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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향을 향한 여정

순수의 시대

by 자한형 2023.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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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이라는 미국의 여류소설가가 쓴 대표작 <순수(純粹)의 시대>라는 것이 있다. 그녀가 한 말 중에 유명한 것이 빛을 퍼뜨리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촛불이 되는 것이고 다음은 촛불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라는 말이었다. 어느 독자는 대학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면접관에게 이말을 좌우명이라고 얘기를 했었다고 한다. 순수의 시대는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했다. 19세기 말 뉴욕의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올렌스카 백작부인은 포악한 남편을 피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자유분방함은 아처변호사의 마음을 빼앗고 만다. 아처변호사는 백작부인의 사촌동생 메이와 약혼을 한 사이였다. 자유방임과 일탈 그리고 관습에서의 탈피를 구가해 가는 백작부인과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고 관습을 존중하고자 하는 메이 사이에서 백작부인에 이끌리게 되는 아처는 둘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게 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관습과 전통에서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너무나 큰 벽과 위험을 감수 받게 되자 스스로를 틀 속에 가둬버리고 만다. 오페라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위선과 형식에 갇혀있는 뉴욕 상류층의 행태에 못마땅해 하면서도 결코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결국 아처는 메이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러자 백작부인은 워싱턴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결혼 후에도 백작부인을 잊지 못한 아처는 백작부인을 찾아가기를 시도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로의 일탈(逸脫)을 해보고자 하지만 번번이 벽에 부닥치고 만다. 한번은 할머니 집에서 오게 된 아처부부는 엘렌 올렌스카가 바닷가쪽에 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처는 그녀를 데려오라는 할머니의 명에 의해 바닷가로 갔다. 석양이 지는 와중에 배가 등대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자문자답(自問自答)한다. 배가 등대를 지나가는 동안에 그녀가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면 데리러 가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리라 다짐을 한다. 등대를 등지고 있었던 그녀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되돌아간다. 얼마 후에 그것에 대해 왜 돌아보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녀도 그가 왔다는 것을 마차소리에 의해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고 했다. 결코 그와 함께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잠재해 있었던 것이리라. 백작부인의 이혼에 관해 법률적인 자문과 조언을 해주는 과정에서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한 백작부인에게 빠져버린 아처는 쉽게 그 끌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고 만다. 그러던 차에 할머니의 뇌출혈이 있게 되고 워싱턴으로 가고자 했던 아처는 엘렌 올렌스카가 돌아온다고 하자 얼떨결에 워싱턴행을 취소한다. 결국 그녀를 맞이하러 기차역으로 마차를 끌고 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차 속에서 2시간을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으나 중간에 그는 내리고 만다. 그러면서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길이 없었다. 얼마 후에 올렌스카는 결국 유럽으로 떠나게 된다. 아처는 올렌스카와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호텔 방 키를 우편으로 보내기도 하나 결국은 되돌려 받게 된다. 무력감을 견디지 못한 아처는 당분간 일을 쉬고 여행을 하겠다고 메이에게 얘기한다. 어디로 가려느냐고 하자 그는 일본 또는 인도가 될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 순간에 메이는 아이의 임신을 얘기하자 그는 그의 뜻을 굽히고 만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처는 57세가 되어 아들과 함께 파리를 방문하고 아들은 올렌스카를 만나러 간다. 메이도 죽고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게 된 아처는 호호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아들이 얘기한다. 엄마가 죽어가면서 한 얘기를 들려준다. 아버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포기했었다고 말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마지막에 아들에게 밝혔다. 그렇게 원했던 일이었는데 그는 결국 핑계를 대고 그녀가 살고 있다고 하는 창가를 바라보며 회한에 잠긴다. 과연 그는 벤치에 앉아 어떤 생각을 했을까. 25년 전 그 뜨거웠던 열정을 불태웠던 때에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에게 어떤 회한과 아쉬움을 남겨주었을까. 자신이 가지 않았고 선택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그렇게 나온다. 아버지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아처역을 미셸 파이프가 알렌 올렌스카 백작부인역을 그리고 위노라 라이너가 메이역을 맡아서 열연을 보였다. 지루하고 따분해 보이는 일상들을 그런대로 상당히 예리한 필치로 표현해내었고 그것을 영상미에 담아 그들의 내면적 실상을 표현해 내고자 했었던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성적인 부분과 감성적인 부분이 대립되는 것 같았고 자유롭고자 하는 부분과 전통과 형식에 안주하고자 하는 것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했다. 과연 백작부인의 희망하는 바는 어떠했을까. 결혼생활에 실패를 맛본 이로서 신중하게 접근하고자 했고 제대로 된 삶을 꿈꾸었지만 현실과 전통의 벽 앞에 그냥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고자 다시 유럽으로 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겨지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보다 영화에서는 훨씬 적극적으로 서로의 사랑을 갈구했고 같이 하고자 하는 것처럼 묘사가 되었다. 아처는 분명히 현실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서라도 엘렌과의 삶을 희구했던 듯했는데 결코 그것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속에서 그 실상을 다 아는 가운데서도 묵묵히 현실적으로 대응하고 대처하면서 그들의 결혼생활을 영위해가고 지켜갔었던 메이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고 마감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런 속에서 제대로 된 행복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 깊은 곳에서의 충족감을 가질 수는 있었던 것일까. 작가는 미국상류사회에서 살다가 결혼을 해 유럽에서 생활을 했었고 이혼까지도 하는 와중에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순수의 시대 창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지독한 신경쇠약에 시달리기도 했다. 전쟁구호를 위해 노력하고 활동한 결과 프랑스 최고훈장이라는 레지옹 도뢰르 훈장을 타기도 했다. 미국의 작가들과도 교류했으며 저작에 몰두하기도 했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부분은 감성적인 부분보다 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보다 바람직하고 현실적이지 않는가 하는 부분을 강조하고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누구나 자유롭고 싶어 하고 마음대로 살고 싶은 것을 떨쳐버리지는 못하지만 땅에 집착(執着)해야하고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부분에서는 그 어떤 삶에서도 기본적으로 적용되어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자유분방한 삶을 택했었다면 더 나은 삶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 변화무쌍한 삶에 적응하고 수용하고 견뎌나가기에는 엄청난 수고와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라는 것 또한 자명한 일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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