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고귀한 분을 모시면서

by 자한형 2023. 4. 10.
728x90

고귀한 분(VVIP)을 모시면서

 

 

지금으로부터 두 달전 쯤이었다. 연수원에서 초청강사로 전임회장님을 모시게 되었다. 한창 봄기운이 무르익어가던 때였고 신록의 푸르럼이 하루가 다르게 더해가던 시기였다. 오후 늦은 강의였지만 연수원에서의 강의로는 처음이었기에 무척이나 조심스러웠고 긴장되는 분위기였었다. 서울 중심부였던 댁에까지 가서 모셔 오는 것으로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다른 일정이 있어서 오후 세시쯤에 프레스센터로 오라는 전언을 받았다. 거의 충분히 여유롭게 시간을 잡는다고 해서 1시간을 잡고 연수원에서 출발했다. 역시 서울시내의 교통사정은 평일이라고 해서 여유롭고 한적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은 거의 3시가 다되어서야 도착이 되었다. 전화를 드리니 당신께서 직접 정문으로 나오시겠다고 해서 정문에서 대기했다. 오랫동안 농협생활을 하였고 한 때는 국회의원까지 역임하셨던 터라 연륜과 관록이 몸에 베여 있는 듯했다. 동승해서 연수원까지 오는 내내 강의 주제와 교육대상자 등에 관해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고 연수원의 현황과 운영내용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을 드렸다. 현역시절 그 열정적이셨던 모습이나 활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형언할 수 없는 날카로운 눈빛은 여전했고 전체를 아우르는 관록과 통찰력은 더욱 빛을 발하는 형국이었다. 80여명의 여성 리더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도사업을 주도했던 얘기를 들려주시는 내내 교육장의 분위기는 숙연했고 엄숙했다. 한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강의시간내내 활기가 넘쳤고 팔순을 넘기신 노구를 이끌고 흔쾌히 강의에 나서주신 고귀한 분에 대해 아낌없는 성원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강연을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특유의 달변가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우레와 같은 사자후를 토하면서 강의에서 못다한 얘기들을 해 주셨다. 굳이 전철역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것을 그것은 결코 예의가 아니라고 해서 댁까지 모셔다 드렸다. 서울시내 퇴근길 교통정체는 하루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거의 두시간여가 소요되었다. 고귀하신 분을 모시면서 들었던 내용은 두어가지였다. 첫 번째는 우면산 사태와 관련된 것이었다. 몇 년전 얘기였는데 아직도 명확하게 결론지워진 것은 없는 듯했다. 그것이 과연 인재냐 자연재해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결론지워진 것이 없다. 보상이라고 구청에서 내어놓은 것이 백만원이었단다. 고귀한 분은 그것을 사양하셨단다. 그 이후 일정기간 동안 의료보험의 적용이 무보험으로 적용된 적이 있어서 사모님께서 병원치료시 잠깐 혜택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전부였단다.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은 어떤 일이든 민원을 제기하면 그것이 그렇게 제대로 수용되고 처리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행정이라는 것이 민원인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사업자 집단의 요청 요구에 의해 처리되고 운영되는 것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국회의원까지 지낸 사람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묵살하고 외면하기 일쑤인데 일반 국민이 요청할 경우에는 더욱 목불인견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구청에서는 행사만 있으면 꼭 초대를 해서 얼굴마담 노릇을 자주 시킨다는 것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경우라는 것이다. 두 번째 얘기는 재임 시절 있었던 군납에 관련된 얘기였다. 중앙회장에 대한 직선제가 실시되었고 초대 직선 회장이 되었다. 조합장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렇게 하는 와중에 고랭지 배추의 주산지 조합장들과는 약속을 했고 공약으로 내 건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배추의 가격을 인상해 납품하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군납에 대한 계약을 체결할 때 보니 국방부에서 난색을 표했다는 것이다. 가격인상은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군납계약은 무산되었다. 당시 국방장관은 육사출신은 실세였는데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단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기는 했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한동안 군인들은 배추를 농협을 통해 공급을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되었고 여러 가지 압력도 있었고 질타도 이어졌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고 대안도 없었다. 고귀한 분은 유일무이하게 농협직원에서 시작해서 최고의 지위까지 오른 분이었다. 처음에는 청와대에 파견되어 했었고 새마을 지도자 연수원에서 새마을 정신을 교육하고 지도하기도 했다. 30대에 서울시조합 전무를 역임했다고 하니 그 당시로서도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고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그분을 배알한 것은 1993년이었다. 한강변의 어느 숙박업소에서 승진시험 문제를 출제하러 차출당해 있을 때였다.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회장님께서 직접 시험 출제장에 격려차 오신 것이었다. 20여명의 출제자들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하셨고 그리고 일일이 격려를 해주신 후에 돌아 가셨다. 그 때 그분이 한 말씀 중에는 자신이 농협에서 거의 모든 일을 겪었던 것 같은데 출제위원은 해보지 못했다는 얘기를 했었다. 지엄해 보였고 범상치 못한 위엄에 압도당했던 순간이었다. 회장이 되었어도 쌀수입개방반대 100만인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었고 농업인의 이익과 보호를 위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농업인 대변자였었다. 철두철미하게 농업인 본위로 정책이나 업무를 추진하고자 했었고 그렇게 농업인의 실익 또는 편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진력을 다했었다. 고귀한 분을 모시기 전이었다. 또한분의 고귀한 분을 잠깐 연수원에서 뵐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은 그런 얘기를 하시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변화가 되었는데 예전에는 꼭 그렇게 했었다면서 하는 얘기가 그것이었다. 기획예산처장관 등 실세 장관들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가서 일을 하도록 했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 시절 얘기였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그렇게 해야 농림분야의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고 충분한 농정을 펼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언제라도 대통령을 만나면 꼭 그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자신의 소회를 피력하였다. 평생에 고귀한 분을 만날 기회가 자주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가졌다는 것에서 가슴 뿌듯함이 긴 여운으로 남겨져 있을 것이고 그분의 뜻이나 기상 의지를 꼭 간직하고 마음속 깊이 담아 두어야 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 어느 교수님이 얘기한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최고의 사람을 만나게 하라는 것이었다. 자녀교육에서도 최고의 가치있는 것은 그 분야의 최고인 사람을 만나게 해서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꿈을 갖게 하라는 것이었다. 클린턴도 어린시절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서 대통령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반총장도 어린시절 케네디 대통령을 배알 했단다.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는 세가지 꿈을 가졌단다. 영화배우가 되는 것 두 번째 케네디가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 세 번째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는 것이었단다. 세가지 꿈을 모두 이뤘단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 꿈을 이뤄가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고귀한 분을 모시면서 모든 꿈을 이뤘던 성공한 성취자의 면모를 가까이에서 뵐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에서 큰 보람이 있었던 듯하다. 항상 건승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길 기원해 본다.

 

'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사봉을 찾아서  (0) 2023.04.15
교통범칙금  (1) 2023.04.10
고객에게 행복을 배달하는 기업  (0) 2023.04.10
계룡산을 오르며  (0) 2023.04.10
검은 베일 속의 백합  (0) 2023.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