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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S의 형극 같았던 삶

by 자한형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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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의 형극 같았던 삶

 

 

그는 전쟁이 끝나가던 해에 태어났다. 위로 형과 누나가 있었다. 김천군 증산면의 조그만 시골 농가에서 평범하게 첫울음으로 시작했다. 10여리 떨어진 곳에 있었던 초등학교를 다녔다. 증산면은 성주군과 인접해 있었고 김천에서도 꽤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면소재지 내에 초등학교가 세 곳이 있었다. 한 학교에 보통 300명씩 있었으니 무척 많은 편이었다. 지금은 오로지 한 초등학교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60명 정도 수준이라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중학교를 갈 때가 되었는데 형편이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집을 떠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고 정상적으로는 학비 등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부산에 있는 B중학 야간부에 입학을 했다. 밤에만 학교를 가면 되었기에 낮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물건을 팔러 다니기도 했고 신문을 돌리는 것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익혔다. 친구의 학자금을 밑천으로 해서 둘이 서울행을 감행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는 고향부근의 한 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학교의 소사로 취업을 했다. 그것이 고등학교2학년 때이니 참 어린나이에 공직에 들어선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채로 9급 공무원이 되었다. 그로부터 39년의 공직생활이 시작된 것이었다. 군에도 가기 전이었으니 앳된 나이에 사회첫발을 내디딘 셈이었다. 첫 부임지는 진주였다. 1년여를 근무한 후 부산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간 근무를 한 후 군에 들어갔다. 군은 자원입대를 한 것으로 공군을 지원해서 입영했다. 근무기간이 더 길었지만 그 길을 택했다. 군복무 3년을 마치고 다시 부산으로 복직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제주도로 발령을 받았다. 홀로 생활하기가 힘들었기에 모친이 밥을 해주러 와 있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엄명은 되도록 제주도 여자는 사귀지 마라는 것이었다. 제주근무를 마치고 발령을 받은 곳은 부산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차다 보니 맞선을 보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80년대 초였다. 결혼 후 얼마 있다가 발령을 받은 곳은 울릉도였다. 둘이 울릉도로 들어갔는데 나올 때에는 넷이 되어 나왔다. 아들과 딸을 얻어 나왔다. 그곳에 있을 때 당한 일이라고 했다.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다른 직원에게는 상사가 열심히 하라고 얘기도 해주고 권고를 해주는 데 자신에 대해서는 홀대를 하더란다. 그래서 독기를 품고 교육을 받고 밤낮으로 공부에 매진했단다. 24명의 교육생이 있었는데 성적이 1등이었다. 그래서 상장과 부상을 받았다. 그것을 들고 처갓집을 찾아가 장인께 보여주었더니 장인이 좀 안심하는 눈치였단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장인은 사위를 듬직하게 여겼고 자랑스러워 하셨으리라 믿었다. 그 다음으로 근무하게 된 곳은 봉화였다. 집은 서울에 얻어두었다. 초등학교 동창생 중에 연배가 좀 있는 이가 있었는데 농아로 장애아였다. 이 사람에게는 형도 있었는데 그도 농아였다. 두 사람을 데리고 봉화의 한 한약방을 찾았다. 그리고 약을 지었다. 그런데 약값은 외상인 셈이었다. 그런 연유로 해서 돈은 없고 갚을 방법을 생각하다 묘책을 낸 것이 일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기식을 하면서 틈나는 시간마다 약방 일을 도운 것이었다. 그는 같은 성씨였고 아들을 낳게 하는 효험 있는 약을 지어주는 것으로 평판이 자자했다. 6개월간을 그 집에서 기식을 하며 약재도 썰고 약봉지도 싸고 처방전도 써주는 등 잡일을 했다. 그곳에서 그는 방송통신대학을 거쳐 안동대학의 대학원과정을 다녔다. 그리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근무하게 된 곳은 보은이었다. 속리산이 속해 있는 곳이었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었다. 최초로 충청도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본청에서 근무를 했다. 그것은 보라매공원 내에 소재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중국을 갈 기회가 있었다.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가느냐 그냥 남느냐 등으로 한참을 갈등했으나 결국 가는 것으로 해서 결정을 내렸다. 대학입시가 코앞인 상황에서의 외국행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잘 따라 주었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학을 북경대학 정치학과에 들어갔다. 그 후 2년이 지난 후에는 다른 남쪽 대학에 편입해서 졸업을 했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서울대 국제정치대학원에서 수학해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들은 컴퓨터, 자동차 등에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학업을 마치고 군복무는 해외로 신청해서 나이지리아에서 근무를 했다. 그로 인해 영어, 중국어가 다 소통가능하게 되었다. 군복무후 취업은 한국중공업에 취업을 했고 3년 후 아리따운 아가씨를 만나 결혼까지 했다. 딸도 중국에서 대학을 마쳤고 한국에 돌아와 얼마간의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 현재의 남편을 만나 오빠보다 먼저 결혼을 했고 지금은 임신 5개월로 접어들었고 금년 말이면 아기엄마가 될 예정이다. 사위는 처음에는 삼성에 취업해 얼마간 직장생활을 했으나 관두고 생산성본부에 경력사원으로 채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국으로 간 그는 박사학위를 탔다. 그리고 다시 복직해서 근무를 하다가 인천기상대장이 되었다. 그러다가 제주 성산포 기상대장을 했다. 마지막에는 천안기상대장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지난 1년간은 1년간 공로연수를 했고 금년 6월말일자로 정년을 마감했다. 파란만장했고 굽이굽이 굴곡투성이였던 공직생활 39년의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었다. 녹조근조훈장을 받았다. 평생을 공직에 봉직한 것이었다. 퇴직 후 바로 다음 달부터 연금을 수령하게 되었다. 적지 않은 금액으로 부부가 생활하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홀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잠시도 쉬지 않는 배움의 열정을 쏟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값지고 성실하고 복된 인생이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그 식지 않은 열정을 품고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로 삼아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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