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누비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새해벽두를 깨우기에 적합한 소재를 모티브로 하고 있을까? 작년 연말 개봉해 올 해 초로 넘어오면서 이 영화가 관객들 저마다의 가슴에 지핀 불은 어쩌면 일종의 판타지일 가능성이 크다.
그린랜드, 아이슬란드, 그리고 눈 덮인 히말라야의 어느 산 봉우리...
월터가 어릴 적부터 갖고 놀던 스트레치 암스트롱 인형 하나 달랑 넣은 가방 하나에 이처럼 세계를 누비는 듯한 모습은 얼핏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류의 여행 판타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할만큼 시각적 광활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가 그린란드에서 타고 가던 자전거 앞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광 속으로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마음...
하지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현실에 발목 잡힌 이들의 여행 판타지나 도전 판타지를 고취시키기 위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월터라는 인물은 한 마디로 곧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향될 위기에 놓인, 라이프지의 사진 인화담당부서에서 자그만치 16년이란 세월 동안 숀 오코넬이란 인물과 단단한 파트너쉽을 유지하며 잔뼈가 굵어진 사람임에도 인수합병의 초읽기에 들어간 회사에서 그렇게 언제 짤릴지 모르는 위기의 인물인 셈이다. 게다 노년한 어머니와 연극 배우를 꿈꾸는 백수나 다름 없는 여동생을 건사해야만 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다.
그런 인물이 하루 아침에 손 오코넬이 남긴 라이프지의 마지막 오프라인 커버사진의 잃어버린 25번 째 필름을 찾아 직접 숀을 찾아 온 세계를 누빈다는 설정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나올법한 일종의 거대한 판타지에 가깝다.
물론 요즘에도 전재산을 처분해서 세계여행을 떠나는 가족들이 있으니 완전히 실현 불가능한 일은 또한 아니지만 월터에게 커버사진에 쓸 25번째 필름을 찾아 떠나는 일은 '도전'이란 이름보다 '생존'이란 이름이 더 어울린다.
결코 미화될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매력은 분명 다른 데 있다.
월터에게 마지막 잡지의 커버사진으로 쓸 필름을 다른 필름들과 함께 보낸 숀은 월터에게 ,그것은 삶의 정수' 즉, 삶의 본질이 담긴 사진이란 말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진정한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란 말로 치환될 수 있는 이 물음은 그대로 라이프지의 회사 모토와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자신의 현실을 내던지고 월터처럼 도전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일까?
그것은 라이프지의 마지막 표지사진이자 잃어버린 25번째 필름이 바로 그 해답일 것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월터처럼 멍 때리기가 유일한 낙이요, 인생의 위안이자 연애정보 사이트에 새겨넣을 그럴싸한 프로필 하나 갖지 못한 월터로 대변되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 당장 지금의 현실을 박차고 나와 신성한 모험과 도전을 즐기라는 식의 판타지를 불어넣는 영화가 아니다.
라이프지의 마지막 표지를 장식한 사진의 의미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온,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헌신한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 같은 영화에 더 가깝다.
오히려 진정한 삶의 가치는 멀리, 실현하기 힘든 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꾸준하고도 열정적인 일에서 발현된다는 사실을 '벤 스틸러'식의 화법으로 탄생시킨 영화라 보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지금까지 달려온 자가 인생의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그때야말로 꿈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보면 월터의 꿈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스케이트보드가 등장한다.
한 때 잘 나가던, 입상 경력까지 갖춘 보드 선수였던 그의 어린 시절의 꿈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종결된다.
그가 난처한 상황이나 셰릴에게 대시하거나 마음을 고백하고 싶을 때마다 등장하는 그의 상상은 바로 이런 현실에 대한 일종의 강박과 도피로부터 파생된다.
그가 자신을 엿 먹이는 신입 이사 '테드'를 25번가에서 보드 하나로 그가 강탈한 자신의 분신 같은 스트레치 암스토롱 인형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상상 속 결투는 결국 잃어버린 꿈을 찾고자 하는 자아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벤 스틸러 식으로 코믹하게 재창조된 이러한 월터의 상상씬들은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하지만 웃음 뒤에 꿈을 포박당한 인물의 어두운 자아가 그대로 투영된 결과물이다.
그런 그가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대자연을 앞에 두고 바람을 가르며 자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인형과 맞바꾼 보드로 전력을 다해 질주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겐 대리만족과 같은 쾌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포박되었던 월터의 꿈이 해방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스트레치 암스트롱은 그런 그의 버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며 불안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그런 물건을 과감하게 낯선 소년들의 보드와 맞바꾼다는 것은 그 자체로 월터에게 찾아온 하나의 변화를 상징하는 장치인 셈이다.
그는 실제로 입고있던 넥타이를 찢어 돌멩이에 감은 것을 자신의 손바닥에 장착한 채 스케이트 보드 하나로 미끄러지듯 그의 여정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자의 모습으로 변화된다.
결국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미덕은 이런 우리 자신을 붙들고 있던 현실의 해방과 함께 찾아온 잃어버린 꿈에의 도전과 동시에 현실에서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이들만이 맛볼 수 있는 삶의 소중함을 동시에 일깨우는 데 있다.
월터가 3대륙을 건너 마침내 숀과 만났을 때 숀은 월터에게 이런 말을 한다.
"가끔은 사진을 찍지 않는 순간이 있네. 그냥 지금은 그 순간을 즐기고 싶을 뿐이야."
어쩌면 우리 인생의 마지막 표지를 장식할 사진은 막연히 현실을 뿌리치고 떠난 여행지에서의 일탈이나 여행이 주는 기쁨 혹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도전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의 자리에 서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지금의 우리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도전하고 떠나는 것 이상으로 소중한 삶의 가치를 깨닫는 것.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속에 녹아있는 진정한 교훈은 바로 그것이란 사실.
주연에, 연출의 1인 2역을 담당한 벤 스틸러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슈퍼맨이다.
단편 소설 작가이자 삽화가인 '제임스 써버'의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Secrret Life Of Walter Mitty)'를 원작으로 한, 1939년이란 과거의 시간에서 21세기로 날아온 그의 자화상이 빚은 중년 남성의 좌절적 상황을 몽상이라는 희극으로 끌어올린 소설 속 상황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그대로 통용된다.
현실에 기반한 삶을 지탱하는 열정과 상상이 빚는 꿈의 실현이 영리하게 합방된, 월터로 대변되는 모든 이들의 삶과 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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