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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향을 향한 여정

아메리칸 시저 2

by 자한형 2023.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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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시저 2

 

 

필리핀의 코레히도르에서 일본과 미국은 계속적인 전쟁상태에 있었다. 그런 와중에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고 선언을 했던 맥아더 원수는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부득이하게 탈출 작전을 감행하게 된다.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필리핀의 남쪽 끝 지점을 거쳐 호주로 탈출을 하게 된다. 그는 탈출하면서 분명하게 얘기한다. 꼭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다. 3년여에 걸친 준비와 작전을 거쳐 그는 드디어 45년에 필리핀을 탈환하게 된다. 그전에 뉴우기니 섬에서의 상륙작전도 있었고 여러 차례 전투를 거친 후에야 겨우 탈환을 해낸 것이었다. 일본은 후퇴하는 과정에서 잡혀있던 포로 7만 명을 호송하는 과정에서 거친 학대와 고문 등으로 인해 2만 여명이 죽고 54천명만 살아남게 된다. 이를 일러 죽음의 행진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후 일본의 혼마 마사하루 중장이 지게 되고 마닐라에서 전범으로 처형을 당하게 된다. 45년에 필리핀을 확보한 맥아더 원수는 계속적으로 일본에 압박을 가하게 되고 8월의 나카사끼와 히로시마에의 원폭 투하를 통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게 된다. 미주리 함상에서 히로히또 천황으로부터 항복문서에 서명을 받게 되고 그는 일본군점령 사령관으로서 일본을 통치하게 된다. 토지개혁을 실시해서 지주로부터 경작인에게 토지를 배분하는 개혁을 시행한다. 새롭게 헌법을 개정하게도 한다. 또한 전범재판(戰犯裁判)을 통해 책임 있는 자들의 사형도 이끌어낸다. 단 천황은 예외를 시킨다. 외교 기타 국방 등 제반 분야에서 전후일본의 기본을 놓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506월에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한다. 그는 유엔군 사령관으로 임명된다. 70세의 노령(老齡)이었다. 4일 만에 그는 항공기로 전선을 시찰한다. 그리고 어떻게 전쟁을 할 것인가를 구상(構想)하게 된다. 첫 번째의 일은 대만의 설득이었다. 대만에서는 병력을 투입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온 것이다. 그는 장개석과 만나 그것을 무산시키고 협상(協商)을 마무리 짓는다. 그것은 혹시라도 대만이 개입하게 되면 중공군이 개입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오랜 준비와 심사숙고를 거쳐 915일에 위험부담이 상당했던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다. 다른 의견으로 제시되었던 곳은 군산이었지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상륙작전을 통해 멋지게 전세를 역전시킨다. 문제는 38선을 돌파할 것인가가 논의 되었으나 협의를 통해 이를 넘어 진격하는 것으로 결론 낸다. 계속적인 승리를 통해 압록강까지 진출한 한미 등 연합국은 다시 또 한 번의 위기를 겪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그는 트루먼 대통령과 태평양 위의 한 섬에서 회담을 갖게 되기도 한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경례를 하지 않고 악수를 한 것으로 인해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과연 중공군의 개입이 이루어질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곧 중공군은 인해전술을 펼치며 노도(怒濤)와 같이 밀려오고 전선은 후퇴에 철수를 결정하고 밀려 내려오게 된다. 이런 와중에 맥아더는 미 정부와의 마찰 등으로 인해 결국 군사령관직에서 해임되게 된다. 그가 과연 원폭투하를 건의했는지 등에 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그는 곧 짐을 꾸려 귀국길에 오른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전쟁영웅이었던 그에게 미국민은 열렬한 환영을 보낸다. 그는 미국 상,하원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공과가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기도 한다. 그때 그는 이런 말을 남기게 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환영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던 그에게 대통령직에의 제안도 있었지만 그는 거절한다. 일본에 있었던 48년에도 일본국민이 맥아더의 대통령직 수락을 응원하기도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의 참모로 있었던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또 후에는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한 회사에 들어가 얼마간 일하기도 하였다. 그의 말년에는 81세 되던 1961년경에 마닐라를 다시 방문하기도 한다. 필리핀 국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기도 한다. 최후의 연설은 그의 모교였던 웨스트포인트에서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제목은 의무 명예 조국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아들도 자신의 뒤를 이어 웨스트포인트로 가기를 희망했으나 그는 군인의 길을 가지 않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과의 관계도 돈독했던 그는 영원한 국민적 우상이었고 구국의 상징이었다. 국민적 영웅이었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였다. 모든 부분에서 철저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부하들을 돌보고 지휘하고 리더하는데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역사적 인물로 나폴레옹을 존경했다고 한다. 말년에는 담낭암을 앓아 84세를 일기로 워싱턴에서 서거(逝去)하게 된다. 그는 동양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은 항상 그들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강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의지대로 고귀한 삶을 보석처럼 빛냈던 위대한 인물로 남겨진 듯하다.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를 가졌고 불굴의 신념아래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철저하게 군 생활을 영위해서 52년간 군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는 전무후무하게 22개의 훈장을 자랑스러워했던 장군의 표상 같은 이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언젠가 그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논의가 한참 들끓었던 때가 있었다. 아무튼 그의 한국에서의 공과는 여전히 역사가의 몫으로 남아있지만 누란의 위기에 빠졌던 우리를 구원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아들에 대한 기도문도 멋지게 남겨져 있고 그의 어록도 빛나는 명귀로 재현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피력했던 구절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이상을 버림으로써만 늙는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한다.

 그러나 흥미를 버리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인간은 믿는 만큼 젊어지고 회의하는 만큼 늙는다. 모든 인간은 가슴 한 가운데에 기록실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움, 희망, 격려, 그리고 용기의 메시지가 그곳에 전달되는 한 인간은 젊다.

가슴이 비관의 눈. 냉소의 얼음으로 덮인다면, 그때 그리고 오직 그때만 인간은 늙은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진정으로 노래의 가사처럼 인간은 사라져 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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