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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낯설음 저너머

남자의 의미

by 자한형 202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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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의미

 

 

약속이행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의미를 부여해보고 이 개념을 나름 정리해보고자 한다. 남자란 무엇인가 그것에 관련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으리라. 인간전체를 대표하는 의미가 아니라 개체로서의 행태를 서술해 보고자 한다. 어떤 때는 그런 사념을 품은 적도 있었다. 손가락 중 검지가 잘렸으면 또는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텐데 하고 말이다. 그리스의 모 철학자는 여자와 노예로 태어나지 않고 희랍인으로 태어나게 해준 신께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실체적인 실상을 파헤쳐보기보다는 일상적인 얘기로 풀어보려고 한다. 개념의 정립을 위해 다른 여러 유사개념과의 관계도 우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한 남성이 있다. 그것과 대비되는 것으로 여성이 있는데 흔히 얘기하듯 핵심은 성적인 것이리라. 대비되는 상대적인 의미보다는 그 자체로만 얘기해 보자. 남성은 아주 성숙된 것이고 자체로서의 주체성을 가짐과 동시에 결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남성은 야성적이어야 하고 강건해야하며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남자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국어사전을 뒤져보지 않고도 철학 상의 그런 어감으로만 따진다면 부분집합적인 범주 속에 포함되는 유개념일 듯하다. 남자가 갖는 의미의 깊음 속에는 노동이 관계되어 있으며 역사의 주체로 의미가 부여되어왔다. 남자의 자존심은 어디 있는가. 인간으로서의 존재의의를 찾고 근거를 갖는 것에 있다.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상관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라고 한다. 여자는 알아주는 상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삶의 의의를 찾아 살아가리라. 예전 독일의 철학자는 여자는 현실에 살고 남자는 이상에 산다고 했다. 현실적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만 세상살이가 편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여자들이 확실히 강점이 있고 정확하게 인식해내고 적용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혼이란 것을 하고 보면 항상 부딪치게 되는 문제가 남자와 여자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매사에 빚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사는 가운데서도 그 갈등과 차이 내지 간극은 결코 쉽게 좁혀지지 않고 융합되어지지 않는 측면이 있다.

 

예전에 가졌던 자기언어 가운데 단독자란 것이 있었고 잔인하다는 것이 있었고 자유라는 것이 있었다. 모든 속박과 굴레로부터의 이탈이었다. 대학수업을 빠질 수도 있었고 마음대로 여행할 수도 있었으며 술도 마실 수 있었다. 끽연도 허용되었다. 아주 미미하고 제한적이었긴 했지만 말이다. 아주 색다르고 이상한 얘기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도 겪었다. 양복을 새로 맞춰 입고 황홀하고 기쁜 마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다가 쩨쩨한 양복을 입은 거지를 만난 순간 그 가슴 벅찼던 감동은 일순 물거품으로 변하고 자기비하로 빠져버리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어른이라는 것, 또는 성인이 되었다는 충족감이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매듭지어지는 걸 배웠던 것이다. 다시 일정한 규칙의 속박 속에 얽매이게 되었으며 책임을 배웠고 인내를 알게 되었다. 신뢰가 갖는 그 뜨거운 열정도 느꼈으며 또한 배신이 갖는 인간의 추악한 일면도 보았다. 결국은 풀어지지 않는 수수께끼로만 남아있는 근원에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는 수모를 견딜 수 없었으며 그것은 무한한 자존심에의 상처를 수반했으며 인간의 존재의미를 무력화시켰다고 했다. 일본의 중세인 막부시대 일본 무사에 있어서 자존심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었다. 그 속에는 주군에 대한 충성도가 연결고리가 되었다. 상관과의 관계가 있고 친구와의 연관이 있었다. 푸르른 청년시절에는 친구가 전부일 수 있다고 느꼈던 적도 있었다. 우정만큼 소중한 가치도 없으리라고 여겼다. 밤이 늦도록 얘기꽃을 피우며 세계와 인간에 대한 토론에 열을 올렸다. 그 후에는 홀로서기를 배워야했다. 그 어떤 상관도, 그 어떤 절친한 전우도 자기가 진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줄 수는 없었다. 결코 변화되지 않은 채 젊은 날의 기개와 야망을 그대로 지닌 채 다시 새롭게 인생 길목에 접어들리라 맹세에 또 맹세하고 다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독한 환경의 변화에 따른 굴곡에서 엄청난 전환을 겪은 후에야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초지를 잃지 않으려 했지만 상당히 변모되고 탈색된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무모하리만큼 애절했던 동경과 향수를 안고 파라다이스 같았던 곳에의 회귀는 결코 꿀처럼 달콤하진 않았다. 당장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생존에 매달려야 했다. 나 혼자만은 그런 일상적이고 평범함에 매몰되어 버리지 않으려 발버둥 쳐보았지만 많은 방황과 갈등만이 내포한 채 일상에 젖어들고 말았다. 본래 품었던 야망을 잃고 초지를 잃었을 때 생은 허물어지고 무력해진다. 입신양명을 위한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나온 보람을 찾고 그래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자이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하고자 했는데 그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되어주진 않았다. 남자는 꿈을 먹는 동물인가. 야망이 없고 비전이 없는 남자란 무가치한 것일까. 권력을 쫒고 명예에 연연해하며 권력과 부와 명예를 한 몸에 안은 덕망 있는 이가 되어야 하는가. 사람으로서 그 총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가. 그 모든 것은 다 이루면 과연 어떤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별로 볼품없는 한 일상적인 것에 알량한 기득권에 물려 일탈하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비쳐져 있을 뿐인데 어떤 도약과 창조적 에너지의 불출을 기대할 수 있는가. 권력과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렇게 매혹적이고 마력적 요소를 갖고 있는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처럼 그렇게 무소유의 달관된 자세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인가. 자식과 내자에 충실하면서 욕심 부리지 않고 그저 그렇게 자족해하며 살아 갈 수는 없는가. 알렉산더나 나폴레옹처럼 그런 대단한 역사적 위업을 성취해야만 하는가. 야한 여자가 좋다는 말로 유명해진 한 교수처럼 그렇게 악한 명성이나 얻고 살아 갈 텐가. 삶에는 목적을 위한 것과 창조를 위한 것 또는 성스러움을 위한 것 등이 있다. 끊임없는 의혹과 관조 속에서 자아 발견을 해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이 찬란한 태양과 계절의 조화 속에 생을 찬양하며 구가해 가는 것도 있다. 또한 오로지 인류를 위하여 자기 한 몸 돌보지 않고 역경에 처한 모든 이를 위한 거룩한 삶의 모습도 있긴 하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어떤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인생관의 문제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범부로서 살아가는 것에 고고한 이상이나 목적 또는 목표가 필요할 것인가. 그냥 그대로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식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라고 반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삶을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분류하지 않고 그 행태를 나눈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란 어떤 면에선 현현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특히 남자는 지향하는 바를 향하여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속에서 자기 본질을 구하려는 실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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