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병영에 들여보내고
얼마전에 군생활(軍生活)의 절반을 마친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닷새의 짧은 일정이었다. 아들은 첫날에는 수원에서 친구를 만났고 둘째 날에는 기차로 부산 해운대를 가서 1박2일 동안 놀고 왔다. 3일차에는 학교 앞에서 친구를 만났다. 마지막 날까지 친구를 만났다. 하루중 반나절을 휴가처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내가 집에 도착한 때는 오후 두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본래 예정은 3시에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늦어졌다. 2시 반까지 오라고 했는데 서점을 들르고 머리를 깎고 하다 보니 3시 20분이 되어서야 도착이 되었다. 신대방 삼거리에서 부대까지의 거리는 거의 120킬로미터에 육박했다. 부대의 허락을 받았는지 베이스기타까지 챙기고 길을 나섰다. 네비게이션에 와수리를 찍었다. 예상도착시간은 6시10분쯤이었다. 서울공고 쪽으로 해서 대방 지하차도를 거쳐 여의도를 지나 원효대교를 건넜다. 그리고 강변북로를 탔다. 예상외로 상당히 정체(停滯)가 되고 있었다. 휴가기간이 짧은 기간동안이어서 하도 얼굴을 볼 시간이 없어 나오는 길에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나마 그래도 그것으로 위안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었다.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올라가는데 월계교쪽에 사고 소식이 있었다. 태릉의 화랑대 방면으로 해서 빠졌다. 네비게이션에서 그렇게 가는 것이 좋겠다는 신호가 왔다. 퇴계원 쪽으로 해서 남양주를 지나 직진 방향이었다. 그리고는 47번 국도에 접어들었다. 도로상에는 계속적으로 신호가 있어 빨리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날씨는 처음엔 맑은 것 같았는데 차츰 위로 갈수록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거의 장마수준으로 퍼붓기까지 했다. 막판에는 길이 물바다를 방불케 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제대로 차량도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었다. 귀대시간에 맞추는 것도 상당히 빠듯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신팔 방향이었다. 계속 그쪽으로 가라고 했다. 6시10분이었던 도착시간이 6시30분으로 지연되었다. 팩에 포장해가지고 온 과일 등을 먹으라고 했다. 까닥 잘못하면 저녁을 먹을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포천의 이동이라는 이정표가 나왔다. 막판에는 2차선이 일차선으로 줄어들어 더욱 속력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경기 철원의 와수리에 도착해서 녀석이 필요한 물품도 사야하는 등 시각이 많이 촉박할 것 같았다. 부대에 출발할 때 전화를 해서 복귀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그리고 핸드폰도 다시 정지를 시키는 절차를 밟았다. 차츰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각종 부대들의 팻말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우여곡절 끝에 와수리에 도착했다. 그래도 시간은 좀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거의 6시가 다 되어 있었다. 음식점 앞에 차를 주차해 두고 주변 식당으로 찾아들어갔다. 비가 폭우수준으로 내리고 있었다. 차 트렁크에 있는 우산을 꺼내는 사이에 비를 맞은 것이 옷을 다 적셔버렸다. 식당에 들어가서 제육볶음을 시켰다. 그리고 비가 좀 잦아진 틈을 이용해서 군장점에 가서 필요한 것을 사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같이 식사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몇 군데 통화를 하게 했다. 그리고 사진도 몇 장을 더 찍었다. 다음에 나올 때는 12월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상병이 되어 있을 것이었고 중고참 수준으로 성장해 있을 듯했다. 휴가를 나오는 것도 귀찮다고 하기도 했다. 고생고생해서 휴가를 받으면 어차피 또다시 병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몇 일 나와서 재미있게 보내도 그렇게 만족스러운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챙길 것을 챙겨보니 책이랑 가지고 와야 할 것을 집에 그냥 놔두고 온 것이다.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빠뜨리고 온 것이다. 귀가하면 택배를 보내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부대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와수리에 택시회사가 있고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는데 굳이 데리고 가는 것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길이 나오자 계속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47번 국도에서 5번 국도로 갈아타는 것이다. 12킬로미터 정도가 나왔다. 네비게이션은 마현리로 찍었다. 3사단 백골부대도 나왔고 서면초등학교도 있었고 상해계곡이라는 팻말도 보였다. 무시무시한 해골모양의 형태로 부조로 만들어 놓아 간담이 서늘하게 해놓기도 했다. 민통선에서는 보초가 있었는데 별도의 검문절차는 없었다. 부대간부의 숙소도 있었고 38연대 39연대 50연대의 모습도 있었다. 길가에는 비닐하우스들이 죽 늘어서 있었고 유리온실도 보이기도 했다. 물바다가 된 도로는 간간이 물위를 지나가야 하기도 하게 만들어 무슨 수중 위를 달리는 기분도 들었다. 마침내 부대에 도착이 되었다. 도착하니 7시경이었다. 무사히 그래도 제시간에 복귀를 하게 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복귀 시간은 정확히 8시가 맞는데 그래도 조금 일찍 복귀해서 걱정과 심려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늦어도 7시 30분까지는 복귀를 하는 것이 통상의 관례라고 했다. 자주자주 전화하고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돈을 줄려고 했더니 그냥 놔두라고 했다. 다음 휴가 때 주라는 것이다. 녀석을 들여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씁쓸했다. 거리는 120킬로미터였고 도착예정시간은 2시간 30분 뒤인 9시 30분이었다. 춘천 쪽으로의 거리는 80킬로미터 수준이었다. 오히려 그것이 나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냥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갔다. 그것은 47번 국도였다. 철원에서 서울로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일상적인 퇴근시간과 맞물린 탓인지 정체가 극심했다. 막판에 와서는 내부간선도로를 돌아서 강변북로를 타고 원효대교를 건넜다. 집에 까까스로 도착하니 9시 10분가량이 되었는데 장시간의 운전으로 인해 녹초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무사히 잘 복귀를 시킨 것에 보람이 있었고 덕분에 2시간여를 같이 보냈다는 것에 위로를 삼아야 할 듯하다. 제대로 인터넷을 찾아보고 해서 갔는데도 상당히 낯선 길이다 보니 여러 가지로 헤맨 것이 아쉬워 다음에는 충분히 여유를 두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내년 2월쯤이면 병장을 달 것이라고 했다. 한층 성숙해졌고 남자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사소한 일상에서 그래도 재미를 찾아가고 전우애를 느껴간다는 것에 애틋함을 가져볼 수 있었다. 이제는 상당히 고참티를 내는 듯했다. 다음 달이면 상병이 되니 의젓해져야 할 시기도 된 셈이었다. 9월이면 교육훈련을 하게 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몸성히 군 생활을 잘 해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젠 어려운 고비는 다 넘긴 듯했다. 중반기과 마무리만 잘하면 될 것이었다. 모쪼록 남은 군 생활 마무리 잘하고 건강하게 전역하는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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