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2/임권산
목요일, 체포된 카타리나
목요일 오전, ‘바이츠메네’ 수사과장은 중무장한 여덟 명의 경찰관과 함께 블룸의 아파트를 덮쳤다. 그들이 일 년간 추적해온 은행강도이자 살인 용의자인 괴텐이 그녀의 아파트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 앞에 괴텐은 없었고 블룸만이 속옷 없이 목욕 가운을 걸치고 서 있었다. 바이츠메네가 블룸에게 던진 첫마디는 “그자가 너랑 붙어먹었지?”였다.
「카타리나 블룸은 욕실에 들어가 플레처 여경이 보는 앞에서 옷을 입어야 했다. 그런데도 욕실 문을 완전히 닫지 못하게 했다. 그 문 앞을 무장한 경찰 두 명이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경찰은 블룸의 아파트를 샅샅이 뒤졌다. 몇 가지 물건, 특히 서류 종류는 전부 압수했다. 그런 그들 앞에서도 그녀는 의연했다. 그녀는 경찰들에게 계속 왜 이러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계속해서 물었으나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체포되었다. 경찰은 그녀에게 구속 가능성이 있으니 잠옷과 약간의 화장품, 그리고 읽을거리를 챙기라고 충고했다.
그녀가 경찰에 끌려 나왔을 때, 이 10층짜리 아파트의 로비에는 주민들 30여 명이 모여 있었고 인기 신문사인 ‘차이퉁’ 지(紙)의 사진기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면에서, 뒤에서, 옆에서 수차례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부끄럽고 당혹스러워 자꾸 얼굴을 가리려 했고, 그 와중에 그녀의 핸드백, 화장품 케이스 그리고 두 권의 책과 필기도구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와 부딪히면서 머리가 헝클어지고 표정은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대로 사진에 찍혔다.」
카타리나에 대한 심문이 진행되었으나 경찰은 어떤 소득도 얻지 못했다. 카타리나는 기진맥진했으나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뫼딩 경사는 그녀가 엄청난 테러단의 음모에 관련되었다는 바이츠메네 수사과장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결국 경찰은 그녀를 일단 석방했다. 뫼딩 경사가 그녀를 아파트로 데려다주었다. 카타리나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뫼딩 경사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충고했다.
「“전화에는 아예 손대지 마십시오. 내일 신문도 펼치지 마시고요.”」
포르쉐를 타는 기자의 취재법
스키장의 블로르나 부부에게 차이퉁 지의 ‘그 녀석’이 나타난 순간, 부부는 휴가를 망쳤다. 포르쉐를 타고 온 그 녀석은 바로 차이퉁 지의 기자인 퇴트게스였다. 퇴트게스는 부부에게 다짜고짜 카타리나에 대해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그는 카타리나가 오래전부터 수배 중이던 강도와 잔 게 확실하고 대략 오전 11시부터 심문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신문의 1면 기삿거리가 될 것이니 카타리나의 성격에 대해 말해 달라고 졸라댔다.
변호사인 블로르나는 카타리나에게 큰 위기가 닥쳤음을 직감했다. 그는 휴가를 접고 빨리 돌아가 그녀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블로르나가 화난 목소리로 기자에게 ‘카타리나는 매우 영리하고 이성적인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휴가지를 떠날 채비를 할 때, 퇴트게스는 올 때처럼 포르쉐를 타고 떠났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행선지는 카타리나의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이었다.
「블룸 부인은 어려운 암 수술을 치른 뒤라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희복은 바로 그녀가 어떤 자극에도 노출되지 않는 데 달려 있기 때문에 인터뷰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기자 정신(!)으로 충만한 이 작자에게는 의사의 충고와 경고도 전혀 소용없었다. 퇴트게스는 이 건물에서 몇몇 페인트공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 올리고는 변장을 하고 기어코 카타리나 어머니의 병실로 밀고 들어갔다. 아무리 아픈 환자라 해도 어머니의 말은 대단한 특종이 될 터였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블룸의 어머니에게는 이 모든 것이 충격과 당혹감일 뿐이었다. 퇴트게스는 기사를 ‘창작’했다.
「블룸 부인의 진술을 다소 바꾼 것에 대해 그는 기자로서 “단순한 사람들의 표현을 도우려는” 생각에서 그랬고, 자신은 그런 데 익숙하다고 해명했다.」
금요일의 특종 기사와 두 번째 심문
금요일 아침, 블로르나는 그의 아내가 건네준 차이퉁 지를 받았다. 그 신문의 1면은 온통 카타리나에 관한 기사들뿐이었다. 엄청나게 큰 사진, 아주 굵은 활자들. 그 기사들 속에서 카타리나는 강도의 내연녀가 되어 있었고 그녀는 아주 오래전부터 괴텐의 음모에 연루된 공범자였다. 카타리나의 자랑이었던 아파트는 그녀가 은행에서 괴텐이 강탈한 돈의 분배에 관여했다는 의심의 증거로 둔갑해 있었고, 카타리나의 낡은 폴크스바겐은 포르쉐로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매력적인 그녀의 외모는 ‘창녀’로 의심까지 받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블로르나가 퇴트게스에게 말한 ‘카타리나는 영리하고 이성적’이라는 표현은 ‘얼음처럼 차고 계산적이다’로, 카타리나의 어머니의 ‘왜 그런 결말이 날 수밖에 없었을까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라는 말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듯이,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겠지요.’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쓰레기를, 한 사람을 세상 끝까지 추적하는 이 빌어먹을 쓰레기를” 읽고 또 읽었지만, 읽을수록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신문을 읽는 변호사 블로르나와 그의 아내
금요일, 다시 불려온 카타리나에 대한 두 번째 심문이 진행되었다. 경찰은 그녀의 집에서 압수한 물품들을 뒤지며 그녀를 심문했다. 그들이 압수한 것 중 작고 낡은 초록색 수첩. 그것은 카타리나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삶을 기록한 것이었다. 경찰이 압수한 것은 수첩이 아니라 그녀의 삶이었고 그녀는 경찰들 앞에 벌거벗겨졌다.
그녀의 가계부에 적힌 폴크스바겐의 주행거리까지 따져보는 치밀한 심문이었지만, 그 어떤 자료에서도 괴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카타리나가 괴텐의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로써 사실상 카타리나에 대한 경찰의 심문은 종결된 것으로 보아야 했다.
「이 순간에야 비로소 카타리나는 이틀 치 ‘차이퉁’을 핸드백에서 꺼내 보고, 국가가(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런 오욕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고 그녀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지 물었다.」
카타리나는 왜 자신에 대한 심문이 ‘삶의 세세한 구석까지 파고드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수첩을 봐야만 알 수 있는 정보들, 마치 자신에 대한 심문 과정을 지켜본 것 같은 내용들. 예를 들면 어머니의 병원, 이혼한 남편, 심지어 어릴 때 다닌 교회의 신부님과 자신의 차가 없던 시절에 그녀를 아파트로 데려다준 ‘신사들’의 존재까지.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기자가 알 수 있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심문할 때 거론된 세세한 사항, 신사의 방문 같은 문제들을 어떻게 ‘차이퉁’이 알게 되었는지, 게다가 어떻게 하나같이 왜곡되고 오도된 진술로 알게 되었는지 그녀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카타리나의 이 모든 질문에 그녀를 심문한 젊은 검사는 중대한 사건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당연한 권리이며, 사실과 다른 모욕적인 세부 사항들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다였다. 이후 카타리나는 경찰 측이 제공한 모든 식사와 그들과의 대화마저 거부한 채 무감각한 표정으로 오로지 ‘차이퉁’을 읽고 또 읽었다.
'책에서 마주친 100개의 인생(딴지일보연재물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래 (1) | 2023.04.20 |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3 (0) | 2023.04.17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0) | 2023.04.17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3 (2) | 2023.04.16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2 (2) | 2023.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