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석 대도무문(大道無門)
우리 교육원을 들어오면 동남쪽 테니스코트 한쪽 귀퉁이에 표석이 하나 있다. 그것에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적혀있다. 그 밑에는 대통령 000라고 쓰여 있다.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인데 왼쪽이 높고 아래쪽이 낮은 삼각형 모습으로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 오른쪽에는 “우리나라를 구하는 사람은 바로 여러분과 같은 농촌의 지도자입니다.” 라고 음각되어져 있다. 어떻게 이런 표석이 여기 농협안성교육원에 놓여지게 되었는지를 어느 날 듣게 되었다. 예전에 원장을 하셨던 A모 원장께서 교육원을 방문하여 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저녁 식사 후 숙소에서 환담을 나누는 중에 그 때 당시의 상황을 회고해 말씀해주면서 경위를 상세하게 경청하게 되었다. 이후 내용은 그 회고담의 일부이다. 다소간의 묘사나 설명에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양해하여 주길 바라며 옮겨본다.
한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3년 7월 중순경이었다. 원장은 아주 밤늦은 시간에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비서관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 농협안성교육원 원장 모월 모일 모시에 대통령께서 그곳 안성교육원을 방문코자 하니 차질 없이 준비해 놓으시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았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서슬이 푸르렀든 시절의 권위와 위엄은 살아 있었던 듯하다. 원장은 혼비백산하여 곧바로 새벽녘에 회장에게 전화로 보고를 드렸다. 그러니 회장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방문일을 이틀 남기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곳곳에서 교육원으로 여러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경호실에서도 오고 경비수색용 셰퍼드까지 왔다고 하니 그 부산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으로 미뤄 짐작된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나고 방문일이 되었다. 원장실에 들어선 대통령이 좌정을 했다. 그 오른쪽으로 원장, 회장, 농림부장관이 앉고 오른쪽으로 비서실장, 농림비서관 등이 앉았다. 대통령이 보고를 받으신 후 말씀을 하셨다. “ 회장 여기 교육원에 근무하는 원장 이하 모든 교육원 교직원이 다 회장부하직원이야 ” 그러자 회장이 답변했다. “예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또 말씀하셨다. “ 그래 그러면 회장은 참 행복한 사람이구먼.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처자식 다 버리고 불철주야 농업 농촌지도자 양성을 위해 수고하고 동고동락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오.” 그제야 그 의미를 새겨들은 회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교육원식당으로 직접 가신 대통령은 손수 식판을 들고 교육생들과 교직원들과 함께 배식을 받아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식사하시기 전 일장연설을 하셨는데 그 시간이 본래 예정시간이었던 7분을 초과하여 30분 이상을 하는 바람에 비서관 등의 애를 태웠다는 후문이었다. 바깥 운동장에는 헬기가 프로펠러 날개를 돌리며 대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후에 전해진 경위에 대해서는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본래의 일정상으로는 고속도로 개통식이 예정된 본행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후에 둘러볼 곳을 찾던 중 농협교육원이 낙점이 된 것이었다. 그것에는 비서실장의 건의가 주효했다고 했다. “안성에 농협교육원이라는 곳이 한곳 있는데 이곳에서는 전 교수요원이 불철주야로 농업인 지도자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수고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이번 기회에 이곳을 방문하셔서 그들을 격려하고 치하해주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농업인들과 주야로 동고동락하면서 그들의 영농기술향상과 소득증대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농협 교육원에 대통령이 다녀가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대통령은 바람처럼 순식간에 다녀가셨지만 이제는 그것이 일회성이 아니라 제대로 된 표식이 있어야 했다. 나무를 한그루 심어 기념식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던 중에 아이디어로 나온 것이 표석이었다. 대통령의 친필 휘호 호를 받아 표석으로 남기자는 것이 결론으로 도출되었다. 원장이 직접 서울 청와대를 서너 차례 방문한 덕에 그 휘호를 받아올 수 있었다. 그런 연후에 돌을 구하고 음각을 해서 표석으로 남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교육원이 개원한지 10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고 대통령이 그렇게 현장을 격려 방문한 것도 유례가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그런 족적이 남겨지게된 표석의 건립일은 거의 3개월여가 지난 후인 10월24일에야 세워지게 되었다. 그것은 표석의 뒤쪽에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진정한 농업인 교육과 농협지도자 교육원의 무궁한 영광과 ooo대통령의 방문을 기념하는 뜻에서 이 비를 세우다. 1993.10.24. 농협중앙회 회장 ooo " 교육원은 이제 30주년을 1년남기고 있게 되었다. 농업,농촌,농협의 최고인재양성을 목표로 경쟁력을 갖춘 전문인력의 육성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처음에 그 표식은 교육원을 들어와서 처음 마주치게 되는 국기게양대 옆의 양지바른 곳에 위엄 있게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2010년 교육원이 개축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게 된 것이었다. 이제는 빛이 바래지고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풍상을 겪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의 농업에 대한 열정과 호의는 아직까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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