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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낯설음 저너머

불운한 무농꾼

by 자한형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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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무농꾼

무는 3대채소의 하나다. 배추와 고추 그리고 무가 3대채소에 속한다. 무는 일상적으로 없어서는 않될만큼 요긴한 채소로 우리식탁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겨울무는 인삼보다 낫다는 속담도 있다. 한창 잘나가던 때에 무를 재배해서 상당한 재미를 보았던 P씨는 아릿다운 여자도 새로 얻고 삶의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장성한 아들과 젊은 각시의 갈등으로 조금은 불안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인 무농사를 해보기로 했다. 자신의 밭에 임대한 것까지 확대해서 재배면적을 대폭 확대를 한 것이었다. 그 규모는 40만평이었다. 파종에서 생육까지 일기는 순조로웠고 예상한 대로라면 수확기에 짭짤한 재미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했다. 수확철이 되었다. 대풍이었는지 전체적으로 무가격은 약세를 면치못했다. 그런데 또 설상가상으로 무를 많이 먹는 것이 암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학술발표가 신문지상으로 보도가 되었다. 무는 수확기에 때를 맞추어 수확하지 않으면 즉 방치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무가 웃자라게 되고 속이 꽉찾던 무가 바람이 들게 되고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되어 영 상품가치가 급락하게 된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들판가득한 무를 보고 있던 P시는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상인들은 엄청나게 가격을 후려치고 있었고 예년 수준의 절만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다보니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그렇게해서 무농사로 인한 피해는 막심했다. P씨는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래서 찾게된 곳이 처음에는 종묘회사였다. 그것도 농협 종묘회사였다. 종자값만 8천만원이라고 하니 그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만했다. 웃자라고 못쓰게 된 무가 종자의 결함때문이라는 억지주장을 폈다. 관계자가 찾아와 면담을 할 때마다 낫을 들고 죽인다는 협박을 일삼고 육두문자를 날리며 범접도 못하게 했다. 번번히 그렇게 내쫓겨나다 보니 변변한 협상도 해볼 도리가 없었다. 종자값중 일부는 최종적으로 탕감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간곳은 관계부처였다. 여러 가지 사정을 설명하고 피해를 입게되었으니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었고 어떻게 농정을 폈길래 이렇게 농민을 피해보게 하느냐는 넋두리를 늘어 놓았다. 저리자금이든 지원자금이든 자금지원을 요청하고 얼마간 자금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해당 면사무소에 수차례에 걸쳐 민원을 제기하였다. 무에 대한 수요예측을 하고 적정재배가 이루어지도록 지도를 해야함에도 최소의 생산비 보장까지도 못받으니 농정정책을 잘못한 것에 대하여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 성토를 했다. 다음으로 각종 농자재를 판매하였고 수확후 무를 판매했던 농협에 대해서도 제대로 판매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항의를 하였다. 이리저리 복잡하에 얽키게 된 사안은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종자대에 각종 영농비 그리고 인건비까지 많은 부채를 떠안게 된 P씨로서는 온갖 곳에 하소연을 해보았지만 제대로의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곳은 없었다. 그 애궂은 학술발표를 한 교수에게도 가서 이의를 제기하고 그 근거를 밝히라고 삿대질을 해가며 항의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돌이킬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하도 민원에 시달렸던 그 교수는 결국 휴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차에 면사무소에 근무하던 직원의 자살사건이 일어났다. 여러 가지 복잡한 원인에 의한 죽음이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것이 일요인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의 유서와 일기장에서 그 P씨의 민원에 의해 곤욕을 치루었고 괴로워 했다는 것이 노정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P씨는 구속수감되게 되었고 재판을 거쳐 실형이 확정되어 2년정도의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옥살이를 하고 나오니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어 있었고 살아갈 희망이 막막하기만 하였다. 술로 울분을 달랬고 그로 인해 건강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게되고 급기야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순박하고 정직했으며 열심히 세상을 살아보고자 했던 이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의 총체적인 연쇄작용에 의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만 결과를 빚고 말았다. 적정한 재배를 유도해야하는 정책당국이나 기타 관계기관의 농정실패도 그 원인제공에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결국 그 피해와 손실의 감수자는 무모하게 많은 재배를 시도했던 농업인이 그것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다는 부분이 작금의현실이라는 것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한번의 농업의 실패가 한 농업인을 극한까지 몰고간 사례를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고 느끼게 하는 듯하다. 향후에는 결코 두 번다시 이런일이 재발되지 않아야 하는 데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한다. 농업인의 시름이 깊어지지 않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고 반석위의 농업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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