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오랜만에 펜을 들어본다. 올 한해는 만사가 순조롭지를 못하다. 일단은 진통기로 알고 의지를 가지고 헤쳐 나가려 한다. 매월 적자를 감당해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苦)란 것에 적극적이고자 했고 그것을 초극(超克)하고 극복하는 가운데 생에 대한 참뜻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생을 영위해 왔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맞닥뜨려보니 도피하고자 하고 제위치에서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면모는커녕 외려 가라앉아 버리고 소신도 주관도 모두 팽개쳐버린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떠나보내고 있다. 술에 취한상태에서 며칠을 보내고 상사의 뼈아픈 질타에 여러 날을 보내면서 정신없이 중심도 제대로찾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문제에 대한 원인을 간파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말 힘들다. 못하겠다. 어떻게 이런 델 오게 되었을까. 숨이 막힌다. 질식할 듯하다. 압박감에 주체를 못하겠다. 모두가 미워지고 세상이 추해 보이고 자신이 초라해진다. 이런 궁지에 몰리기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몸부림쳤고 오르고자 했던가. 원대한 꿈과 의욕을 가지고 멋들어지고 깔끔한 일 처리로 신뢰받을수 있도록 하여 승승장구하리라 자신했었고 얼마나 동경했던 자리였으며 갈구했던 바였던가. 본부에 간다면 온 힘을 기울이고 열과 성의를 쏟아 부어 청춘을 불사르리라 다짐했던가. 겨우 본부로 올라온 지 4개월 만에 벌써 지쳐버렸고 의지가 상실되어 버렸단 말인가. 정말 잘하리라 다짐했고‘만인은 일인을 위하고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그렇게 노력하리라 했는데 이미 탈진해버렸고 모든 힘이 소진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왜 이다지도 나약해져 버렸는가. 첫째는 건강이 문제다. 매주 마시는 폭음에 제대로 주체하지도 못하면서 몸을 해치면서까지 그 자리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 가고 약을 지어 먹으면서 겨우 하루하루를 지탱해가고 있다. 둘째는 경제적 사정이다. 최고가에 맞춰 과도한 빚으로 집을 구하다 보니 궁핍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되어 버렸다. 그런 사정에도 부동산 경기라도 호전되어야 하는데 반대 현상이 빚어지고 있으니 난감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언젠가 ‘삶을 살면서 제대로 된 낙을 가지고 사는가.’에 대해 자문하면서 생의 의미에 대해 무척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왜 사는가. 어떤 목적에 생의 의미를 두고 있는가. 또는 어떻게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태도와 자세, 자기성찰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깊이 가졌던 적이 있다. 어떻든 그렇게 예견되었든 사정이며 조건이 아니었던가. 한 치 앞도 보지 못한 채 암울해
하며 앞으로 인생의 머나먼 항로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듯하다. 생을 세 단계로 나눈 설명이 기억난다. 받는 단계와 주고받는 단계, 주는 단계, 이렇게 세 단계다. 어떤 비전을 갖고 어떤 낙(樂), 희망, 꿈, 의욕을 갖고 살아갈 것인가.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가는 힘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은 결코 불안에 안주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불안에 빠져 있지 못하는지는 안정에의 욕구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왜 그렇게 인내하지 못하고 감내하지 못하는가는 조금만 힘들고 어렵고 벽에 부딪히면 스스로 그렇게 무너져버리게 된다. 지금 우리는 그리 순조로운 행로를 가고 있지 못하다. 앞으로 1년은 더 이런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버텨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분명한 각오와 신념을 갖고 자기 앞의 주어진 길을 헤쳐나가야 하리라. 핵심을 꿰뚫고 세상을 직시해야 하리라. 무척이나 고생스럽고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질곡 속에서 제대로 의미와 핵심을 찾아야 하리라.
그 옛날에도 그랬었다. 고1 때에 고3생은 말 그대로 하늘이었고 우상이었다. 그렇게 불량해 보였고 나쁜 학생으로만 보였지만 오랜 세월을 견뎌냈고 그 위치에 존재해 있는 데 대하여 아무 이유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부러움을 살만했다.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서면 결코 그렇게 존경을 저절로 받아야할 만한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상사의 빗발치는 질책에 한마디 항변도 못하고 묵묵부답으로 남아 있는 것에 초라해지는 자신을 느끼며 날개를 접어야 함에 언제나 애통해했던가. 상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관리자의 기본이다. 하나를 건너면 또다시 장애물이 나타나고 또 그것을 지나면 역시 마찬가지로 벽이 앞을 가로막는 게 인생길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인생에 얼마나 큰 절망을 맛보았던가. 그들이 위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험로(險路)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데 있지 않았을까. 범인 이상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 나갈 수 있었던 힘은 그들의 의지와 신념, 지칠 줄 모르는 성취욕에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저주하고 세태를 한탄하고 자신을 비하하는 것에서 무위도식과 다를 바 없는 단조로움에 치를 떨면서 이 무미건조한 권태로움에 자신을 맡겨버리고 있다. 숨죽이고 식민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처럼 그렇게 우울한 나
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신념에 따라 철학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데 마음먹은대로 쉽게 움직여주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갖고 어떤 과정을 거쳐 목표에 도달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나아가야 하는데 그 또한 쉽지 않다. 집착할 수 있는 무엇인가에 적정한 투자를 해야 하고 젊음을 발산할 수 있어야 한다. 길은 이미 놓여져 있는 상태이다.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 것인가 방법론을 찾아야만 한다. 과연 어떤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인가. 일단은 경제적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 물론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쌓아가야 하고 삶의 받침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6년 동안의 직장생활 동안 이루어 놓은 것이라고는 한 단계 승진했다는 것 이외에는 어떤 경제적 기반도 조성하지 못한 채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의 적당한 차별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가져야 할 것은 동질성도 향유함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을 되돌아보고 정비할 일기를 써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져본다. 여유롭다는 본부를와서는 갈팡질팡하는 마음으로 며칠째 쓰지 못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안락한 상태에서 고통없이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아니리라. 모두가 어려운 길을 가고 있으며 힘들어하고 고생스러워한다. 누가 얼마만큼 인내하며 반전시키고 달갑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에서 앞으로의 향배가 결정지어지는 것이다. 내 마음을 담아내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만큼의 위안을 줄 수 있고 소소한 성취감을 이끌어낸다면 필요성은 충분하리라. 대학생활 동안 과연 무엇을 공부했는가. 졸업 후 10년간 내게 남은 건
무엇일까. 앞으로 자랑스러운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어느 날 문득 이런 상념에 휩싸였다. 생은 결코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호박처럼 그렇게 행운으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갖고 그것에 얼마만큼 충실하게 노력하고 성의를 다했는가에 의해 성과가 나타나고 결과로 표출될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이 어려웠던 때를 되돌아 보면 한낱 헛 웃음을 웃으며 지난날의 한 희미한 추억으로 회상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며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필요가 있으리라. 먼 훗날을 기약하며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면 웃음 짓는 행복한 날도 시나브로 만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