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란
이른 아침에 잠깐 TV를 보는 데 탁란이라는 것이 나왔다. 뱁새가 알을 품고 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뻐꾸기가 옆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뱁새가 뱀에게 알을 탈취 당한 후의 상황이라 매우 조심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뻐꾸기가 뱁새의 둥지에 자기 알을 산란해두고 유유히 날아간다. 분명히 육안으로도 구분이 될만큼 그 크기에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뱁새는 자기 새끼인 줄 알고 품기 시작한다. 묘한 자연의 섭리인 듯하다. 뻐꾸기의 알은 뱁새 보다 하루나 이틀 먼저 부화한다. 먼저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기위해 늦게 부화한 뱁새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뱁새새끼는 무력한 상태로 둥지에서 떨어져 나와 땅바닥에 나뒹굴게 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뱁새는 부화한 뻐꾸기 새끼를 자기새끼인 줄 알고 열심히 모이를 날라 먹이며 정성을 다해 키운다. 새끼 뻐꾸기가 자라난 후에는 뱁새보다 더 큰 덩치를 자랑하기도 한다. 어느정도 자라게 되면 뻐꾸기 새끼는 둥지를 떠나 숲 속으로 간다. 이것을 탁란이라고 한다. 두견이과 조류에 있는 습성이고 80여종이 이런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이 자신의 새끼를 키우지 않는 부분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철새인 뻐꾸기는 5월초에 와서 8월 정도에 또다시 남쪽지방으로 간다고 한다.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둥지를 만들고 알을 품고 양육할만한 시간을 갖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또다른 시각은 철새로 너무 먼거리를 이동해 왔기 때문에 새끼를 부양할 만한 힘과 능력이 고갈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태계는 유지되는 것이라고 하며 이것이 자연의 섭리의 일종이라고도 한다. 뻐꾸기처럼 뱁새 새끼를 밀어내고 독차지 하는 경우도 있고 또다른 경우에는 다른 새끼와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람에 있어서도 요즘의 세태는 젊은 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 뻐꾸기처럼 탁란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부모님께 의지하고 친정집에 위탁하기도 한다고 한다. 논 10마지기 농사지을래 아이키울래 라고 하면 모두 10마지기 농사를 짓겠다고 했단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자식농사이다. 얌체처럼 탁란을 하는 뻐꾸기를 본받으려는 젊은 세태에 어려워지고 힘들어지는 것은 나이든 세대일 것이다. 자신의 몸하나도 근사하기가 쉽지 않은 데 손자까지 맡아 키우게 되면 그처럼 곤욕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자식을 떠 맡기는 것도 복잡하지만 자식의 혼수를 해주기위해 부모의 등골이 빠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노릇이다. 어떤 언론사에서는 간단한 결혼식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 캠페인을 벌일 정도이고 보니 할 말이 더 없어 지는 듯하다. 젊은 세대의 자녀가 독립할 생각은 않고 부모의 보호와 생활에 같이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고 하니 더욱더 가관이다. 이를 일러 캥거루족이라고 한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공자에 관한 얘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한 제자가 물어 보았다고 한다. 부모의 삼년상은 이렇게 복잡하고 바쁜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삼년상이 아닌 1년상으로 치루도록 허락을 해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부모는 한 생명을 낳고 기르기 위해 최소한 3년이상을 그렇게 헌신하고 노력하고 애써왔건만 이제와서 돌아가시고 나니 1년만 치르겠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너는 꼭 그렇게 1년상만을 치르고 싶다고 하니 너는 1년상만 치르라 고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1년상도 언감생심이지만 제대로 부모의 노고와 수고로움을 깊이 생각해 보면 그 깊은 정과 사랑은 죽을 때까지 보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리라. 어떤 연유에서간에 자기의 자식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은 제대로 된 양육방식이 아닐 것이다. 자녀교육에 관하여 제대로된 태교에서 시작해서 어린시절의 교육을 본격적으로 하려고 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예전에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어린 아이를 고루한 유교집안에 맡겨서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컸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렇게 부모 손에서 자랄때에는 예의 없고 본대가 없었는 데 그것이 완전 변모된 상태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먼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문안인사올리고 집에 돌아오면 꼭 돌아왔음을 보고 올리고 출타시에도 꼭 말씀을 드린후 출타를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게 습관을 들이더라는 것이다. 요즘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법한 유교식 법도 교육이고 예절 교육이 아닐 수 없다. 옛 성현들로 자녀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이로 맹자의 어머니가 있다. 맹모삼천지교로 유명한 이이다. 첫 번째로 얘기 되는 것으로 거짓말에 관한 것이다. 옆집에서 돼지를 잡고 있었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돼지의 목따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하고 어린 맹자가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엉겹결에 그렇게 얘기를 했다. 이것은 옆집에서 돼지를 잡는 소리인데 너에게 고기를 갖다주려고 잡는 모양이다. 라고 거짓말을 둘러댄 것이었다. 그러자 맹모는 결국 그것이 화근이 되어 사정얘기를 하고 옆집에 가서 고기를 사오고 그것을 맹자에게 맛있게 요리해서 먹였다. 그리고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결코 언제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엄하게 가르쳐 주었다. 둘째 이야기는 맹모단기에 관한 것이었다. 어린 맹자가 노나라의 곡부로 공부를 하러 갔다가 중도에 돌아오게 된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짜고 있던 베틀의 베를 칼로 잘라버리면서 그 연유를 설명한다. 남자가 뜻을 품었으면 그것을 이루고 와야 한다. 제대로 교육을 받고 학문을 이루지 않으면 도둑이나 남의 심부름꾼 노릇밖에 못하게 된다. 그런데 너는 그 조금의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것은 이 어미의 업인 베를 짜는 것을 끊는 것과 똑같다. 이치를 깨닫게 된 맹자는 눈물을 흘리며 오던길을 되돌아 갔다는 것이다. 세 번째 얘기는 맹자의 처와 관련된 얘기이다. 늦게 결혼을 한 맹자가 3일만에 어머니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아내를 내쫓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왜그러느냐고 물어보자. 그렇게 얘기를 했단다. 아내가 정숙하지 못하게 옥을 풀어 헤쳐놓은 상태로 남편을 맞이하는 등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래서 며느리를 불러 놓고 물었다. 너는 어찌해서 그렇게 행동을 했느냐?. 그러자 그 맹자의 아내가 그렇게 답변을 했다고 한다. 내가 여기 시집온 것은 주인으로서 온것이고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집에서 손님처럼 그렇게 단정한 자세로 있어야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아무리 남편이라고 하더라도 방에 들어올 때에는 기척을 하고 들어와야 하는 것이지 그렇게 갑작스럽게 들어오는데 어떻게 대비하고 준비하고 방비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라고 얘기하고 정히 그렇게 못마땅하다시면 곧바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한 것이었다. 그러자 맹모는 맹자를 불러다가 사정 얘기를 하고 며느리에게 사죄를 시키더라는 것이다. 참으로 그어머니에 그 아들이 아닐 수 없는 얘기인 듯하다.참으로 옛 선현들의 지혜와 교육이 그리워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아주 최소한의 짧은 기간동안 조부모나 외조부모가 키우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나 최소한에 그쳐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자식키우고 노후생활을 영위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삶인데 그에 더불어 손자, 손녀까지 위탁하는 것은 탁란만큼이나 염치없는 짓이고 부적절한 행태일 것이다. 세태가 어떠하던간에 제대로 된 모습은 제자식은 제부모가 정성을 다해 열과 성의를 다해 정성껏 성장시키고 양육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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