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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갑오년 한가위

by 자한형 202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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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한가위

 

 

엊그제 한가위 황금연휴 5일간이 지났다. 여름 추석이라 할 만큼 빠른 추석이었고 윤10월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금년의 추석은 정말 편안하고 여유롭게 보낸 듯하다. 문제는 비용이었고 경비였다. 차를 몰고 가지 않았던 탓에 편안하기는 했지만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하필이면 동생까지 외국에 출타중이라 아쉬움은 있었다. 날씨도 도움을 줘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기차표를 구한 경위부터 알아보자. 한 달여 전쯤이었다. 서대문에 회의참석차 갔다. 그런데 회의참석자로부터 정보를 얻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날이 추석열차표를 예매하는 날이었다. 아들에게 예매를 얘기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후회막급의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버스 지난 후 손 흔들기 같았다. 그래서 잽싸게 1층으로 내려가 발권상황을 확인했다. 무심결에 확인을 했는데 표 하나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신청을 해서 발권했다. 정말 우연찮게 표를 구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년의 예를 보면 통상 명절 전전날 늦은 시간에 아들과 집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안성까지 오면 안성에서 출발을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저런 번거로운 절차 없이 곧바로 열차만 타면 만사 순조로운 일정인 것이었다. 출발에서부터 해프닝이 있었다. 본래 850분발이었는데 750분으로 착각을 한 것이었다. 이미 택시를 타러 나와 있던 중이라 다시 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시간도 여유 있고 해서 일단 버스를 타고 가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택시 타는 곳에서 버스 타는 곳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이제 8시였다. 아직 50분이 남은 것이다. 일단 식당으로 들어가 수제돈까스와 유부우동을 시켰다. 그리고 미리 준비했던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출발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매표소에 가서 귀경 차편을 알아보았으나 변경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개찰시간이 되어 열차에 올랐다. 지체라든가 언제 도착할지 등에 대한 걱정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두 시간여가 지난 후 정확한 도착시간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고민이었다. 계속 택시를 이용할 것인지 렌트를 할 것인지가 고민이었다. 결국 렌트를 하기로 해서 역 근처의 렌트 회사를 찾아갔다. 처음 찾아간 곳에서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차가 없다는 회신이었다. 결국 다른 렌트를 알아보러 갔다. 그리고 렌트를 해서 차를 몰고 가족이 있던 곳으로 와서 태우고 집으로 갔다. 렌트비에 보험료까지 지불하고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작년에는 큰아들과 갔었는데 이번에는 둘째와 가게 되었다. 집 앞에 정차한 후 짐을 내려놓고 인근에 있는 학교에 주차를 해놓고 집으로 들어왔다. 잠깐 쉬었다가 장을 보러나갔다. 먼저 남천동횟집으로 갔다. 대목이라 그런지 손님이 무척이나 많고 붐볐다.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나는 것 같았다. 회를 떠고 포장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옆 상점에는 진귀한 것이 있어 깜짝 놀랐다. 자연산전복이었다. 때깔자체가 틀렸다. 일반적으로 양식한 전복은 초록색인데 반해 자연산은 검붉은 색을 띄었다. 킬로그램 당 가격도 자연산의 배 수준이었다. 다음은 마트를 갈 차례였다. 선물용으로 생활용품세트 네 개와 식용유세트 6개를 샀다. 그리고 돼지갈비와 수육용을 사 가지고 귀가했다. 오후에 나갔던 것이 장을 봐오고 나니 저녁때가 되어 있었다. 회에 저녁을 먹었다. 부친도 약속이 있다며 나갔던 터라 식구는 우리식구와 모친뿐이었다. 조카들도 왔다가 심심하다고 가버린 뒤였다. 저녁 늦게 서야 해운대 형님들이 몰려왔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도 같이 왔다. 풋풋했고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울산에 살고 있었는데 회를 포장해오기도 했다. 한 상 가득차려 내놓았어도 먹는 것이 시원찮았다. 결국 약주를 먹다가 와인으로 술을 바꿨다. 세상살이 얘기들이 오갔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자리를 파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은 명절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단장을 하고 차례를 지내러갈 준비를 했다. 얼마 후 조카애 둘이 왔다. 같이 간단히 식혜로 요기를 하고 큰집으로 출발했다. 너무 이른 시간 이어서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먼저 상부터 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촛불을 켜고 향불을 피웠다. 병풍을 둘렀다. 그리고 제사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제기를 꺼내놓고 하나하나 음식들을 제기에 옮겨놓기 시작했다. 대추, , , 감 순으로 놓고 다음은 사과 포도 참외 메론 바나나 등을 한 줄로 늘어놓았다. 다음은 각종 전이었고 그 다음은 나물, 생선, 수육 등이었다. 한 시간여의 준비과정을 거쳐 제사상이 마련되었다. 오촌들은 자기네끼리 제사를 모시고 성묘를 가는 것으로 계획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제사를 모시고 식사를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본래 집사람이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가는 것으로 하려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결국 차를 몰고 집에 부친과 조카 애 둘을 내려두고 아들과 둘이서 다시 두 번째로 차례를 지내러갔다. 두 번째 차례를 모시고 이제는 아들을 집에 내려 주고 렌트카를 반납하러 가야했다. 반납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조금 일찍 도착했기에 혹시 문이 닫혀있을까 걱정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전철로 귀가했다. 부산지하철을 둘러보았다. 서울에 비하면 그 규모가 작았지만 여러 가지로 잘 짜여있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한숨 잤다. 축구 국가대표 경기가 벌어졌다. 우루과이와의 경기였다. 실력차이가 워낙 커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밤에는 한가위 달을 보러갔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역대 최대의 슈퍼문이 될 것이라고 대서특필되었다. 갑오년의 한가위도 이렇게 저물어갔다. 모두들 세월호 때문인지 침울한 분위기였고 경기도 많이 침체된 듯했다. 집 앞은 재개발이 한창이라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미 지어져있던 건물들을 뜯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보상에 불만을 품은 이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해 놓은 상황이라고 했다. 추석민심도 흉흉한 느낌이었다. 세상살이가 다 팍팍한 느낌을 지울 길이 없었다. 류현진의 15승 도전도 불발로 끝났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아침 일찍 KTX를 타고 돌아왔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극명했다. 대체휴일 등으로 인해 왔다 갔다 하는 기간이 길었던 탓에 예년과 같은 극심한 정체나 혼란은 빚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해외로 나간 이들도 많았기에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추석을 보내지 않았나 싶었다. 이제는 새로운 기분과 각오로 또다시 힘을 내고 미래의 사랑과 행복을 위해 모두 열심히 일에 매진하여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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