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하늘도 맑고 청명한 가을날에 길을 나섰다. 본래의 출발은 고양에서였다. 그렇지만 중간에 집결지는 불광동이었다. 예전의 시외버스 터미널 자리였다. 본래 예정이 되어 있었던 수순이었고 동행이었다. 네 사람이 같이 갔다. 9시에 출발이 되었다. 외곽순환을 타고 구리까지 가서 그곳에서 양평 쪽으로의 국도를 타기로 했다. 운전을 하는 분도 이제는 거의 환갑에 이른 분이어서 무척이나 송구한 자리였다. 다른 분들은 다 그 정도의 연배였고 선배였기에 부담이 없었지만 한참 아래였으니 송구하기가 그지없는 형편이었다. 운전이라도 하겠다고 나서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수도 없을 듯해서 가만히 선탑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고자 했다. 교외로 벗어나자 10월의 가을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들녘에는 벼농사가 황금빛으로 변모되는 중이었다.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결실의 계절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워낙 연배가 높고 퇴직한지도 10여년 이상 된 대 선배님이셨기에 여러 가지로 예우를 갖출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구수한 입담으로 말씀하시는 부분이 모두 다 후배들에게 귀담아 들을 만한 귀한 것들이었다. 나이가 들고 늙어갈수록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잘 삐치기 쉽고 서운해 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러자 옆에 앉았던 선배님이 말씀하기를 그랬다. 자신은 요즘도“밥도 안 먹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집을 나와 버린다는 것이다. 요즘시대에 간 큰 남자이고 겁 없는 남자인 듯했다. 한참을 달리고 보니 차들의 정체가 만만치 않았다. 설악산 단풍이 절정기를 향해 가는 때이니만큼 도로는 차량행렬이 길게 줄지을 수밖에 없는 듯했다. 두 시간여를 더 달려 겨우 도착한 곳은 골프텔에 부속된 교회의 예식행사장이었다. 정말 크지도 않고 소담스러울 만큼 성(聖)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담한 교회였다. 예식이 시작되려면 20여분이 남았지만 미리 온 하객으로 인해 북적거리고 있었다. 한창 다들 바쁜 때여서 현직 직원의 여러 명들은 소위 말하는 눈도장만 찍고 모두들 빠져나가는 형편이었다. 주변은 휴식을 취하러온 이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었으니 주차장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혼주와 인사를 나누고 식장을 둘러본 후 곧바로 피로연 장소를 찾아 올라갔다. 배식은 예식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준비가 된다고 고지(告知)가 되었다. 전체 피로연장은 400여석의 규모로 일반 예식장의 피로연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결 여유로웠고 음식들도 훨씬 정갈하고 품위가 있어 보였다. 혼사에 같이 간 일행 등이 원탁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환담했다. 다들 차를 직접 몰고 온 터라 술도 마음껏 마실 수 없었다. 불원천리(不遠千里) 만사를 제쳐두고 같이 동승해 온 원로선배 등 일부만이 술을 편하게 마실 수 있었다. 안주로는 활어회를 주 먹을거리로 했다. 일부는 영농자재 계약업체들의 관계자들도 모습을 보였다. 서울에서 거의 3시간을 달려 예식장을 온 것이었다. 거리상으로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작심을 하고 결혼식에 참석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나뭇잎들은 조금씩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는 듯 보였다. 관광객 들이 그런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숲에 둘러싸인 듯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결혼식의 모습은 전면화면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생중계가 되는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시골에서 하는 결혼식이었고 야외 또는 특별한 형식을 갖추는 결혼식인 듯했다. 가을은 역시 결혼의 계절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 동시에 조락(凋落)의 계절이기도 하다. 화창한 날씨였고 말 그대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결혼식이 거행되는 것이었다. 수확한 후의 텅 빈 들녘은 무척이나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는 동시에 새롭게 새해를 준비해야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도 했다. 10명 정도의 하객이 앉아 식사를 하면서 세상사는 얘기를 나누었다. 원로 선배 한 분은 내년에 치러질 조합장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라고 했다. 대다수의 이사진이 추천을 하고 있어 부득이하게 출마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소 건강이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원했다. 주요 주제는 자녀들의 결혼이 화두로 떠올랐다. 나이가 꽉 찬 상태였지만 제대로 짝을 찾지 못해 걱정을 끼치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손자들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분들도 있는 듯했다. 대부분의 선배들이 그런대로 건강하고 활기차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예식은 화면으로 감상이 다 되었다. 교회 식으로 하니 일반인들이 참석을 하는 부분도 어색할 수 있을 듯했다. 거의 자리가 파할 때쯤에 혼주가 와서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자녀를 훌륭하게 성장시켜 내로라하는 재원으로 남부러울 것없이 잘 키운 것 같았다. 미국에서 수학(修學)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셈이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게 생겼다. 돌아가는 길은 예상대로 무척이나 혼잡스러웠고 막혔다. 서울에 도착하니 거의 오후 5시경이 되었다. 불광역 근처의 음식점은 찾을 수 있었으나 주차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냥 차를 몰고 가겠다고 해서 송구했지만 보내드릴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난 후 다시 음식점을 찾아갔다. 여직원에 의하면 휴일이어서 충분한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셋이 앉아서 마음 편하게 다시 술자리가 벌어졌다. 원로 선배님의 입담은 여전했다. 활기가 넘쳤고 유유자적(悠悠自適)했다. 일반 음식점이었는데 가격이 무척이나 싼 편이어서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예식장에서 포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녁을 겸해서 먹으니 또 다른 맛이었다. 휴일하루를 완전히 소모해버린 날이었다. 이제는 수명이 한참 길어져서 제2의 인생도 심각하게 준비하고 대비해야할 필요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로 되어 가고 있다. 모름지기 철저하게 준비하고 치밀하게 대비하는 것만이 멋진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10월의 어느 멋진 가을날을 제대로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뜻 깊은 자리에 참석을 해서 여러 선배들을 만났고 근황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였고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느 선배는 이런 얘기를 했다. 퇴직을 하고보니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았던 걸 알겠다고 했다. 일상생활이 집과 사무실을 왔다 갔다 했고 뭘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얘기였다. 미리 노후를 대비해야 했고 보다 충실히 직장생활을 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회한도 담겨있는 듯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정년을 지내다보면 이렇게 결혼식이나 기타 경조사 때에나 선배들을 뵐 수밖에 없을 듯했다.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년을 즐기시는 나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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