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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노을

by 자한형 2023.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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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 관하여 그렇게 썩 좋은 추억이나 기억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성경에서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게 한 빌미를 만들었던 실마리 제공자가 바로 뱀이었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지금의 형태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그 뱀이 유혹했던 달콤한 속삭임의 핵심은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는 것이었고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 초점이었다. 남자는 하나를 먹었고 여자는 둘을 먹었다는 우스개도 나온다. 그래서 남자의 목젖이 생겨났고 여자의 두 유방이 형성되게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인간은 원죄를 짓게 되고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악에 빠져 다시는 에덴동산으로의 회귀할 수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추악한 모습으로 더 이상의 유혹이 불가능하도록 뱀의 형태를 만들었고 흉측한 모습으로 남겨지게 된 것이다. 관능미와 사악함 등 여러 가지의 악마적 신비주의로 엮어가기도 했다. 그래서 보들레르가 나오고 미당의 화사집도 그런 아류로 해석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뱀에 대한 경험은 아주 어렸던 때 시골에서의 추억이다. 방학이면 시골로 가서 며칠씩 지내오는 것이 관례였다. 여름방학 어느 날이었다. 무서리가 내렸던지 습기가 많은 날이었는데 해그름이었다. 집 앞 대문을 나서 돌담 쪽을 도는 길목에서 징그럽기 그지없는 뱀이 한 마리 논둑 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장날이었는지 날이 어둑해지도록 어른들은 돌아오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혼비백산한 상태로 유심히 관찰을 하다가 잽싸게 집안으로 들어가 지겟작대기를 가지고 나와 있는 힘껏 뱀을 향해 내리쳤다. 뱀은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사지를 발버둥거렸다. 무서워진 아이는 곧장 있는 힘을 다해 뱀을 짓이기기 시작해서는 뱀을 꼼짝 못하게 하고 죽게 만들어 버렸다. 머릿속에 들어 있던 부분이 아마도 사악함의 상징이었고 사탄의 원조쯤으로 치부했던 듯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하필이면 그날이 집의 대들보만큼이나 중요했던 소의 해산날이었던 것이었다. 그의 난산 수준이었던 듯하다. 보통의 소들은 그렇게 간단히 서 있는 채로 새끼를 낳는 것인데 그날은 달랐다. 그 진통도 심했고 정상적인 출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리저리 외양간을 빙글빙글 돌았고 몸살을 앓았다. 한 시간여 이상의 실랑이를 한 끝에 겨우 송아지를 낳았다. 그것이 뱀의 탓이었는지 아니면 낯선 이방인의 출현에 따른 금기의 건드림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소는 잠잠해졌고 안정을 되찾는 듯이 보였다, 송아지의 구석구석을 핥고 쓰다듬었다.

그런데 그렇게 실랑이를 했던 백모가 갑자기 마루로 올라가던 차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요즘으로 친다면 아마도 뇌졸중이었으리라. 곧바로 병원으로 옮기고 처치를 했다면 여러 가지 상황의 변화가 있었을 터였지만 첩첩산중의 시골이었다. 민간요법이 우선이었다. 뽕나무 잎은 몸 아래 쪽에 깔아야 한다는 둥 오리의 피를 받아 먹여야 한다는 둥 야단법석이었다. 결국 병원의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완전한 정상으로의 회복에는 미치

질 못했고 겨우 기동을 할 정도였다. 그맘때쯤 호강을 누려야 할 백모였는데 몸에 탈이 나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의 치료결과에 따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한계였나 보다. 뱀의 사악한 기운이 그곳까지 뻗쳤기 때문인지 그 어떤 원인으로 인한 것이든지 간에 결과는 우리 가족에게 큰 아픔을 안겨주게 된 것이란 사실이다.

다음으로는 상사로 모신 이의 뱀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허리가 아파 이 병원 저 병원을 숱하게 다녔으나 좀처럼 낳질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뱀술을 찾게 되었고 그것을 구해다 한 달을 복용했다. 희한하게 그는 거뜬해졌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물론 약효의 효험부분은 확인하지 못했다. 아직도 건강하게 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신문보도에 의하면 뱀술을 담가 두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것을 꺼내 먹는 과정에서 뱀이 살아 있어 큰 해를 입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밀봉해야 하는데 공기가 통해 있어 뱀이 살 수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이 곧 해악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한참 정력제로 뱀에 관한 여러 가지가 인기리에 유통되던 시절이 있었다. 어찌 보면 혐오식품으로 여겨짐이 마땅한 데 세상 사람들은 참 유별나다. 예전에 회자한 얘기 중에 백사에 얽힌 얘기가 있었다. 천하의 난봉꾼으로 이름을 날리던 호색한이 백사를 먹었는데 후에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온몸에 개기름기가 흘렀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전해온다. 아무튼, 뱀과 같은 사악함을 가진 동물은 결코 인간에게는 이롭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그러한 것이 있고 그것은 곳곳에서 인간을 괴롭히고 있고 유혹하고 있고 마음과 정신을 어지럽히고 있다. 악마를 숭상하는 사이비 종교에서는 그들을 호의적으로 받들고 숭상하고 괴팍하게 몰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보통의 상식으로 그것에 동화되고 빠져 버리게 되는 것은 상당히 비정상적이라 생각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모두가 선하고 착하고 진실하고 거짓됨이 없는 사람들과의 인연만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워할 수밖에 없고 남에게 해악만 가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악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사가 아닐까 한다. 그러면 그런 악연과의 결별이나 관계는 어떻게 유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까. 예수도 그런 악마로부터의 시험이나 유혹을 견뎌내었고 부처도 그런 불같은 유혹을 초연하게 극복해 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그것이 옳은 건지 선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 그것이 나쁜 짓인 줄을 알면서도 그것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되는 것이다. 쾌락에의 몰입이나 무절제한 타락에로의 추락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눈 앞의 달콤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군상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폐인이 되기도 하고 중독자가 되어 파멸의 구렁텅이 속에서 헤매는 그런 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는 마음을 바로 써야 할 것이다. 사람으로 도리를 다하는 부분에 한 치의 어긋남이 있어서도 안 되고 악마의 유혹에 자신의 양심을 팔아버리는 과오도 결코 범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말도 못하게 된 뱀의 꼬락서니를 보면서 인간적인 삶의 정도에 대한 뼈저린 교훈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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