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요즘 추어탕은 남녀노소가 사시사철 즐기는 음식이 됐다. 하지만 추어탕은 역시 미꾸라지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가을이 제철이라 할 수 있다. 추어탕 맛은 어디서나 비슷한 듯하지만 사실은 고장마다, 음식을 만드는 손길마다 다른 맛을 낸다. 추어탕에 들어가는 재료와 미꾸라지를 손질하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상도식, 전라도식 등으로 부르며 맛을 구분한다. 추어탕을 만드는 것에서 필수적으로 따르는 것이 해감의 제거이다. 산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덮어두면 미꾸라지끼리 부딪혀서 거죽의 미끄러운 해감이 제거된다. 이때 호박잎으로 싹싹 문지르면 까칠한 뒷면 때문에 해감이 깨끗이 잘 제거된다. 추어탕은 지방마다 끓여 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짜 맞춘 듯 같은 게 있긴 하다. 추어탕의 원료인 미꾸라지는 가을이라야 제 맛이 난다고 여겼다는 사실이다. 하기야 하찮은 생선 하나에도 계절의 의미를 부여해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고 하지 않는가. 가을전어는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고 했다. ‘여름 민어는 송아지하고도 안 바꾼다.’고도 했다. 이처럼 음식마다 절기의 특성을 부여했던 조상들의 식도락에 대한 체험적 지혜가 미꾸라지라고 빼놓았을 리가 없다. 추어탕은 보양식이다. 기를 보해주는 듯하고 힘을 넘쳐나게 한다. 예전 근무했던 사무소 부근에 유명한 추어탕 집이 있었다. 구 대법원 앞의 조그만 식당이었다. 들어가는 문도 협소하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그곳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예약이 않되는 것은 물론이요. 한 시간 이상을 줄서서 기다리지 않으면 그 집의 추어탕을 맛볼 수가 없다. 천정도 낮아 겨우 자리할 수 있을 지경이고 먹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걸쩍지근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엄청난 부자가 됐을 법도 하건만 계속적으로 전통의 허름한 집을 고수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고유의 추어탕을 맛볼 수 있었다. 요즘 한창 매스컴을 타고 있는 착한 음식점 시리즈를 볼 때면 착잡해질 때도 더러 있다. 제대로 된 국산 콩을 쓰는 콩국수집, 냉면집 등 우리 고유의 맛을 잃어가는 것에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세태에 살고 있는 탓이리라. 미꾸라지가 가을에 살찌는 건 당연한데, 살도 논바닥에 떨어지는 벼꽃을 받아먹고 살찌운 놈을 최고 상품으로 쳤다. 논바닥의 차진 진흙 속을 비비적거리며 힘을 키운 게 방죽에서 할랑하게 노닐던 미꾸라지보다 훨씬 실하다고 봤다. 그렇다고 보면 요새 내력도 모르고 먹는 중국산 미꾸라지 탕이 옛적에 가을걷이 후 논가는 쟁기 보습에 뚝뚝 잘려 꼼지락거리던 그 미꾸라지로 끓여 낸 탕과는 격이 다를 것이다. 그런 미꾸라지는 살이 오지게 올라 통통하고 뱃바닥이 누르스름한 게 보기에도 튼실했다. 그걸 잡아 늦가을 별미로 끓여냈는데 남녘에서는 뼈째 갈아서 위쪽 지방에서는 통째로 끓였고 전라도에서는 갖은 양념을 넣어 걸쭉하게 경상도에서는 맑은 국물이 돌도록 담백하게 끓여냈다. 추어탕을 솥에 안칠 때 솥바닥에 두부를 얹고 산 미꾸라지를 넣어 끓이면 솥이 달아오르면서 이놈들이 죄다 두부 속으로 파고드는데 그걸 푹 익혀 결대로 썰어먹는 맛도 아주 독특하다. 힘겨운 가을치레 후에 먹는 미꾸라지엔 단백질은 물론 불포화지방과 미네랄이 많아 한철 보신용으로 그만한 먹을거리도 흔치 않다. 건강도 챙기고 입맛도 살리는 선택일 듯하다. 가을이 짙어간다. 추수를 앞둔 볏논의 물꼬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한두 마리씩 모아두었다가 아들이 오면 끓여주시던 ‘엄마표 추어탕’은 세상에서 가장 별미였다.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청평리에 위치한 00추어탕은 1992년에 개업한 음식점으로 서울에서 춘천방향으로 청평댐을 우회전하면 바로 길 옆에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9시부터 12시간을 하며 휴무일은 연중무휴인 가게이다. 실내는 12개의 좌식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으며 편안하고 소박한 분위기이다. 00추어탕은 상호 특허등록이 되어 있다. 고유향토음식점으로 지정되어있다. 하루에 20마리를 다려 먹으면 양기부족에 특효가 있으며, 피부질환인 부스럼의 체질개선에도 좋다고 한다. 밑반찬들은 정갈하고 맛있다. 메뉴로는 추어탕, 메기매운탕, 올갱이무침, 미꾸라지튀김, 찜, 전 등이 준비되어 있다. 00추어탕 집에 들어가 보면 집주인이 모야 놓은 각종 전시물을 볼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다. 전쟁용품 등 각종 소품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미꾸라지를 보면 장어처럼 피부가 미끈덕거리는데, 이게 정제된 단백질로 이뤄진 천연보습제 콘드로이친이다. 겨울잠에 든 곰은 제 발바닥을 핥으며 허기를 이겨내는데 그때 곰이 취하는 게 제 발바닥에서 분비되는 콘드로이친이라니 추어탕이 결코 간단한 음식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추어탕 집으로 유명한 곳은 김포주변에 있는 00네 추어탕집이라는 곳이다. 휴일에 한번 찾아가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인당 소득 2만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다. 식도락에 한참 빠져 있는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3만불 시대가 되면 달라진다고 한다. 여행이나 문화적인 것에 더욱 심취하게 된다고 하니 식도락에 열을 올리는 것도 한 때인 듯하다. 먹는 것에 목을 매던 때는 지난 듯하고 이제는 양보다 질을 우선시 하게 되었고 그 맛을 음미하고 질적인 차이를 감지해 내는 경지에까지 이른 듯하다. 사무실 인근에 유명한 추어탕 집이 있었다. 10여 년 전에 그렇게 성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글쎄 매스컴에 한 번 두들겨 맞은 후로는 알 만한 사람들은 결코 그 집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료를 중국산을 썼던 것이다. 참 잘 되었고 맛이 고소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추어탕과 같이 요리되는 숙회도 별미였었고 추어튀김도 맛이 좋았었다. 특별한 보양식을 즐기지는 않지만 추어탕에 관해서만은 그래도 선호도가 높고 그 진한 향토색의 맛깔스러움을 즐겨왔다. 아무튼 세상 어느 곳에 가든지 추어탕을 먹어보면 그래도 그 진한 맛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가 아닐까한다. 추어탕의 인기도 하도 많이 떨어져 장어, 보양탕, 삼계탕 등과 같이 조리하는 예도 많이 늘어났지만 그래도 추어탕만을 고집하는 정통의 맛집에서 추어탕을 즐기는 별미가 낫지 않을까 싶다. 요즘 시절에 가을 산에 올라서 서리 맞은 단풍을 즐긴 뒤 추어탕으로 헛헛한 허기를 달래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