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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가을 여행

by 자한형 202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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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여행

 

 

모처럼의 기회였다. 하루 휴가를 내고 가을여행을 부부간에 떠나기로 했다. 본래 일정은 23일 이었는데 하루가 줄어 졸지에 12일이 되었다. 출발이 늦었다. 그래도 평상시에 비하면 일찍 출발한 편이었는데 묘하게도 교통상황이 무척이나 비협조적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출발한 가을여행이었는데 도로상황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서울시내 88을 타고 가던 중에 국도로 접어들었다. 내비에서 유도하는 곳으로 계속 나아갔는데 결국은 정체에 갇혀버린 꼴이 되었다. 결국은 다시 고속도로로 방향을 잡고 가다보니 지체가 더했다. 결국 다시 접어든 곳이 곤지암 IC이었다. 겨우 도착해서 고속도로로 접어들고 보니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북이걸음으로 가다보니 하세월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4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원주였다. 거의 평소 소요되는 시간의 두 배가 걸린 셈이었다. 식사시간이 되어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찾아든 곳은 중앙시장 내의 고깃집이었다. 조그만 시장 통 안에 고깃집이 즐비해 있었다. 13 곳이 있는데 점심때 문을 여는 곳은 대여섯 곳 정도라고 했다. 고기를 시켜놓고 한숨을 돌렸다. 몇 년 전에 한번 다녀간 기억이 있고 아주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서린 곳을 회상하며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는데 그곳을 다시 찾기는 어려웠다. 식당의 상호는 석탑이라는 곳이었다. 서울 유명 고깃집에 비하면 가격은 절반 수준이었다. 고기를 굽는 숯불이 따뜻했다. 식사를 하고나니 그래도 오랜 시간을 소모시켜가며 온 보람을 느껴볼 수 있었다. 본래 계획은 평일인 하루 전에 출발해서 영덕에서 하루를 묵을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도저히 출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다시 전열을 재정비해서 단단히 각오를 하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도로상황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고 대응을 한 것이 문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단풍여행객으로 인해 더욱 지체가 가중되는 느낌이었다. 거북이걸음이었고 명절의 정체 수준을 능가했다. 겨우 지체구간을 빠져나와 제법 속도를 낼 때가 되니 거의 목적지에 도달했다. 오후가 한참 지난 시간에 겨우 주문진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나마 해가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여행 후 지인에게 들은 얘기로 한 시간 일찍 출발을 했다는데 소요시간이 거의 열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우리는 그나마 빨리 온 편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고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가을바다를 보러 나갔다. 철지난 바닷가여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움이 가득했고 쓸쓸해 보였다. 파도소리는 시원스럽게 들려왔지만 해변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하얀 포말을 끊임없이 일으키며 내륙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하염없었다. 핸드폰으로 인증 샷을 찍으며 마음껏 바다내음을 마셨다. 해변을 거닐며 인근의 지역을 살펴보았으나 식사를 할 만한 곳을 마땅히 찾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차를 몰고 조금 더 올라가서 하조대로 갔다. 30여분을 해안가 도로를 달려 도착했다. 이제는 밤이 되어 깜깜해졌다. 교육원시절에 세 차례가량 신규직원을 인솔해서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밤새도록 야간 극기 훈련을 하고 도착하는 곳이었다. 그 때 갔었던 식당도 찾을 길이 없었다. 결국 해안가 근처의 횟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바깥에는 저녁놀이 붉게 물들여져 있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먼저 주전부리가 나왔다. 고동 등을 빼 먹으며 감상에 젖었다. 공교롭게도 옆 좌석에는 수녀님 두 분이 식도락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담았던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을 똑같이 동영상으로 담아 그것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마음이 울적할 때 한 번씩 봐야겠다는 얘기였다. 바다가 보고 싶어질 때 껴내 볼 것이라는 말씀을 했다. 유심히 관찰해보니 제법 연륜을 가진 듯 했고 세상살이를 힘겹게 이어가는 보통사람들과 다를 게 없는 것처럼 그렇게 세상사의 희로애락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있었다. 하나님의 종으로 엄격하게 계율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혹자는 그렇게 얘기를 하기도 했다. 인간이 갖는 미래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이 성직자라고 했다. 그것은 결국 미래에 대한 불안, 걱정, 근심 등이 되지 않을까 여겨졌다. 술은 하지 않을 요량이었는데 결국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 병 을 시켰다. 그리고 집사람이 호기롭게 술잔을 기울였다. 가을밤은 금방 어두워졌고 고혹해졌다. 파도소리를 더 가까이 느껴 보고픈 사람들은 야회에서 동해바다의 야경과 함께 흥취를 즐기기도 했다. 매운탕까지 먹고 포식을 한 우리내외는 이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잠깐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마른안주를 샀다. 숙소로 돌아온 다음 집사람은 취기가 올랐는지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갔다. 뷔페식이었는데 그렇게 많은 종류의 음식이 준비된 것은 아니었다. 창가자리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잠깐 빈자리인 줄 알고 앉았던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 보호자 되는 이가 집사람을 할머니라고 불러서 집사람이 기겁을 했다. 아침바다는 보기 좋았다.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태양의 뜨거움이 남아 있지는 않았지만 온 대기가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해바다의 매력이 일출에 있다는 것이 빈말이 아닌 듯했다. 다음의 목적지는 설악산 내 신흥사였다. 리조트를 체크아웃하고는 그곳을 향했다. 이미 가을은 성큼 다가온 듯했는데 단풍은 아직 절정에는 이르지 못했고 막 시작하는 단계였다. 설악산 입구는 울긋불긋한 색깔 옷으로 단장한 행락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입구에서 차를 주차해 놓고는 걸어서 올라갔다. 한쪽에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줄을 서서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은 걸어서 풍광을 감상하며 올라갔는데 중간에서 의자에 앉아 쉬기도 했다. 한 시간여를 걸어서 올라가니 입구가 나왔다. 입장권을 끊고 입장했다. 멀지않은 곳에 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행렬이 있었다. 그것은 케이블카를 타고자 하는 이들이 만든 것이었다. 구름떼처럼 몰려든 행락객 때문에 제대로 가을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다. 겨우 신흥사 경내만 간단히 둘러보고 하산하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울산바위의 모습도 한쪽 귀퉁이만 조금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가을가뭄 때문인지 옆 계곡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는 일정만 남았다. 올 때 그렇게 차량정체로 고생을 했던 터라 다시 그 길을 되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다른 코스를 택했다. 미시령 한계령 쪽으로 해서 인제를 거쳐서 홍천쪽과 춘천으로 가는 방향을 잡았다. 미시령을 앞두고는 울산바위가 훤하게 보였다. 기념으로 차안에서 사진을 찍었다. 미시령 터널을 지나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빗줄기가 굵어졌다. 무지개가 하늘에 걸리기도 했다. 인제에 도착하니 중식 때가 되었다. 막국수로 요기를 했다. 우산을 쓰고 다녀야 할 정도로 비가 내렸다.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할 가을여행이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워진 반증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했다. 홀로 남겨진 아이들이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홀로 생활할 만큼 장성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다. 이렇게 여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을 날도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되고 생활의 편안함이 갖춰질 때 가능한 부분일 것이다. 세계여행을 다니는 노부부들은 다 나이 들어 하는 것이 정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기력이 있고 정신이 말짱할 때 가능한 것이고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맛보는 여행이 주는 것은 생활에 활력을 되찾게 해준다. 앞으로 미래 우리생활의 청량제처럼 그렇게 활기 넘치게 하는 작용을 할 것이고 그것이 일상화되는 날도 곧 오리라. 프랑스인들은 한 달 동안 휴가를 즐긴다. 그러면서 그들은 휴가를 가는 것을 계획하면서 6개월을 보내고 휴가를 다녀온 후에는 휴가에서 일어났던 일을 얘기하며 나머지를 보낸다. 우리에게 그런 날이 올 수는 있을까. 아무튼 가을 여행을 통해 새롭게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앞날을 설계하고 계획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가을여행은 많은 추억과 얘깃거리를 남겨주었다. 이 가을이 가고나면 한해도 저물어 갈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새 희망을 품고 새롭게 세상을 맞이할 각오와 준비를 시작하면 또한 새해가 힘차게 밝아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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