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술이란 알코올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료의 총칭을 말한다. 주세법(酒稅法)에 의하면 알코올 1도 이상의 음료를 말한다. 예로부터 알려진 과실주나 곡물주를 비롯해 근대의 화학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주정음료는 모두 술이다. 술은 일부 민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민족이 지니고 있으며 그 용도도 다양하여 굿이나 관혼상제와 같은 의례적 행사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여러 경우에 두루 쓰이고 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술과의 인연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 술을 배울 때에는 과음도 하고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 된 적이 다반사였지만 차츰 적응이 되고 익숙해지다 보면 제대로의 운신을 할 수 있게 된다. 기억도 없는 가운데 용케도 집은 잘 찾아오게 되는 것이 그런 경우이리라.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 지났던 때였다. 어느 술자리에 갔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자 술 마시는 시범이 있겠다며 한 후배가 나섰다. 모여 있던 자리의 중간에 나서더니 소주를 한 손으로 잡고는 목젖을 뒤로 젖히고 나서 소주 한 병을 그대로 마셔버리는 것이었다. 참 기이한 광경이었다. 젊은 호기가 가상키도 하고 젊은 객기가 우려스럽기도 했다. 옛 속담에 ‘술에는 장사 없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술을 잘 먹는 사람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하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술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리라. 예전에 모셨던 한 상사는 정말 보통 이상의 술 실력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통사람 간의 한 배 반이 된다고 하니 그 술 실력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일화 한 토막을 들었다. 지방에서 기관장을 할 때의 얘기이니 참 오래전 얘기이다. 지방지검장이 젊은 검사 둘을 데리고 나왔던 술자리에서의 벌어진 일이었다. 몇 순배의 술이 돌고 나자 젊은 검사 둘이 모두 혀가 꼬부라지고 해롱거리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지검장 입장에서는 제법 술 깨나 한다는 젊은 친구 둘을 데리고 왔는데 먼저 곯아 떨어져버리니 대처방법이없었나 보다. 그래서 지검장이 굴욕을 당하자 벌떡 일어나 “아이고 형님 몰라 뵈었습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꼬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형제가 만나면 밤새도록 술을 마신다고 하니 굉장한 주당이 아닐 수 없다. 이 사람의 원류는 전주이씨 효녕대군 후손이라고 하니 타고난 체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술을 마시면 꼭 2, 3차를 해야하고 꼭 집앞에 세 곳이나 호프를 들러 오백씩 마시고서야 귀가를 한다고 하니 경천동지할 노릇이다. 더러 술은 잘 마시고 초연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과음에도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언제든 술을 마시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신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낮술에 취하면 에미 애비도 몰라본다는 속담도 있다. 낮술에 취하면 그만큼 사리 분별력이 떨어지게 된다. 어떤 이는 조직문화가 술을 매개로 하고 술을 통해야 인간 관계가 된다고 여기는 풍토이다 보니 곤욕스러운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얼마 전에는 지방에서 폭탄주 몇 잔을 먹고는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해 사망까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술을 잘 못마시는 탓이기도 했겠지만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것에 문제가 야기된 것이리라. 어떤 경우에는 하도 상사가 술을 권하고 지치게 되자 명퇴까지 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떤 괴짜 친구의 경우에는 주는 술잔을 거꾸로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세상은 요지경 속임을 느끼게 된다. 한 친구도 술을 과음해 주체 못하고 게워내는 중에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불귀의 객이 되고 만적도 있었다. 자식들도 어렸는데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이제는 흥청망청 마시질 않고 어느 정도 조절하고 절제하면서 술을 즐기고 음미할 정도가 되었지만 한 번씩은 필름이 끊기고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 되기도 한다. 술은 한번 빠져들면 끊임없이 나락 속에 빠져버리듯이 홀리게 되는 것이다. 술자리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한참을 해야 할 듯하나 몇 가지만 회고해보고자 한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야간통금이 있었을 때이니 82년 이전인 것으로 기억된다. 술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집은 멀고 야간통행금지의 사이렌이 곧 울려 퍼질 듯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남의 집으로 뛰쳐 들어간 기억이 있다. 혼비백산한 집주인은 곧장 경찰을 불렀고 졸지에 경찰서행이 된 것이다. 부모님께서 불려 오고 각서를 쓰고 훈방 조처된 적이 있었
다. 한번 야간통행에 걸려 파출소 신세를 진 경험이 뇌리에 남아있어 무의식중에 그런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쥐구멍으로라도 숨어버리고 싶을만큼 창피한 노릇이지만 젊은 날의 한 추억거리로 남아 있다.
다음으로는 군 시절 이야기인데 그때는 젊음과 호기 하나로 버티던 시절이었다, 공수 중의 공수라는 특수공수부대 출신의 부사관이 한 명 있었다. 이 친구는 180정도의 키에 90킬로그램 정도의 체격이었다. 한번은 큰 양재기에 소주를 가득 부어 자기가 먼저 마시고는 소대장한테 마셔보라고 주었다. 몇 순배가 돌자 질 수 없다는 알량한 자존심에 원 샷을 하고 말았
다. 다음날은 휴가 가는 날이었는데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횡설수설 휴가 신고를 하고 부대를 나온 적이 있었다. 참 부끄러운 기억이고 추억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번은 쉬는 날 춘천을 나가서는 밤새도록 술을 마신 적도 있었다. 술에 멕소롱을 탄 탓에 술의 도수가 그리 높지 않았지만말이다.그렇게 돌아온 그냥 곯아떨어져 잤는데 같이 갔던 소대장은 그 상태로 부대원과 어울려 축구를 하다 병원으로 후송을 당하기도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객기에 만용을 부리다 일어난 일이었다.
술이란 게 많이 마신다고 자랑할 것은 못된다. 또한 잘 마신다고 광고할 것도 아니다. 이성을 잃지 않을 만큼만 마셔야 하고 절제할 수 있는 자기관리가 필요한 것이 술이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조절할 수 있고 건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몸을 주체치 못해 다치거나 술주정을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 꼭 시비가 붙고 싸움판이 벌어지고 해프닝이 일어나야 제대로 된 술자리로 인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술좌석에서의 불문율중의 하나가 있다. 약간의 실수에 대해서는 대개 관용적이고 넓은 아량을 보이는 것이 우리의 관습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술독에 빠져 죽었다고도 하고 술잔에 비친 달을 건지려 했다고도 하는 숱한 일화 속에서 옛 선인들의 애환을 읽을 수 있다.
요즘은 하도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고 약삭빨라진 처세 때문에 술자리도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술을 한 잔 하기도도 쉽지 않다. 아 옛날이여~ 하며 노래하듯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아들하고도 한 번씩 술자리를 하다 보면 술을 마시는 것인지 술을 찔끔거리는 것인지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술의 신 바쿠스가 보면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리라. 술
은 주량에 맞춰 마셔야 하고 강권하는 것이 예의가 아님을 알면서도 서로의 친숙함을 위해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습관인 듯하다.술을 받아들고 뒤돌아 마시며 눈치를 보았던 젊은 시절의 주도(酒道)를 배우던 때가 까맣게 그립기만 한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