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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마주친 100개의 인생(딴지일보연재물 등)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3

by 자한형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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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3/임권산

토요일, 어머니의 죽음과 그녀의 통곡

살인범 약혼녀 여전히 완강! 괴텐의 소재에 대한 언급 회피! 경찰 초비상!

여러분에게 종합적인 정보를 드리고자 항상 노력하는 차이퉁은 블룸의 성격과 불투명한 과거를 밝혀 줄 진술을 추가로 수집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모든 게 분명해집니다. 우리의 소박한 행복에 그녀는 만족하지 못했던 거죠. 그녀는 출세하고 싶었던 겁니다. 어떻게 올곧고 소박한 노동자가 포르쉐를 탈 수 있겠습니까?

토요일 아침에도 차이퉁1면은 카타리나 차지였다. 이번에는 헤어진 전 남편의 인터뷰 기사까지 실려 있었다. 카타리나의 인생은 변질되었다. 세세한 그녀의 일상 하나하나가 모두 파괴되었다. 그녀가 볼터스하임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부터 그랬다. 함께 탄 두 명의 주민은 그 좁은 공간에서 그녀와 거리를 두려고 했으며 카타리나를 거리낌 없이 훑어보는 눈빛은 오직 호기심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전화들이 와댔고 우편함에는 우편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볼터스하임 부인은 카타리나가 전화를 받지 않길 바랐고 우편물을 읽어 보지 않길 바랐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수화기 속에서는 음탕한 말들과 욕설이 흘러나왔고, 우편물들은 섹스 용품 광고거나 종교 단체들이 보낸 충고가 담긴 홍보물들이었다.

블로르나 부인은 그 신문에 대해, 이 페스트가 세상 어디든 쫓아다니니 어느 곳도 안전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카타리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토요일이었다. 괴텐이 체포되었다. 체포 과정에서 괴텐은 부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괴텐은 무장강도나 살인범이 아니었고 탈영병이었으며 그가 턴 것은 군인 급여와 적립금이 들어 있는 금고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잡히자마자 제일 먼저 한 말은 카타리나는 자신이 저지른 짓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죽었다. 퇴트게스가 강제로 인터뷰한 다음 날인 바로 오늘 그녀의 어머니가 죽은 것이다.

그들이 시체 안치소를 떠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그러다가 격렬하게, 결국에는 엉엉 목 놓아 울었다.

다시 일요일, 그녀는 왜 기자를 쏘았는가

카타리나는 자신의 변호를 맡은 블로르나에게 범행 일체를 이야기했다. 뻔뻔스럽게도 퇴트게스는 그녀에게 인터뷰를 제의했고, 자신은 그것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인터뷰일은 그녀가 퇴트게스를 죽인 일요일이었다.

내가 기자들의 술집에 갔던 것은 그저 그를 한 번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인간이 어떻게 생겼고, 행동거지는 어떠하며, 말하고 마시고 춤추는 모습은 어떤지 알고 싶었습니다. 내 삶을 파괴한 바로 그 인간 말입니다.”

카타리나는 일요일 아침, 기자들이 모여드는 밥과 술을 파는 식당에 갔다고 했다. 인터뷰 전, 퇴트게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퇴트게스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녀는 장전한 권총을 가진 채 아파트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의 아파트는 더러워져 있었고 왠지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12시가 넘어가자 초인종이 울렸다고 했다. 문을 여니 퇴트게스가 서 있었다고 했다. 카타리나는 추잡한 느낌에 그자가 퇴트게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어이, 귀여운 블룸 양, 이제 우리 둘이 뭐 하지?’라고요. 난 한마디도 하지 않고 거실로 물러나며 피했지요. 그는 나를 따라 들어와서는 말했어요. ‘왜 날 그렇게 넋 놓고 보는 거지? 나의 귀여운 블룸 양. 우리 일단 섹스나 한탕 하는 게 어떨까?’

카타리나는 온갖 선정적이고 추잡한 기사로 자신을 음해하고 어머니를 죽게 만든 그의 입에서 섹스이야기가 나오자 권총을 꺼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를 쏘았다고 했다. 두 번, 세 번, 네 번. 정확히 몇 발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블로르나는 카타리나가 아마도 8년에서 10년 형 정도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의 출소 시기와 괴텐의 출소 시기가 엇비슷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차이퉁지를 떠올렸다. 자사 기자의 살해 소식에 대한 차이퉁지의 대응을.

광적인 흥분! 대서 특필. 1면 기사. 호외 발행. 통례를 벗어난 크기의 부고. 피살 사건이란 어디서나 늘 일어나는 것인데도, 마치 저널리스트 살인 사건은 뭔가 특별한 것인 양, 은행장이나 은행원 혹은 은행 강도 살인 사건보다 더 중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언론 폭력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

경찰, 군대, 감옥, ......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폭력입니다.

온몸을 문신으로 뒤덮은 폭력배 따위는 질적으로 비교조차 하지 못할 거대하고 막강한 폭력입니다. 이 폭력이 권력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폭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권력은 권력이 아닙니다. 강제성이 없고, 따라야 할 두려움이 없을 때 권력은 통치 기능을 상실합니다. 존재 이유가 없어집니다. 모든 권력은 곧 폭력입니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하고 톰 행크스와 메릴 스트립이 명연기를 펼치는 영화 더 포스트1971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뉴욕타임스지가 전쟁에 대한 미국 정부의 조작과 대국민 거짓말의 실상이 담긴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여 폭로합니다. 대통령 닉슨과 미 정부는 분노하여 뉴욕타임스를 고소하고 1심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 줍니다. 뉴욕타임스는 신문 발행 금지 처분을 받습니다.

이 사태 앞에서 워싱턴 포스트지는 갈등합니다. 역시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했고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상장을 앞둔 시점에서 뉴욕타임스 지처럼 발행 금지 처분을 받는다면 회사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워싱턴 포스트지는 진실을 선택하고, 두 언론사는 나란히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게 됩니다.

언론은 피치자에게 봉사하는 것이지 통치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 영화 더 포스트-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었습니다. 두 언론사는 승리했습니다. 이것이 언론이 해야 할 일입니다. 권력이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위임받았을 뿐인 폭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여 멋대로 휘두른다면 그보다 끔찍한 사태는 없을 것입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민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우리는 이 역할을 언론에 위임했습니다. 언론에 권력을 부여했습니다. 언론이 행정, 입법, 사법에 이은 4의 권력이 된 까닭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절대 권력도 그들(언론)만큼 항상 권력을 마구 휘두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언론 권력이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우리의 삶 곳곳에 영향을 끼지는 권력입니다. 그래서 더욱 강한 감시와 통제가 필요한 권력입니다. 모든 권력은 폭력이기에 언론 권력 역시 폭력이며 그것도 아주 친근하면서도 위험한 폭력입니다. 오늘 다룬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부제가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인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언론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자 마지막 세력이 모든 권력의 주인인 우리 자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언론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신문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더 빠르고 더 공신력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보의 바다, 즉 정보를 구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닌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권력의 자리는 자본이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변화된 현실 속에서 존폐의 기로에 선 한국 언론은 해결책으로 황색 저널리즘을 선택했습니다. ‘언론이 아닌 언론사라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으로 클릭질이나 유도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아닌 기레기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2022, SBS는 드디어 매출 1조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사가 흑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마흔 번째 인생 탐구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다가 황색 언론과 기레기에 의해 철저하게 망가져 버린 카타리나 블룸의 인생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앞의 서두에서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언론인의 사명을 다하다 해직된 분들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그 인용문처럼 윤석열 정권의 출범과 함께 본분을 망각한 언론, 감시자로서의 권력이 아닌 스스로 권력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언론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나날이 우리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카타리나 블룸의 망가진 인생이 소설 속 독일 여자가 아닌 나 자신의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4의 권력인 언론. 그 언론이 자신의 권력을 본분에 맞게 행사하도록 감시하고 견인하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을 보호하고 내 인생의 가치를 지켜 나가는 길이 아닐까 하는 뜻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