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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향을 향한 여정

아들의 면회

by 자한형 2023.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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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면회

 

 

지난 일요일에 내외간에 군에서 복무중에 있는 아들의 면회를 다녀왔다. 작년 10월 중순에 입대를 했으니 이제 만 일년이 지난셈이다. 9개월의 잔여기간을 남기고 있었다. 그동안 휴가를 세 번 다녀가는 동안 자대를 배치받은 이후로 처음 면회를 간 것이었다. 학교를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간 터라 자기네 동기들 보다는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6개월간 반 수를 했던 터라 늦어진 탓이었다. 오랫동안 벼르고 별러왔던 일이었다. 전날부터 부산을 떨었다. 하나로마트에 가서 꽃게와 대하를 사가지고 왔었다. 갖가지 음식을 준비하고 마련하느라고 늦은 시간까지 집사람이 고생했다. 드디어 대망의 면회날이 되었다. 알람은 새벽 530분에 맞춰져 있었다. 두 내외는 부리나케 일어나서 세면과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짐보따리만 너댓개가 되었다. 시험기간이라 한밤중인 큰아들에게 갔다온다 고 얘기를 하고 집을 나섰다. 550분에 출발이었다. 네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찍으니 122킬로미터에 도착예정시간이 745분이었다. 차량도 정비와 주유를 어제 다해놓은 터라 전혀 걱정할 것이 없었다. 날도 밝지않은 새벽 어스름을 뚫고 출발했다. 새벽 3시까지 노심초사(勞心焦思)한 집사람은 의자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신대방 삼거리에서 대방 지하차도로 해서 여의도를 지나 원효대교를 건넜다. 이른 시간이라 차들은 별로 없었다. 강변북로를 탔다. 그리고 동부간선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런 후에 의정부 포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포천쪽으로 가서 결국은 철원방향으로 계속 직진이었다. 국도상에는 간간이 신호등이 있어 흐름이 끊겨지기도 했지만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목적지로 설정한 곳은 철원군 근남면 사무소로 목표를 정했다. 집사람이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낸 것이었다. 근남면사무소에 도착을 하니 750분 가량이 되어 있었다. 지난 여름에 휴가를 나왔을 때 부대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었음에도 계절이 바뀐탓인지 전혀 지형이 낯설었다. 근남면사무소를 지나 조금더 가다보니 장병들의 면회소로 알려진 필승회관이 나왔다. 일단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근무 중인 병사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전혀 알 수 없다는 식이었다. 39연대소속이어서 수색대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었다. 결국 할 수없이 그곳을 나와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전화를 이곳 저곳으로 했으나 다 불통이었다. 결국 지난번 왔었던 것을 경험삼아 어떻게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마현리라는 곳으로 목표를 정하고 네비에 찍고 차를 몰고 갔다. 걱정이 되었는지 병영에 있는 아들에게서 계속 전화가 왔다. 5번 국도를 타는 것이 관건이었다. 삼거리에 검문소를 지났다. 검문하는 병사들이 쫙깔려 있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사항을 기록하는 문건을 작성하고 출입용 표찰을 하나 받았다. 그리고 계속 5번 국도로 진행했다. 승리전망대가 나왔다. 아마도 북한 등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듯했다. 오른쪽에는 전망대 접수처가 있었다. 양쪽 길가로 비닐하우스가 늘어서 있었다. 곧이어 마현2리 마을이 나타나고 다음에 마현1리 마을 표석이 크게 돌로 세워져 있었다. 곧 호랑이 동상이 있는 부대 입구에 도착했다. 시간은 810분가량이 되어 있었다. 입구에는 우리보다 빨리온 면회객이 한분이 더 있었다. 면회신청을 해두고 초조하게 10여분을 기다리가 아들이 나왔다. 훨씬 의젓해진 모습이었고 이제는 의엿한 사나이의 자태를 보여주고 있었고 구릿빛 얼굴이 어른이 다 된 듯했다. 외출증을 끊어서 나왔다. 선임과 같이 나왔는데 그는 곧바로 돌아갔다. 민통선지역이라 부대내에 면회소 등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부대 벽에는 촬영을 금지한다는 경고성 표식도 붙여져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와 조금전 지나왔던 필승회관으로 향했다. 10여분 후에 도착했다. 일층에는 식당과 휴게실 같은 곳이 양쪽에 나뉘어져 있었다. 중간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계단이 있었다. 2층에는 방이 7개가 있었다. 집사람이 오는 길에 방을 예약해 두었다. 그러나 어제 숙박을 했던 사람이 체크아웃을 하지 않은 상태여서 11시가 되어야 입실이 가능하다고 했다. 일단 휴게실로 가서 아침식사를 했다. 녀석을 배가 고팠는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꽃게 두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식사를 하고 차로 나와 좀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아들은 가져온 노트북으로 접속해서 이것 저것 검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집사람은 모자란 잠을 보충하느라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PX같은 마트가 들어오는 입구에 있었는데 그곳은 12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고 되어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여러 가지로 미흡한 것이 많았다. 11시가 되자 방 대여료를 계산하고 열쇠를 받았다. 방값은 만팔천원이었다. 기본2인 만오천원에 1인추가에 3천원이었다. 아들과 집사람을 올려보내고 녀석이 해오라는 것을 처리 하기 위해 차를 몰고 와수리로 나갔다. 10여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일단 안경점에 들러야 했는데 안경점은 있었으나 폐점상태였다. 다음은 시계 수리점으로 가서 시계의 약을 교환했다. 5천원이 들었다. 그리고 빵집, 김밥집, 피자점을 들렀다. 그리고 군장점에 들러서 가장 싼 전자시계 두 개를 샀다. 2만원이라고 했다. 다른 안경점도 발견을 했으나 역시 문을 닫고 있었다. 와수리 일대는 군인들로 넘쳐나는 듯했다. 대부분이 군장점을 들러기도 하고 빵집을 들러는 식이었다. 일부는 순대집에 식사를 하러들어가기도 했다. 츄리닝 복장의 장병들도 볼 수 있었다. 잔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편의점에 들러 껌을 한통 사고 잔돈을 교환했다. 천원짜리 2만원이었다. 녀석에게 전화를 해서 안경을 맞추지 못했다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녀석은 알았다고 해서 곧바로 돌아왔다. 아들은 피자를 두조각 정도 먹었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방에서 철수를 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시시각각으로 담배를 피워야 했다. 이제 제법 많은 면회객들이 운집해 있었다. 식당에도 많은 인파가 북적거렸고 앞마당에도 꽤많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었다. 식당에는 삼겹살, 감자탕, 오리고기, 등을 구워먹을 수 있었고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이 제공되고 있었다. 소주 맥주 등의 주류도 있었다. 마트에 들어갔더니 면회객인지 확인을 했고 병사와 같이 입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들을 불러 같이 들어갔다. 그리고 면세된 브랜디를 한병 사가지고 나왔다. 마당 옆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녀석은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유격 조교로 하는 것을 한번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말솜씨가 보통이 아닌 듯 여겨졌다. 시범조교가 있고 안내조교가 있고 기타 세종류가 있는데 자기는 안내조교라고 했다. 예전에는 올빼미라고 했는데 요즘은 교육생이라 명명한다고 했다. 코스에 대한 설명을 하고 훈련요령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 주에도 공병대의 유격조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부대 부근에 유격장이 있는 듯 여겨졌다. 체력이 상당히 향상되었다고 자랑을 했다. 이제는 군생활에 제법 익숙해진 것처럼 느스레를 떨었다. 어제 밤세워 써온 육필편지를 전했고 책을 한권 읽으라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320분에 출발을 했다. 부대에 도착하니 340분이었다. 10분가량 차에서 과일로 요기를 하고 부대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조금 있으니 같이 면회를 온 선임이 와서 같이 부대로 들어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았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해내고 있는 젊은 이들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이제는 돌아갈 일만 남은 셈이었다. 피로가 몰려왔는지 집사람은 계속 누워 눈을 감았다. 오후 4시에 정확하게 출발했는데 돌아오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단풍놀이객 때문인지 무척이나 차량 속도가 더뎠다. 결국 집에 도착하니 7시를 넘기고 있었다. 세시간이 더 걸린 셈이었다. 무척이나 피곤하고 힘든 하루였지만 고생하고 있는 아들을 위무하고 온 보람이 있었다.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의 한 단계로 인식하고 충실히 군복무에 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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