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를 보내며
새벽4시에 출발한다던 계획은 30분가량이 지체되었다. 집사람은 밤을 꼬박 새운 상황이었다. 짐을 싣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챙겨 넣다 보니 한정이 없을 지경이었다. 온가족이 이렇게 중추절에 고향으로 내려가 보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녀석이 군복무를 했고 재작년에는 작은 녀석이 입시를 치렀다. 이런 저런 일로 해서 온가족이 함께 가는 것은 몇 년 만인지 모를 정도였다. 두 녀석은 뒷자리에 앞좌석에는 집사람이 앉았다. 조금 지나자마자 다 곯아떨어졌다. 당초계획은 88로 해서 중부로 갈 계획이었는데 88을 달리다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경부로 가볼 요량이었다. 초입은 그런대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 조금 지나고 보니 막히고 있었다.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일이 추석이고 보니 당연히 정체가 될 것인데 그것을 간과하고 그렇게 길을 가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예상 밖으로 차는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한참을 가도 계속된 정체는 쉽게 풀릴 줄을 몰랐다. 신갈IC에서 영동으로 접어들었다. 영동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계속 정체구간을 가야할 도리밖에 없었다. 호법에서 중부로 빠지자 아침이 밝아져오고 있었다. 3시간 정도를 달렸는데도 겨우 일죽 정도였다. 그곳은 잘 막히는 곳도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정체가 극심했다. 도저히 그 정체를 견딜 길이 없었던 차에 네비게이션이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증평IC에서 빠져 국도를 타는 것이었다. 국도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미원쪽으로 해서 보은 IC로 들어가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국도를 한 시간여를 달린 셈이었다. 고개도 하나 넘었다. 어쨌든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다.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의 중간쯤으로 여겨졌다. 끝자락쯤에 오자 정체가 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원활한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또다시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좌석에 타고 있는 이들은 모두 한밤중이었다. 대구쪽으로 가느냐 아니면 계속 직진해서 김천쪽으로 해서 마산을 경유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계속 직진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선산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아침은 미리 준비해가지고 온 김밥으로 해결을 했다. 집사람은 포도로 요기를 했다. 부산에의 도착은 12시 경이었다. 8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모친이 차려준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취침상태로 들어갔다. 두어 시간을 자고나니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큰녀석을 데리고 남천시장을 갔다. 회를 포장해가지고 왔다. 광어, 도미, 농어. 아나고로 회를 장만했고 멍게까지 끼워 넣어 샀다. 야채도 좀 샀다. 슈퍼에 들러 선물세트와 과일을 사가지고 귀가했다. 첫손님은 외사촌 조카내외가 왔다. 올3월에 결혼했으니 신혼이었다. 한창 신나있는 모습으로 싱글벙글거렸다. 바닷가 태생이라 회를 먹을 줄 아는 듯했다. 맛있게 먹고 가자 다음 손님은 큰이모네 식구들이었다. 장성한 아들들과 형님 두 분이 온 것이었다. 막내형님의 자녀얘기를 해 주었다. 아들은 신사동쪽에서 청바지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고 딸아이는 병원에서 방사선 촬영일을 하고 있단다. 가족들의 서울 상경을 종용해오고 있다고 했다. 형제들과 가족이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만나 정담을 나누었다. 제사를 모시러 가느냐 성묘를 바로 가느냐를 가지고 얘기를 하다 결국은 성묘를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다음날 새벽5시에 동도 터기 전에 짐을 챙겨서 출발했다. 고향에 도착하니 날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산 속의 풀들을 헤치고 길을 찾아보려 했으나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결국 조부의 묘소에의 성묘는 포기하고 백부묘소에만 제상을 차려놓고 성묘를 했다. 조부에 대해서는 망배를 했다. 반대편 산기슭에 있는 조모의 묘소를 찾는데 길 앞에 송아지만한 고라니가 뛰어가고 있었다. 길조로 여겨졌다. 그런데 묘소를 잘 찾지 못하다가 한참만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는데 성묘를 하고 작은 아들의 입영을 알렸다. 굽이 잘 살피셔서 무사히 군복무를 하고 나오게 해달라고 원을 빌었다. 그리고 산소 앞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성묘를 마치고 내려왔다. 읍내 터미널에서 작은 녀석을 버스편에 태워 보내고 처가로 향했다. 피곤한 상황이어서 집사람보고 운전을 맡겼더니 길을 헤매고 있었다. 겨우 길을 찾아 남해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목적지 50킬로미터를 남겨두고 교대를 했다. 처가에 도착하니 식사 중이었다. 인사를 올리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잠시 환담을 했다. 그 후 성묘출발을 했다. 아들과 집사람만 갔고 처남네 식구와 장모님이 참가했다.
저녁에는 산낙지와 전어회를 사가지고 왔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환담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올라가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연휴기간이 길고 샌드위치데이도 중간에 있어 귀경은 어렵지 않으리라 여겼지만 아니었다. 예상이 빗나가 여전히 길은 막혔고 쉽지 않은 귀경길이 되었다. 여차하면 안성에서 좀 쉬었다가려고 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했다. 천안논산간 민자 고속도로를 가고 있었는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당진 대전간으로 갈아 타버렸다. 그리고는 서해안으로 올라왔다. 서평택 부근에서 막히기도 했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2시경이었다. 1박3일간의 한가위를 빠듯하게 보낸 셈이었다. 제사를 모시지 못해 조금의 아쉬움도 있고 친척들과의 교류가 없었던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기는 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는 명절이었다. 예전처럼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피곤하고 힘든 여정이었음은 분명한 듯했다. 만나지 못한 가족이나 친지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위로를 삼아야 할 듯하다. 한가위를 보낸다는 게 그래도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시켜주고 어르신들을 돌아가며 찾아뵙고 건재함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장시간동안의 운전으로 인해 피로를 가중시키고 비용부담도 만만치 않은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족친지들의 근황과 안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이다. 반목하고 갈등하는 가족 간의 응어리도 이런 기회를 맞아 풀어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리라. 그리고는 새롭게 정을 쌓아가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한 증표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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