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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2

by 자한형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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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2/누비아

프란체스카의 내적 갈등이 극에 달한 슬픔의 비등점 같은 숏.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스틸컷

두 사람은 결국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 짧디짧은 나흘이 지난 후 이들은 서로에게 어떤 운명이 되는 쪽을 선택했을까요?

폭우가 쏟아지는 빨간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선 두 대의 차량.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감정 역시 타들어갑니다. 로버트의 차량 옆 좌석은 여전히 비어있는 상태였고, 로버트의 차량 뒤에 서 있던 프란체스카의 남편 리처드의 차량 속 조수석에 앉은 프란체스카의 모습은 이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속 그 먹먹한 비극의 비등점 같은 숏입니다. 그 이전에 로버트가 자신의 차량에 탑승하기 전, 폭우 속에서 프란체스카가 내리길 기다리며 비를 흠뻑 맞고 있던 모습. 차량 안에서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고통스러운 내적 갈등 상황에 봉착한 프란체스카가 움켜잡고 돌리고 싶었던 차량 문고리에 가해진 그녀의 압력과 그 악력을 누르는 이성의 압력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화하는 슬픔은 아무리 제3라 해도 보기만 해도 먹먹하고 아픈 장면입니다.

여러분은 프란체스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고 있나요?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그녀의 선택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는 아마 모든 기혼 여성이라면 누구보다도 더 잘 프란체스카의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로버트가 떠나는 금요일 전날, 두 사람은 서로 마주 앉습니다.

당신이 필요한 게 싫어요. 당신을 가질 수 없으니까.(로버트)

내 생각엔...

내가 사진을 찍으며 살아온 것, 이곳까지 오게 된 것 모두가 당신을 만나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내 인생 전부를 통해서 당신을 만나러 이곳에 온 거요. (로버트)

우리가 이곳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할 거예요. (프란체스카)

더 좋아질 거요.(로버트)

여기서 아무리 먼 곳으로 간다고 해도 늘 마음에 걸릴 거예요. 우리가 함께하는 매 순간마다요. 당신을 사랑한 대가가 너무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리고 나흘의 아름다웠던 기억들까지도 모두 실수로 느껴질지도 몰라요.(프란체스카)

이제 우린 둘이 아니에요. 평생을 찾아 헤매도 못 찾는 이들도 있고, 아예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말해봐요. 포기하는 게 맞다고 말할 수 있어요?(로버트)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기로 결정하는 순간, 한 여자의 삶이 시작된다고 하지만 어떤 면에선 멈추는 것이기도 하죠. 인생은 계속되고 꼼짝 않고 그 자리를 지키면서 자식들이 자라서 떠날 때 내 인생도 같이 떠나보내는 거예요. 그땐 이미 뭣 때문에 살아왔는지 잊어버린 지 오래된 거고요. 이런 사랑이 찾아올지는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면서요. 하지만 같이 떠나면 모든 게 사라질 거예요. 그냥 우리 맘 속에 영원히 남기고 싶어요.(프란체스카)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 번 오는 거요. (로버트)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어느 날 교통사고처럼 닥친 운명에 봉착한 두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떠남으로써 끝나는 사랑과 남음으로써 영원해지는 사랑의 역설을 돌아보게 합니다. 모든 사랑은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처럼 한 쪽이 가정이 있는 유부녀나 유부남일 경우 그런 상황에 처한 당사자의 감정은 그야말로 재앙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함께함을 감행했다면 역설적으로 그들의 사랑은 거기서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들의 나흘간의 사랑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나게 되니까요. 하지만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와 동행하지 않고 가정을 지켜냄으로써 영화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지켜내는 프란체스카의 상황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의 완성이 서로 '함께함'이라고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게 됩니다.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사랑일수록 그런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은 더욱 강렬해지고 욕망이 강렬해지는 만큼 당사자는 더욱 고통 속에 내몰립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프란체스카의 선택을 통해 사랑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를 잡지 않음으로써 그와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냄과 동시에 자식과 남편 역시 지켜냅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생을 회고하는 동안 이렇게 말합니다. 평생을 자식과 남편을 위해 살았으니 죽어서는 그(로버트)에게 내 남은 것을 주고 싶다고... 프란체스카는 떠나지 않음으로써 로버트와의 사랑을 영구적으로 간직했고 남음으로써 남편과 자식에 대한 사랑 역시 지켜냅니다. 그 사랑이 사랑보다 책임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도 가정을 지켜내는 것 역시 넓은 범주의 사랑임을 우리는 압니다. '꿈은 꼭 이루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간직해서 좋은 거'라던 로버트의 대사는 사랑에 대입해도 더없이 훌륭한 비유가 됩니다. 사랑은 소유하고 동행해서 좋은 게 아니라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라는 그 원론적 정의. 그리고 그런 사랑이 서로에게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이름이 된다면 그건 설령 헤어져도 헤어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사랑은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영원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부란 서로의 늙음을 보듬고, 간직했으되 이루지 못한 서로의 낡은 꿈을 위로하며 그 미안함의 제스처를 표현하는 그 작은 몸짓 속에 있다는 것을 프란체스카의 남편 리처드의 임종을 지켜보는 프란체스카에게 건네는 리처드의 고백으로 느끼게 됩니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함께 했던 그날의 그 낡은 목조다리와 다리 아래 풍경을 부감으로 잡은 영화의 엔딩은 그야말로 이 멜로 영화의 완성도와 미학을 동시에 체감하게 합니다. 처음 엄마와 낯선 남자와의 그렇고 그런 사연을 알게 되었을 때 아들 마이클이 보인 반응과는 달리 엄마의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마이클과 캐롤라인은 어느새 자신들 역시 삐걱거리고 있던 자신의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엄마의 사연 안에서 점차 누그러져가는 그들의 내면 상태를 엿보게 합니다.

주름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 하나,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의 등목하는 장면이나 샤워하는 장면을 훔쳐보며 느끼는 묘한 설렘. 프란체스카가 언제 구입하고 안 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랜 세월 자신을 위해 사본 적이라고는 없는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로버트를 대면할 때,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눈을 떼지 못하던 로버트가 서로를 처음 품에 안고 추던 춤. 빨간 지붕을 가진 매디슨 카운티의 낡은 목조 다리의 풍경은 아마도 이 영화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은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함께 하는 집이니까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헤어져도 헤어진 것이 아니며 떨어져도 떨어진 게 아닙니다. 몸의 결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결속이니까요. 마음 없는 몸의 결합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죽어서라도 서로의 강물에 뿌려져 하나가 되어 같은 바다로 흘러가는 것. 어쩌면 그것은 살아서 이룩한 사랑의 성취보다 더 영구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100년을 살아가지만 죽어서는 평생을 살아가는 거니까요.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 누군가의 영혼과 합쳐져 하나로 흐를 수 있는 강물. 그것은 살아서 이룬 그 어떤 사랑보다 더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험일 겁니다.

이 생에서 이루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헌시. 로버트가 남긴 사진첩이자 유품인 4DAYS , 그가 찍은 사진과 프란체스카가 자식들에게 남긴 가장 자신이 자신다운 자기 고백과도 같은 편지는 그들의 불멸의 사랑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이자 기록이며, 프란체스카처럼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 세간의 손가락질과 수런거림을 감내해야 했던 마을의 또 다른 여인 루시는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증언해 줄 유일한 증언자 역할을 합니다. 사는 동안 우리는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처럼 새로운 누군가에게 끌리고 흔들릴 수 있는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상황에 노출된 모든 이들이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와 같은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우연이 서로의 운명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특별하고도 먹먹한 이유입니다. 운명은 서로를 운명으로 선택한 자가 만들어낸 우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가장 납득할 만하고도 아름다운 해석.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그런 영화입니다.

이쯤에서 이병률 시인의 끌림속 글의 일부를 전합니다.

나는 그와 헤어지면서 이것이 마지막은 아닐 거란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또 한 번의 헤어짐을 서운해했던 로버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나거나 헤어지면서 한다는 악수법으로 악수를 하자고 했다.

나는 그 인사가 우리 같은 인연의 사람에겐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인사법이라는 생각을 하며 또 한 번, 그와의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내가 하지 못한 말,

두 사람이 마음으로나마 한 집에 사는 것, 한 사람 마음에 소나기가 내리면 다른 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다 그 빗물을 퍼내어 나누어 담는 것. 그렇게 두 마음이 한 집에 사는 것. 한마음은 다른 마음에 기대고, 다른 마음은 한마음속에 들어가 이불이 되어 오래오래 사는 것. 내가 생각하는 한 그것이 진정 인연일 터이니 우리는 그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 말

아래는 영화 [김종욱 찾기]와 관련해서 제가 이병률 시인의 끌림속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위의 인용문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2년 로버트 제임스가 펴내 세계에서 5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첫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은 2014년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으며, 원작이 로버트 킨케이드 입장에서 그려지는 것과는 달리 영화와 뮤지컬은 프란체스카의 입장과 그녀의 내레이션으로 구성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영화 속에서 생략되거나 짧게 묘사되는 프란체스카의 전사는 1965, 2차대전 중 이탈리아에 파병을 온 리처드 버드와 결혼을 해서 고향을 떠나 아이오와주 윈터셋에서 평범한 삶을 꾸려가는 것으로 나옵니다. 전직 교사 출신이었던 프란체스카는 직장을 그만둔 후 주부로서 큰 변화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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