가 얼마짜리인지는 수표를 준 장 박사와 그것을 받은 거지 노인, 돈을 지불한 은행원, 그리고 하나님만이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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