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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마주친 100개의 인생(딴지일보연재물 등)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by 자한형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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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임권산

기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 리영희, 우상과 이성-

long long time ago, 옛날 아주 먼 옛날, 우리나라에도 기자라는 분들이 있었다. 진실 보도와 권력 감시에 대한 사명감으로 직장을 잃거나 심지어 감옥에 가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분들 말이다. 조선일보(놀랍게도) 기자 출신인 리영희 같은 분은 박정희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4번의 해직과 5번의 구속을 당했다. 지금까지도 명저로 평가받는 전환 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2년의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세월이 흐르며 급격하게 사회가 변화했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는 무르익다 못해 터질 정도가 되었으며, 인터넷과 SNS는 대중 속 전문가들에게 검증과 발언의 장을 만들어 주었다. 군사,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에서 그들은 기사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언론과 기자들이 누리던 권위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게 되었다. 기자들은 변화된 환경 속에서 특권과 생계, 두 가지 모두를 보장해주는 직장을 지켜야 했다.

이리하여 적응자연선택이라는 냉정한 진화의 법칙에 따라 끝내 변신에 성공한 변이종이 탄생했으니 바로 기레기.

2019년 당시

압수수색 당하는 조국 장관 집 앞의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게 화이링~’을 외친

아리랑TV 문건영 기자(?!)

이들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진실이 아닌 언론 자본의 이익을 위한 클릭 유도가 되었다. 이들이 두들겨대는 자판은 권력 감시는 개뿔, ‘개인의 생계와 영달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이런 작금의 언론 현실에 대해 신문의 날인 지난 47,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언론자유를 주장하며 싸우다 해직된 원로 언론인들은,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다 보니 시민들은 걸핏하면 기자를 '기레기' 혹은 '기더기'라고 조롱한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의 작심한 길들이기로 언론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빠졌다라며 비판했다(출처 링크).

대략 2,000년 전, 사막의 선지자 예수는 갈릴리 호수의 어부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기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 그것은 바로 관종의 자질인 것이다.

일요일에 일어난 '기자 살인 사건'

일요일 저녁, 27살의 아름답고 우아한 이혼녀이자, ‘블로르나변호사 댁의 가정부인 카타리나 블룸은 자신을 수사하던 경찰 발터 뫼딩경사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고 나와 그녀를 보곤 놀란 표정을 짓는 뫼딩 경사에게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조서를 작성하라고 말했다.

영화<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자신이 낮 1215분경 자기 아파트에서 베르너 퇴트게스 기자를 총으로 살해했으며, 뫼딩이 아파트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그를 데려갈수 있을 거라고 했고, 그녀 자신은 1225분에서 저녁 7시까지 후회의 감정을 느껴 보기 위해 시내를 이리저리 배회했지만, 조금도 후회되는 바를 찾지 못했노라고.

그리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어서 자신을 체포하라고, 그래서 자신도 사랑하는 루트비히 괴텐이 있는 곳으로 가겠노라고.

카타리나 블룸이 사는 법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과 광산 노동에서 얻은 폐병으로 서른일곱 살에 죽었다. 그녀가 여섯 살일 때였다. 그녀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돈을 벌어야 했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암에 걸려 병상에 누워야 했으며, 하나뿐인 오빠는 절도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 모든 것을 그녀가 책임져야 했다. 더구나 방직공인 전 남편 브레틀로와의 결혼 생활은 더 끔찍한 것이었다. 남편인 그가 블룸에게 보여준 것은 다정함이 아니라 치근댐이었다. ‘치근댐은 그녀가 그동안 수도 없이 경험한 것이었다. 블룸은 자신이 이혼의 책임을 지고 반년 만에 결혼 생활을 끝냈다.

블룸은 정육점 가정부부터 유치원 관리인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와중에도 대모인 볼터스하임이 교사로 있는 생활과학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야간 강습 및 평생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국가 공인 가정관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가난했고 힘든 삶이지만, 그녀는 자신에 삶에 대한 충실함과 자긍심을 잃지 않았다.

블로르나 부부는 나에게 무척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큰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블로르나 부인은 내가 남쪽 위성도시의 아파트, 그러니까 강가에서 우아하게 살자라는 모토로 광고하던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녀의 근면성실함이 블로르나 부부를 사로잡았다. 부부는 블롬의 아파트 장만을 위한 신용대출에 보증을 서 줬으며 월급을 계산할 때 식대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때로는 그녀의 손에 먹을 것을 슬쩍슬쩍 쥐여주며 그녀를 격려했다. 블룸은 중고 폴크스바겐을 장만했다.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블로르나 댁의 일이 끝나면 두 시간 정도를 다른 집에서 또 일했다.

주말에도 프리랜서 관리인으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리고 아껴 썼다. 그녀는 성실하게 아파트 대출금을 상환해 나갔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차곡차곡 자신의 인생 기반을 만들어 나가는 것, 이것이 그녀가 사는 방법이었다.

4일 전 수요일의 댄스 파티

수요일 밤, ‘여성 카니발(독일 라인 지방의 축제)’ 전날 밤이었다. 카타리나 블룸은 자신의 대모이자 친구인 볼터스하임의 집에서 열리는 작은 댄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댄스 파티 초대에 좋아하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가정부로 일하는 집의 블로르나 부부는 2주 치 임금과 휴가를 내주었다. 그동안 성실하게 빈틈없이 일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리고 자신들도 스키장으로 겨울 휴가를 떠나니 오랜만에 즐겁게 지내라고 따뜻하게 격려해주었다.

이제 여기서 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은, 블룸 앞에는 끔찍스러운 일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카타리나 블룸, 그녀는 이 댄스 파티에 참석하지 말았어야 했다. 참석하더라도 그, 루트비히 괴텐과 춤을 추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 경험해보는 괴텐의 다정함에 빠지지 말았어야 했다. 평생을 어렵게 일만 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주어진 휴가, 그리고 몇 년 만에 추어보는 춤. 이것들이 선사한 들뜬 기분 속에서 블룸은 괴텐을 만났고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다. 그녀가 처음 경험해보는 이성에 대한 감정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그런 카타리나가 괴텐을 보자마자 독차지하다시피 하고는 저녁 내내 그와 춤을 추었을 때 전 더더욱 놀랐죠. 그들은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이 같았거든요.”

둘은 파티가 끝난 후 블룸의 아파트로 향했고, 이 사랑이 카타리나 블룸의 인생을 지옥으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