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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의미있는 하루

by 자한형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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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하루

 

 

 

무릇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의미있는 하루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혹자는 그렇게 얘기한다. 인생이라는 것이 하루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에서 의지지워지고 그런 유의미해진 것이 쌓여져 가다보면 생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완성으로 되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얼마전 갑작스럽게 부고를 받았다. 평소 잘 알고 지냈던 선배분의 모친상이었다. 나름대로 급하게 머리를 굴리고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조합해서 결론을 내렸다. 반휴를 내어서라도 문상을 다녀와야 한다. 마침 교육이 종료된 시기이고 업무적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이 되었다. 37년전 그분의 부친상을 당했을 때가 회상되었다. 풋풋한 대학 초년생 시절 멋모르고 선배들을 따라 문상을 갔다. 발인하는 것도 보게 되었고 출상하여 하관하는 절차를 목도할 수 있었다. 좀 특이했던 부분은 주검을 관에 넣은 후에 그 시신을 고정시키기 위해 두루마리 휴지 등으로 여백을 채워넣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로간의 유대의 끈이 이렇게 오랫동안 존속되고 유지되어 온 것은 참으로 축복받을 일일 것이다. 선배는 이제 오랫동안 몸담았던 대기업에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이제는 학계에서 제2의 생을 구가하고 있는 상태에 있었다. 예전에는 한 때 국회의원 비서관을 했던 누님과도 세상사에 관해 의기투합해서 여러 가지 고견을 듣고 공감대를 갖기도 했었다. 항상 따뜻하게 맏형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고 모임을 주관했었던 분이기도 했다. 문상을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일단 차량을 집사람에게 맡겨야 했다. 그래서 교육청에 차량을 주차해 두고 집까지 끌고 가는 것은 집사람에게 부탁해 두었다. 경희궁 앞에서 택시로 서울역으로 향했다. 매표소에는 항상 그렇듯이 줄이 길게 서 있었다. 발권을 하니 230분발이었다. 도착예정시간은 57분이었다. 예전 같으면 부산으로의 문상이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통상 이용 했었던 것이 항공편을 이용해서 오고 갔었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그래도 KTX라는 것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날씨도 차갑지않고 포근한 겨울날씨여서 도움이 되었다. 앞좌석에는 연인처럼보이는 두남녀가 앉아 즐겁게 속삭이며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부산에 거의 도착할 때 쯤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광안리 횟집에서 회합을 하며 얘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문상을 간단히 마치고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부산역에 내려서는 곧바로 택시를 탔다. 용호동에 성모병원이 있었다. 예전의 병원으로는 성분도 병원이었고 메리놀 병원인 셈이었다. 두병원이 합쳐졌고 그것이 초량쪽에 있었는데 이제는 외곽쪽으로 이전한 상태라고 했다. 병원의 입구에 들어가서 보니 그 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상가에는 첫날이라 그런지 한산한 편이었다. 형제자매가 많은 탓이어서 그런지 조화가 무척이나 즐비했다. 거의 50여개 수준인 듯했다. 간단히 문상을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시 대기중인 택시에 올라 광안리 수변공원쪽으로 향했다. 부산의 날씨는 서울보다 더 포근한 것으로 여겨졌다. 국제연안부두 터미널이 제3부두쪽에 개소가 된 듯했다. 문제는 영도와 연결된 다리가 부두 터미널 앞쪽에 있었다. 그래서 다리를 통과할 수 있는 배 즉 10만톤급 이하는 터미널로 들어오고 대용량의 배들은 영도 한쪽에 따로 터미널이 마련되었다는 얘기였다. 10년앞을 내다보지 못한 결과라고 혀를 찼다. 택시로 오니 거리도 가까웠고 시간도 절약되었다. 약속시간보다 30분쯤은 일찍 왔다. 바로 창가로는 광안대교가 내려다 보였다. 조금 있으니 친구들이 몰려왔다. 셋이 왔는데 한친구는 자주 만났던 사이였고 한친구는 학창시절이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안면은 있었고 곧 알아볼 수 있었다. 핸드폰의 밧데리 용량이 다 되어 충전을 의뢰해 놓았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다음에 오는 친구는 연락을 핸드폰으로 했는데 계속 통화가 되지 않으니 그냥 돌아갈려고 하던 차에 다른 친구의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왔다. 좌정을 하고 얘기꽃을 피웠다. 한 친구는 대학에서 중국어 교수를 하고 있었고 또다른 친구는 인근해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중년의 나이답게 관록이 붙어 있었고 노숙함이 배어져 있는 듯했다. 한 친구가 운동화에 얽힌 부친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한국전쟁시기에 중학교에 다녔단다. 그런데 그 중학까지의 거리가 25키로미터 였단다. 월요일마다 배낭에 양식을 싣고 그 먼길을 걸어서 가야했고 금요일이면 빈 배낭을 메고 돌아왔단다. 본래는 고무신을 신고 다녔는데 어느날 부모님이 큰맘 먹고 농구화같은 운동화를 한 켤레 사주었단다. 얼마나 기쁜 마음에 그것을 어깨에 두르고 가던 차에 빨치산을 만났단다. 그러자 그사람은 신발의 닳음이 극에 달해 있었다. 고무신의 밑바닥이 다 헤어져 그것을 감추기 위해 전기선으로 신발을 동여맨채로 신고 다니던 형편이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웃지못할 얘기였다. 술을 제조해서 먹는 방법이 특이했다. 레몬을 쓸어온 것을 얼음과 함께 섞어서 컵에 넣고 술을 따라서 칵테일을 해서 먹는 식이었다. 술의 도수가 매우 약해지는 듯했고 취기도 쉽게 오르지 않는 듯했다. 다섯명이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금새 야심한 시간이 되었다. 결국 네사람을 남겨둔채 아쉬움을 뒤로하고 상경길에 올랐다. 그래도 친구들 덕에 유익하고 알찬시간을 보냈고 즐거움이 있었던 듯했다. 모두들 항상 새해를 맞아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의미있는 하루를 많이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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