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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by 자한형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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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누비아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사실 영화보다 원작 소설 제목으로 더 유명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작품은 '켄 키시'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제목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하지만 정작 이 영화나 혹은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은 듯 하다. 그리고 제목 속 '뻐꾸기'의 상징성에 대한 의미 역시 이 영화나 원작 소설의 내용을 다 읽기 전까진 알아채기 힘들다.

범죄자 '맥머피(잭 니콜슨)'

이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폭행죄 기소 5번에, 미성년자 성폭행죄까지 전적이 화려한, 걸핏하면 싸움 잘 걸고, 말썽 부리기 일쑤인 깡패에 색골이나 다름없는 그가 미국의 한 주립정신병원으로 이송되면서부터 그의 눈을 통하여 보여지는 병원의 실태와 병동에 수용된 18명의 환자들을 휘어잡고 있는 간호사 '랫체드'의 횡포에 대한 일종의 사회고발적 성격을 띈 영화이다.

자발적 감금 VS 강압적 감금!

'맥머피'의 눈에 비친, 그렇게 자신들 스스로가 모두 '미친 사람들'이라고 철썩같이 믿으며, 그들을 억압하고 있는 시스템에 아무런 반항없이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느 순간 들어와 기존의 시스템 자체를 온통 흔들어놓는, '맥머피'의 존재는 간호사 '랫체드'에겐 일종의 미꾸라지 같은 존재일 것이다.

모든 병동의 환자들 및 간호사, 심지어 박사들 사이에까지 귀머거리에 벙어리로 통하는 거구의 인디언 추장에게 다짜고짜 농구 하는 법을 가르치겠다며 'hands up'을 외친다거나 야구에 ''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월드 베이스볼 게임'을 봐야한다며 병원의 정해진 스케줄을 조정해 tv시청을 가능케해달라고 '랫체드'앞에서 다수결로 결정을 내리자는 제안을 하거나 병원용 차량을 강탈해 환자들을 모조리 태우고 나가 고기 잡는 법이나 항해하는 법 따위를 가르치는, 그것도 모자라 남자 관리자 '터클'을 매수해 여자들을 병원으로 들인다거나 술을 들여와 파티를 벌이는 등의 '그의 존재 = 곧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든 또 한 마리의 뻐꾸기'를 의미한다.

미친 정신병자를 뜻하는 속어인 뻐꾸기.

'맥머피'는 바로 이런 자발적 감금을 선택한 듯 보이는(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한 사람의 온전한 정신마저도 피폐하게 만들고, 산 송장처럼 만들어버리는) 정신병동에 수용된 환자들 사이로 날아든 위험한(어디까지나 랫체드와 병원 관리자들에게 위험한 존재로 비춰지는) 또 한 마리의 '뻐꾸기'인 셈이다.

그리고 그런 뻐꾸기들의 삶의 터전. 생존의 집합소가 바로 이 영화 속 제목인 '둥지'이다. '뻐꾸기들의 둥지 = 정신병원'!

뻐꾸기 = 맥머피, 둥지 = (이들이 수용된)정신병원, 인디언=백인사회에서 내쳐지는 사회적 약자들을 상징.

영화의 제목 속에 담긴 상징성, 그것을 이해해야지만 이 영화의 깊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한 개인의 도발은 시스템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다. 환자들의 정신적 안정과 평화를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랫체드'가 시도 때도 없이 틀어대던 나지막한 음악들과 환자들 사이에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얘기하며 치유의 시간을 가진다는 명목하에 정기적으로 토의를 하지만 결국 싸움으로 번지고야마는 무의미한 토론의 연속.

그러나 어느듯 익숙해져버린, 그래서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환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통제 시스템에 대해 반발하는 '맥머피' 1인의 도전은 늘 '랫체드'라는 막강한 권력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중대한 소란을 피운 댓가로 그에게 혹은 다른 환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10000볼트 짜리의 전기충격이 전부이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5개 작품상을 휩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개인을 무력화시키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쥐고 흔드는 권력에 대한 어쩌면 무모해보일 수도 있는 개인의 무력한 투쟁을 그리고 있는 메타포 영화의 진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영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거구에서 뿜어져나오는 폭발적인 힘으로 단 한 번도 움직일 수 없었던 욕실 안 수도 시설을 통째로 뽑아들고 그들을 옭죄고 있던 창문을 박살내고 유유히 병동을 빠져나가는 추장의 그 뒷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안타까운 장면은 거듭되는 전기 충격으로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버린, 무력해지고 급기야 병원이 바라는 바대로 진실로 한 마리의 가여운 '뻐꾸기'로 전락해버린 '맥머피'를 향해 캐나다로 탈출 계획을 함께 세웠던 인디언 추장이 베개로 그의 얼굴을 짓누르는 장면이다.

더이상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상대! 이미 산송장이나 다름 없이 변모해버린 현실 앞에서, 그를 혼자 두고 떠날 수는 없었던 '인디언'이 그를 진정한 안식의 길로 인도하고 탈출하는 장면은 너무나 가슴 아픈 장면인 동시에, 적어도 한 개인의 노력이 어떤 식으로든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여운 짙은 장면이다.

영화 초반, 모든 이들이 귀머거리에 벙어리인줄로만 알았던 '인디어'은 실상 자발적 귀머거리. 벙어리를 선택한 인물이었다. 시스템의 횡포 앞에서 귀를 막고. 입을 닫아버린 자! 어쩌면 그가 시스템에 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항거였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맥머피'와 함께 인디언'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강자들인 '백인'들이 군림하고 지배하는 사회체제 속에서 항상 약자로 머물며 희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상징하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허위와 기만에 찬 정신 병원의 실태와 그 시스템을 쥐락펴락하는 인간의 잔혹성, 그리고 그런 잔혹성에 맞서는 개인의 무력투쟁의 나약함을 근사하게 묘사한 휴먼 드라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영화 속에 보면, '맥피드'역의 '잭 니콜슨'과 간호사 '랫체드'역의 '루이스 플레처'의 연기 대결이 뜨겁다. 지금은 80이나 된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잭 니콜슨'이지만 이 영화 속 거들먹거리고, 껌 찍찍 씹어대며 '랫체드'를 약올리는 껄렁한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잭 니콜슨'이다 싶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이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씩이나 가져간 배우답게 그의 연기는 뻔뻔하고 능청스럽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한동안 가슴이 먹먹한 기분!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이라면 그 마지막 장면의 짙은 여운에서 쉽사리 헤어나기 힘들 것이다.

ps. 영화가 한 정신 병동을 배경으로 그곳에 수용된 환자들의 이야기와 실태를 고발하고 있는 영화지만 지루하지 않습니다. 아카데키 5개 부문을 휩쓴 저력의 영화이니 아직 못보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찾아보세요. 무수히 쏟아져나오는 최신 개봉작들 속에서 이런 영화들을 한 번씩 챙겨보는 맛도 솔솔하답니다.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리뷰에서 이런 좋은 아카데미 수상작들, 고전영화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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