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강에서
얼마전 지난달부터 계획하고 기다려 왔던 모임이 드디어 개최되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한사람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또 한사람은 런던에서 정말 말 그대로 지구반대편에서 두 사람은 10시간이상의 비행을 거쳐서 온 것이었다. 전체 모인 사람은 11명이었다. 당초 예약을 8명으로 했었는데 3명이나 넘친 것이다. 지하철 3호선 남부터너미널 역 3번 출구 500미터 지점 채석강이란 횟집이었다. 세꼬시로 유명한 집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생소한 장소여서 다들 그곳을 찾는 데 애로를 겪었다. 브라질에서 오는 친구는 거의 1년만에 나온 것이었다. 그곳으로 들어간 지 거의 20년이 다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는 브라질에서 나올 때도 되었음에도 아직도 그곳에 더 있어야 한단다. 이제는 장년의 모습이었고 관록이 붙은 모습이었다. 여전히 런닝을 즐기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음에도 세월의 덫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제법 몸이 불어난 모습이었다. 본래 모일 장소에 관한 의사타진을 했을 때에는 숙소에 가까운 지역을 원했는데 찾다보니 그렇게 전철역 부근의 낯선 곳을 약속장소로 정하게 되었다. 인원이 예정인원을 초과하게 되어 걱정이 된 부분이 있었는데 8인을 넘길 경우에는 홀로 장소를 변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인터넷을 검색하고 댓글 등을 통해 그래도 좋은 식당이라는 평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선정한 곳이 채석강이었다. 검색을 하면 부안쪽의 채석강이 나온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은 서초 채석강으로 해야 제대로 검색이 되는 상황이었다. 런던의 김사장은 3-4개월마다 한번씩 귀국을 하기 때문에 브라질 박사장의 일정에 런던 김사장이 그 기간을 조정한 결과로 이렇게 회합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제일 먼저 온 사람은 권사장이었다. 얼마전 조그만 회사에 들어갔는데 대표를 맡고 있었고 사무실은 분당쪽에 있었다. 현대에 있기도 했고 SK의 임원으로 얼마전까지 재직했었다. 집은 용인 수지쪽에 있었다. 월급쟁이 사장으로 근무중인 셈이었다. 다음은 최선배였다. 이번 모임에서 최고 연장자였고 3년전에 LG에서 퇴직해서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형수께서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덕에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새롭게 일을 시작해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다음은 남사장이었다. 모두들 낯설어 하는 이였는데 알고 보니 김사장과 절친이었고 의기투합했었던 이였다. 고교 동창은 아니었지만 서로 뜻이 통하는 사이였고 예전에도 몇 번씩은 다 만난 적이 있었다. 조그만 중소업체를 경영하고 있었다. 학창시절 영문학을 했었는데 무역학쪽에 관심을 가졌고 김사장은 영문학쪽에 기웃거리다가 의기투합해서 절친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다음은 정이사였다. 4년전에 롯데제과의 임원이었다가 이제는 퇴직해서 조용히 생활하고 있었다. 아들도 결혼을 시킨바 있었다. 주로 일본쪽에 오랫동안 근무한 분으로 일본에 정통해 있었고 마케팅쪽에 강점이 있었다. 다음은 마사장이었다. 물류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본래 다른 일정이 있어 본래는 좀 늦게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그쪽 대해서는 양해를 구하고 이쪽으로 온 것이었다. 감기가 걸려 몸상태가 정상이 아님에도 기꺼이 참석을 해 주었다. 이제는 손녀가 두 살이 되어 온갖 재롱을 다 떤다고 너스레를 풀었다. 다음은 박박사였다. 본래 대전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모임참석이 어렵다고 했는데 어려운 걸음을 해 주었다. 건강검진이 있어 그것을 받고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온 셈이었다. 이번에 자녀들이 큰 일을 해내 한숨돌린 상황이었다. 아들이 경희대 치과대학에 입학을 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공기업에서 자녀 학자금을 다 지원해 주었는데 이제는 그 지원이 종료되었다고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두자녀의 학비로 반기마다 거의 천만원에 육박하는 학자금을 마련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다음은 김사장이었다. 오랫동안 금융쪽에 근무를 하다 은퇴를 하고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전혀 생소한 마케팅이나 유통쪽으로 해서 제대로 업을 가져 보려 하고 있었다. 아들이 의과대학의 졸업반에 다니고 있었다. 증권쪽에 전관예우 차원에서 시도를 해보려 했는데 그것은 겨우 2년 정도밖에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예 좀 더 오래할 수 있고 제대로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고 했다. 11명이 되다보니 자리가 비좁은 상태에서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10시에 영업을 종료한다고 하니 계속 있을 수도 없었다. 안주인 세꼬시에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사는 얘기들을 했다. 브라질의 박사장을 딸이 한명 있었는데 올해가 졸업반이라고 했다. 부녀간에 같이 운동도 하고 골프도 할 수 있으니 매우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미국 동부에서 학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런던에서 온 김사장의 딸은 아직도 취업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상태인데 그 능력을 사장시키는 것은 큰 손실로 보였다. 본래 모임에 올려고 했던 박상무님이 갑자기 상가를 갈 일이 생겨 결국은 참석을 못하고 결국 전화로 통화하면서 그 아쉬움을 달랬다. 다음은 K그룹의 김전무였다. 갑작스럽게 지방출장이 잡히는 바람에 결국 자리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채석강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떠들썩했고 시끌벅적했다. 수시로 여종업원들이 왔다갔다를 했는데 안주는 항상 부족한 듯했다. 결국 나중에는 여종업원에게 부탁해서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하기도 했다. 시간이 초과되어 결국 맥주를 한잔씩 더하고 모임을 파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일부는 귀가 하는 등 돌아갈 뜻을 비치기도 했으나 결국 나중에는 다 2차를 가는 결과가 되었다. 세계의 맥주가 있는 집이었다. 그곳에서의 계산은 남사장이 하기로 했다. 안주는 기본으로 하고 피쳐를 시켜서 먹었다. 피쳐도 거의 10번을 시킨 듯했다. 본래 최선배가 하려 했는데 결국은 남사장이 총대를 맸다. 최선배는 은퇴후 브라질을 한번 다녀온 경험이 있기도 해서 브라질 박사장과 돈독한 사이이기도 했다. 모든 자리가 파하고 나니 자정이 지나 있었다. 다음날이 휴일도 아니고 평일 이었기에 더 이상 자리를 계속하는 것은 무리였다. 런던의 김사장도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모두들 택시로 귀가길을 서둘렀다. 오랜만에 건강한 모습의 얼굴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환갑을 넘긴 상태로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술잔을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 여겨졌다. 10억 정도는 벌어와야 강남의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해서 여유를 가지지 않겠냐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 돈으로도 변변한 아파트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참으로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버렸다. 이제는 옛추억에 잠겨 과거를 회상하고 그 시절을 그리워 해야할 때가 된 듯하고 생의 어두운 그늘인 겨울을 준비해야 하고 맞이해야 할 채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제1기의 생은 거의 마무리가 되어야 할 듯하고 제 2의 생을 차근차근 대비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자기 사업을 갖고 있는 이들이야 자기 스스로 그 진퇴를 결정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결국 새롭게 제2의 일거리를 찾거나 만들지 않으면 고령화 시대에 적응하기가 점점더 어려워 질 것임을 실감하고 있었다. 낯선 부분에의 접근이나 진입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인데 모두들 다 나름대로 그것에 적응해 나가고 부응해 가는 모습들 이었다. 다음에는 더 나이든 모습일 테고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길로 되돌아 갔다. 채석강에서 뜻깊고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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