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를 찾아서
얼마 전 작심을 하고 부부가 휴가를 떠났다. 가니 마니 하다가 겨우 달래고 설득을 해서 하라는 대로 다한다는 다짐을 하고 가는 여행이었다. 요즘은 여행이 대세인 듯하다. 국내여행보다는 국제여행이 더 운치가 있고 각광을 받는 시대이다. 아들의 아침을 챙겨주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섰다. 시간은 아홉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남쪽에서 태풍이온다고 하더니 그리 썩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무더위가 심할 때였는데 하필이면 비까지 내린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부푼 기대와 흥분된 가슴을 안고 출발했다.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휴가철이라 길이 제법 막힐 줄 알았는데 도심을 벗어나자 한가로웠다. 두 시간여를 달린 후에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을 했다. 얼마 만에 떠난 오붓한 여행인 줄 아느냐고 윽박지르는 통에 주눅이 잔뜩 들었다. 끽소리도 못 내고 숨죽인 채 마누라의 비위를 맞추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예정했던 고창의 한 식당에 들어서니 이미 점심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고창을 또 한참 지나오니 한가한 느낌이 들었다. 길가에는 온통 풍천장어라고 광고판을 대대적으로 널어놓았거나 원조라는 글귀가 즐비했다. 간간히 셀프라는 팻말도 보였다. 풍천이라는 것을 원래 지명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 데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곳을 일러 풍천이라고 한단다. 그곳에서 잡힌 장어가 제대로 힘을 쓰고 보신용으로 각광을 받는가보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손님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1킬로그램을 시켰다. 숯불이 들어오고 밑반찬이 들어왔다. 세트처럼 되어 있고 정형화된 것이어서 별로 색다를 것도 없었다. 물김치가 좀 이색적이었다. 곧바로 불판이 준비되었고 초벌구이를 한 장어가 세 마리 화로위에 올려졌다. 집게와 가위로 적절한 크기로 잘려졌고 맛있게 구워졌다. 이젠 시식을 할 차례였다. 그전에 요즘 대세인 핸드폰으로 촬영이 먼저 이루어졌다. 깻잎이나 상추로 장어를 한 점 올려놓은 후 마늘과 생강을 올려놓고 한 잎 가득 털어 넣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장어가 동이 났다. 밥도 먹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계산을 하고 음식점을 나왔다. 명함을 챙겨두는 센스까지 발휘하였다. 본래는 구석진 곳에 자리했었는데 지금은 길옆으로 나와 제대로 양식장을 갖추고 영업을 하는 집으로 추천을 받았던 곳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선운사로 떠날 차례였다. 예전에 선운사를 가보지도 않았다고 해서 한차례 핀잔을 받은 적이 있어서 오기로라도 꼭 선운사를 가보고자 했었는데 그 소원을 푸는 셈이 되었다. 절로 들어가는 초입이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르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영업점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유스호스텔 등도 보였다. 넓은 주차장이 관광명소로서의 명성에 걸맞아 보였다. 버스가 정차할 터미널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는 대단한 이름값을 하는 것 같았다. 입장료를 내야하는데 집사람의 유공자증으로 인해 면제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니 사찰이 나왔다. 활짝 핀 백일홍이 우리를 반겼다. 대웅전 뒤편에는 울창한 동백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일하는 분들이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선운사의 유명한 것은 꽃무릇이라는 것이었다. 9월 상순이 되면 그 꽃무릇이 피워 온통 붉게 물들인다. 혹자는 이를 상사화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곳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흔적을 남기고자했다.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에서 라는 시도 있었고 노래도 있었던 듯했다. 농협도 자리해서 금융업무도 했고 특산물매장도 있었다. 거의 실익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는 듯 여겨졌다. 지점장과 직원 둘이 근무해보였는데 참 한가한 사무소라고도 반대로 힘든 곳에서 고생한다고 여겨질 수도 있을 듯했다. 이제 선운사를 다녀왔으니 선운사도 못가본이라는 핀잔은 듣지 않겠지 내심 으슥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연등이 줄지어 달려있었다. 등에는 축원자들의 성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앞쪽에는 찻집이 있었는데 셀프였고 요금도 보시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온수를 받아서 차를 마셨고 대접에 또다시 온수를 받아서 설거지를 하고 나오는 형태였다. 탁자 중간에는 반야심경 등 불법관련 서적이 두 권 놓여있었다. 그리고 찻집의 중앙에는 이젤에 받쳐진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선운사의 풍경이 사계절로 나눠져 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로 아름다운 풍광을 유감없이 자랑하고 있었다. 예전에도 이 부근을 한 번 다녀간 적은 있었는데 절은 오지 못했다. 단지 장어와 복분자만 맛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선운사 부근이었다는 기억만 간직한 상태였다.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했음에도 집사람은 그냥 가자고 했다. 아주 오래전 학창시절에 집사람은 한 번 다녀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던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날씨가 좀 더 좋았더라면 많은 사람이 몰려왔을 것 같았는데 날씨 탓인지 경기 탓인지 아무튼 관람객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변산에 위치해 있는 곳곳의 명소를 둘러볼 차례였다. 모항이라는 곳으로 갔다. 조그마한 해수욕장이었고 길도 좁았다. 쉽게 찾기도 할 것 같았지만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리조트 쪽으로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시 행선지를 바꿔 수성당이라는 곳에 갔다. 바다에 나가는 이들을 위해 제를 지내는 곳으로 아주 한적한 곳이었다. 여러 가지 제기들도 보였고 촛불도 밝혀져 있어 상당히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에 관한 드라마 촬영지도 돌아보아야 할 곳이었으나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조금 더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채석강이었다. 거의 바위산으로 여겨졌는데 그 속에 천연굴이 만들어져 있었고 생명력 강한 나무들이 그 아름드리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방파제로 길게 되어져 있는 끝자락에는 조그만 등대도 있었다. 방파제 가장자리에서는 낚시꾼들이 소일삼아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었다. 다음으로 가야할 곳은 부안의 명소로 유명한 바지락죽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원조집이 있었고 또 한 집은 명인의 집이라고 했다.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고 새만금에 가까이 있던 원조집으로 갔다. 간판도 손님을 압도할 정도였고 식당 내의 벽면에 부착된 방명록에는 저명인사들이 줄줄이 사인을 해놓았다. 더욱 독특한 것은 주인장과의 기념 촬영한 사진까지 걸려 있으니 의심 많은 우리 국민들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흔적들로 보아도 무방할 듯했다. 주인이 직접 고안하고 만들었다는 뽕잎바지락칼국수를 시켰다. 뽕잎파전도 하나 더 추가해서 맛을 보았다. 27년간의 결혼생활을 해왔는데 이렇게 부부간에 여행을 해본 것은 신혼여행 이후 처음인 듯했다. 연초에 집사람은 인도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전에도 핀란드 등 북구 여행도 있었고 미국도 두 차례 갔다 왔지만 모두 혼자서 간 것이었다. 다음부터는 집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 여행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모두 집사람이 하게 했으니 할 말이 없는 셈이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여행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서 멋진 추억이 되는 여행이야기를 많이 남기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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